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 전 처음 영국에 왔을 때는 ‘와 우리 호랑이 담배 피우던 시절에 얘네는 이런 거 타고 다녔다고?’하며 감탄했지만, 10년 지나도 한결같은 지하철을 보면 ‘참 너희도 지겹게 안 바꾼다’ 싶었다. 우리 같으면 벌써 새 기차로 몇 번은 바꾸었을 텐데, 어떻게 하면 더 편리하고 깨끗하게 사용할 수 있을지 고민하고 실행했을 텐데. 우연히 눈에든 사우스 캔싱턴(South Kensington)역의 계단은 200여 년 전에도 사용했을 법한 상태이다. 여전히 좋게 말해 운치 있고, 나쁘게 말해 꼬질꼬질한 모습이다. 한국방문 이후에는 특히 비교가 이어지는데, 내 생각을 변화시키는 공간은 역시 미술관, 박물관이다.
16세기에 등장한 개념 ‘Cabinet of Curiosities’ 모으는데 진심이었던 사람들이 그때부터 있었다. 그 이후로 점차 'Museum' 박물관이라는 근대적 개념의 공간이 등장하기 시작하는데 그중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것이 바로 대영박물관 (British Museum)의 'Enlightenment Gallery'이다. 한국말로 번역하자면 ‘계몽갤러리’이다. 모으는데 진심이었던 사람들이 모으는 데에서 그치지 않고 이것들을 사람들에 보여주고 가르쳐주고, 계몽시키고자 했다. 사람들은 이게 뭐 그렇게 큰 변화인가 하겠지만 지금 우리가 이렇게 과거의 것을 잘 볼 수 있고 오래도록 즐길 수 있게 된 건 다 이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런던에서 공부하기를 바랐던 진짜 이유. (물론 대영박물관에 많은 소장품들은 전쟁에서 이기고 다 뺐어온 거 맞다. 하지만 지금까지 잘 보존하고, 많은 사람들이 보고 즐기고 연구할 수 있게 했으니. 나쁘다 할 수만은 없다.)
이 컬렉션의 시작은 바로 한스 슬론(Hans Sloan)이란 사람에게서 시작한다. 우리가 알고 있는 첼시에 위치한 슬론스퀘어(Sloan Square), 그 동네가 바로 이 아저씨의 이름을 따 붙여진 것이다. 18세기 그러니까 지금으로부터 약 200 몇십 년 전, 슬론 스퀘어 주변의 모든 땅이 이 아저씨 거였단다. 의사이자, 식물학자였고 당연히 엄청난 부자였겠지. 수집에 관심이 많았던 이 아저씨는 영국 왕립학회 회장을 역임할 정도로 전문적이고 열정적이었단다. 17세기 Grand Tour(귀족들의 세계여행)가 시작될 무렵 이 돈 많은 아저씨는 당연히 세계여행을 하셨을 거다 그때부터 여행에서 발견한 것들을 차곡차곡 모으셨겠지. 우리가 바닷가 놀러 가 돌멩이랑 조개껍데기 모으듯이 여행에서 모은 것들을 잘 보관했다. 컬렉션의 스케일은 종교서에서부터 돌멩이, 나무, 이집트의 미라, 카펫 등등등 그 양과 종류가 엄청나게 방대하다. 우와 저런 것까지 가져왔다고? 싶은 것들도 있다. 이 컬렉션을 모아 모아 나라에 기증했고 보관할 곳이 마땅치 않아. 지금의 대영박물관이 있는 자리에 있던 블룸스버리(Bloomsbury)에 있는 몬태규하우스(Montagu House)에 보관했단다.
그 이후 킹 죠지 3세(George III) 왕의 도서관이 이 컬렉션에 합쳐지면서 엄청난 양으로 늘어났다. 역사, 문학, 종교 다양한 분야의 영국, 유럽, 북미에서 발간된 모든 책을 모은 조지 3세는 풍부한 도서를 수집했다. 큐 가든에서 시작된 컬렉션은 양이 많아지며 버킹엄궁을, 켄싱턴 팔래스로 옮기고 옮겨져 지금의 대영박물관, 왕의 도서관(King’s Library)으로 옮겨졌고 그 이후로도 170여 년간 이곳에 있었다고 한다. 이 방을 둘러보면 벽장 가득 책이 보관되어 있다. 한데 이건 킹조지의 컬렉션이 아니다. 그럼 킹 죠지의 컬렉션은 오디 갔을꼬?
1940년 세계 제2차 대전으로 400권이 넘는 책이 유실되었다. 그 이후에 컬렉션은 끊임없이 늘었고, 이 사람들은 또 잘 모았겠지. 그럼 그 많은 책들은 우찌 했을꼬? 바로 영국 국립도서관(British Library)를 새롭게 만들어 보관하고 있다. 도서관 로비에 가면 까만 장이 바닥부터 천장까지 짜여 있고 그 속에 잘 보관되어 있는 고서들을 볼 수 있는데 이게 바로 King’s Library에 있던 것을 옮겨 전시해 놓은 것!
Enlightment Gallery에 가면 토기, 자기, 미라, 자, 추, 식물, 동물, 고서와 전시카탈로그, 누군가의 흉상이 옴짝옴짝 모여있다. 이게 다 뭐 하는 물건인고 싶다. 너무 많아서 찾을 수가 없으니 물건들을 분류하고 번호를 매기면서 목록화하는 작업이 시작되었다. 요즘 말하는 컬렉션과 아카이브이다. 목록을 정리하는 카탈로그를 만들었다고 한다. 게다가 이걸 공개해 사람들을 계몽시키려고 했단. 교육의 개념까지 더해진다. 이 작은 공간에서 영국의 박물관의 역사가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