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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y little cabinet Apr 25. 2023

런던의 한류 Hallyu_Korean Wave

어깨가 으쓱

학교에서 아이를 데리고 집에 오는 길 집 앞 슈퍼에 들러 콩나물 한 봉지, 두부 한모를 삽니다. 그 옆에 있는 파리바게트에 들러 아이가 좋아하는 딸기 케이크도 한 조각 사지요. 여기가 어디냐고요? 런던입니다. 배달 어플만 켜도 ‘Korean Food’라는 카테고리가 생겼을 정도예요. 참 살만합니다.

 

8-9년 전 유학생 시절만 해도 나의 나라를 설명하려면 참 많은 노력이 필요했습니다. 길거리에서 ‘니하오’라고 인사하는 무례한 사람과 마주치기도 했죠. 그때가 2015년이었는데 ‘아 한국에 대해서 알아 너희 나라에서 올림픽을 했었지?’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었고 ‘현다이, 쌈쏭’을 말하는 사람도 있었죠. 와 우리나라 인지도가 이 정도라고? 기가차기도 했습니다. 중국과 일본과 무엇이 어떻게 다른지 설명해야 할 일이 자주 생겼죠. 군대, 전생, 북한 등에 대한 질문을 예기치 않게 받다 보니 모범 답안을 준비해 놓고 있었어요.

 

물론 K-pop이 한류의 붐을 이끈 건 맞습니다. 하지만 런던에서의 제 경험을 비추어 보면 ‘코비드’가 한국을 보다 보편적으로 알리게 된 계기인 것 같아요. 제 주변에는  K-pop에 열광하는 20대들을 없어요. 락다운을 보내던 어느 날 가깝게 지내는 주변 지인들이 묻기 시작했죠. ‘한국은 모두들 마스크를 낀다며?, 정말 적은 수가 코비드에 걸렸다는데 어떻게 생각해?’ 그때부터였던 것 같아요. 이 작은 나라에 대한 관심이 시작된 건 말이에요. 방역에 효과 여부를 떠나 홍보효과는 분명 있었습니다.

 

그리고 오징어 게임이 넷플릭스를 강타합니다. 자랑스럽게도 ‘UK Top10’에 순위를 점유하고 있었죠. 그러던 어느 날 아이의 학교에서 메일을 한통 받았어요. ‘우리 학교 운동장에서 오징어 게임에 등장하는 게임을 아이들이 하고 있다고 합니다. 부모님의 각별한 지도를 부탁합니다.’ 메일을 받고는 어리둥절했어요. 아이들이 어떻게 봤을까? 무슨 놀이를 했을까? 궁금했죠. 하지만 한편으로는 한국문화는 자극적인 콘텐츠로 인식될까 걱정스러운 마음이 들기도 했습니다. 사실, 오징어 게임에 등장하는 놀이 자체는 우리의 전통 놀이들이니까요.    

 

얼마 전 한국의 설날을 즈음해 영국에서는 작은 해프닝이 벌어졌어요. 영국에서는 음력 새해를 ‘Chinese New Year’라고 많이들 불렀어요. 과거부터 정착해 살아온 중국 이주민 인구가 많다 보니 자연스럽게 쓰게 된 용어이지요. 최근 들어 ‘Lunar New Year’라고 고쳐 부르는 움직임이 시작되고 있는 터였어요. 대영박물관은 설날을 맞아  ‘Korean Lunar New Year를 맞아 한국 전통 악기연주와 무용공연 등의 이벤트를 엽니다’라고 홈페이지를 통해 홍보했죠. 그다음 날 대영박물관 홈페이지는 테러를 당했다고 해요. 용어에 불만을 가진 중국인들이 대영박물관에 항의한 것이지요. 대영박물관은 그다음 날 이벤트를 홍보하던 페이지를 삭제해 버렸습니다. 다소 아쉬운 결말이지만 한국의 문화가 영국의 주요 기관에 등장했고 그로 인해 글로벌한 논쟁의 거리를 만들었다는 사실만으로도 충분히 의미가 있다고 생각해요.

 

또 하나 영국에 부는 한국문화의 힘을 극명하게 보여주는 전시가 있으니 바로 빅토리아 앤 알버트 뮤지엄(V&A)에서 열리는 ‘Hallyu’입니다. 솔직하게 말해 V&A의 한국관 컬렉션은 참으로 초라했다 말할 수 있어요. 한국관이라고 말하기도 부끄럽게 복도의 한쪽에 유리장 하나가 전부였죠. 그랬던 곳에서 ‘한국 문화의 흐름’를 주제로 전시를 기획해 선보이다니 반가운 전시임에는 틀림없습니다.

 

입구는 싸이의 강남스타일로 시작합니다. 음악이 광광광 울리죠. 신나는 음악에 맞춰 움직이는 화려한 화면이 관람객을 환영합니다. 바로 그 옆에는 소로 밭을 가는 농부, 뒤로 아파트가 들어서고 있는 사진을 통해 식민지와 한국 전쟁 이후 5-60년대의 역사를 설명하는데 말 그대로 ‘기적’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전시는 흥행을 이어가는 영화와 드라마로 이어집니다. 올드보이, 기생충과 오징어 게임 영화에 등장한 소품과 의상을 선보이고 영화 세트를 그대로 재현했습니다. 전시장의 작은 화면에는 ‘응답하라 1988’의 음식을 나누는 장면이 나오고 있었는데요. 어느 할머니 한분이 유심히 보고 계셨어요. 이 집에서 저 집으로, 다시 저 집에서 이 집으로 불고기, 깍두기, 사라다, 김이 왔다 갔다. 결국은 식탁을 정으로 가득 채우죠. 할머니에게 말을 붙여보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지만 꾹 참았습니다. 할머니는 이 영상을 보고 어떤 생각을 하셨을까요?  

 

전시의 클라이맥스는 한류의 일등 공신인 K-Pop이 차지하고 있습니. 무대 조명, 영상, 형형색색의 무대 의상이 시선을 확 사로잡아요. 중학생 시절 우상이던 HOT의 캔디 뮤직비디오를 V&A에서 보고 있다니 기분이 묘합니다. 8-90년대 음반 재킷과 청음코너까지 한국 음반사의 주요 지점을 펼쳐놓았어요. 이번 전시의 하이라이트는 댄스 섹션이에요. 싸이의 ‘That That’의 춤을 배울 수 있죠. 한 명씩 차례대로 부스에 들어서서 춤을 따라 추고 그 모습을 녹화할 수 있어요. 내 모습은 영상으로 출력돼서 다른 사람들의 춤과 어울려 군무로 완성됩니다. 남녀노소 가리지 않고 줄을 서서 자신의 차례를 기다리는 모습이 흥미로웠어요.

 

영국 일간지 가디언은 이 전시에 별점 5개를 부여했어요. 특히 한류의 흐름을 평가하며 ‘현대사회에서 점점 사라져 가는 낙관적이고 즐거운 포옹’이라고 표현했는데요. 우리 민족이 가진 특별함! 슬픔 속에서도 기쁨을 찾아 승화하는 그 능력을 해외에서도 알아보는구나, 마음은 다 통하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며 어깨가 으쓱해지더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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