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개구리의 공부
“너 성적표 나올 때 아니냐?”
아침 밥상 앞에서 아버지의 질문에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아... 네, 곧 있으면 나올 거예요."
“또 저번처럼 숨기지 말고 가져와라.”
“... 네”
그 뒤로 아버지 앞에 놓인 반찬을 향한 젓가락질이 가질 않았다.
그리곤 눈앞에 놓인 밥과 국만 잽싸게 먹어 치우고 먼저 일어나 “다녀오겠습니다.”라는 말과 현관문을 나섰다.
등굣길 내내 머릿속은 성적표를 보고 분개하실 아버지 모습이 너무나 선했다.
‘어떻게 하지?’
‘이번에도 숨길까?’
‘학교에 문제가 생겨서 성적표를 받을 수 없다고 말할까?’
‘조작해 볼까?’
‘친구 성적표와 내 성적표를 바꿔서 이름만 가리고 보여드릴까?’
되지도 않는 핑곗거리 고민에 머리는 지끈 했고, 때문에 먹은 지 얼마 안 된 아침밥이 속에서 울렁거리기 시작했다.
중학교 입학 후 아버지는 나의 공부에 급관심을 가지셨다. 하지만 초등시절부터 유난히 공부와 거리가 멀었던 나는, ‘건강하게만 자라다오’라는 부모님의 소망만을 충실하게 지켜낸 아이였다. 그런 아이가 갑자기 공부에 관심을 가지고 중학교에 들어서 좋은 성적을 받을 리는 절대 만무했다. 하지만 아버지는 그런 나에게 어떠한 일말의 희망을 품고 계셨던 건지, 중학교에 입학하고 난 뒤론 끊임없이 나의 일거수일투족에 관심을 보이시며, 조금이라도 공부와 학업에 어긋난 행동을 보일 때마다 엄히 다스리셨다.
특히, 매 분기 잔인하게 등장하는 성적표는 그야말로 나에겐 지옥행 티켓과 다를 게 없었다.
매 성적표를 살피는 아버지의 눈빛은 분노와 실망이 담겨 있었고 입으로 내뱉는 아버지의 한숨은 그야말로 폭풍전야 실바람과도 같았다. 그리고 어디서 구하셨는지 모를 매끈한 회초리의 자태는 그야말로 숨마저 멎게 하는 위압감에 벌벌 떨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한참을 종아리에, 또는 허벅지에 수차례 매 타작을 맞고서는, 눈에는 닭똥 같은 눈물을 흘리며 내방 침대에 머리를 고꾸라 박고 한참을 울었다. 한참을 머리 박고 울던 베개가 눈물에 젖어 찝찝할 때쯤 뒤늦게 종아리를 확인하고 있노라면 새파랗게 멍이 갈지자로 여러 겹으로 드리워져 있었다. 그리고 그 옆으로 항상 후시딘이 살포시 놓여 있었다.
매번 그런 두려움을 겪노라면, 한번 즘은 정신 차리고 공부 좀 해볼 법도 하다만, 배짱도 없고 깡도 없는 놈이 왜 그리도 청개구리 기질에는 충실한지, 지금으로서도 생각하면 아이러니다.
이렇듯 아침밥을 먹으면서 하신 아버지의 말씀은 곧 ‘그날’에 도래했다는 걸 뜻하는 것이기에, 생존과 직결된 마음으로 머리를 굴릴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한참을 고민 중에 정신 차리고 보니 어느새 학교 정문에 발을 들이고 있었다.
뒤에서 친구가 다가와 반갑게 인사를 건네 왔지만, 친구가 다가오는 것조차 모를 정도로 넋을 잃고 좀비처럼 교실로 비실비실 걸어갔다.
어느새 복잡한 머릿속에 어떻게 보냈는지 모를 하루가 지났다.
그리곤 종례를 끝으로 담임 선생님께서 말씀하시길.
“아, 올해부터 성적표는 집으로 직접 우편으로 발송될 거다, 삼 일 전에 학교에서 보냈으니까... 가만 보자... 그래, 오늘은 아마 도착해 있을 거다.”
뭐라고?!
그 말에 나는 선생님이 교실 밖을 나서자마자 곧바로 집으로 향해 뛰기 시작했다.
급하게 뛰는 나머지 옆구리가 아파왔지만, 그런 것 따위에 속도를 늦춰서는 절대 제시간에 집에 도착하지 못할 거란 생각에 한 팔로 옆구리를 부여잡고 한 팔은 앞뒤로 연신 흔들며 뛰었다. 아마 내 생에 그렇게 빨리 뛰던 적은 없었던 거 같다.
헉헉대며 집에 도착하니 한여름의 찌는듯한 공기와 기관차같이 뿜어내는 온몸의 열이 맞물려 땀이 비 오듯 줄줄 흐르고 있었다. 그렇게 땀에 젖은 손으로 집 대문에 걸린 우체통 함에 조심스레 손을 넣었다. 만져지는 게 없었다. 깊은숨을 내쉬며 속으로 ‘다행이다’라며 안심했다. 그제야 긴장이 놓이며 다리에 힘이 풀리기 시작했다. 부들대는 다리를 부여잡고 마당을 지나 현관문을 열었다. 그때였다. 문을 열자마자 집안을 감도는 생생한 담배 연기가 코끝을 스쳤다. 아버지가 집에 계셨다. ‘설마’라는 의구심이 머리를 스쳤다.
신발을 벗고 아버지가 계신 방으로 향했다.
다섯여섯 보 되는 그 짧은 거리를 가는 중에도 머릿속은 오만가지 생각들이 겹치면서 마치 슬로모션으로 세상이 흘러가는 듯싶었다.
방 입구에 들어서니 아버지는 늘 그랬듯 벽에 등을 기대시곤 입에는 담배를 물고 계셨다. 나도 모르게 아버지 주변을 살피니, 아버지 앞에 놓인 재떨이 옆으로 하얀 봉투가 보였다. 가슴이 철렁였다. 아버지는 담배를 입에 물고선 나를 올려다보셨다. “다녀왔습니다...”라고 말끝을 흐리는 나에게 아버지는 어떠한 대답도 하시질 않으셨다. 그렇게 침묵의 일 분여 간 시간이 흘렀다. 살면서 공기라는 게 온몸을 짓누를 수도 있구나라는 것을 알게 된 순간이다. 아버지가 손에 들린 담배를 재떨이에 비벼서 끄시곤 조용히 입을 여셨다.
“그래, 너 마음대로 해라. 나는 이제 너에게 공부로 뭐라고 하지 않으마.”
아버지의 말씀에 나는 벙쪄서 뭐라 말을 해야 할지 몰라 석상 마냥 멀뚱히 있어야만 했다.
그런 나에게 아버지는 등을 돌리시곤 담배에 다시 불을 붙이고 리모컨으로 TV의 채널을 돌리고 계셨다. 그 모습에 나는 왠지 모를 허탈함 느끼며 조용히 내방으로 발걸음을 옮겨 기진맥진한 몸을 의자에 앉혔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어느 정도 안정이 돼서야 아침부터 고심하던 나의 머릿속이 냉정해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맞지 않아도 된다는 기쁨도 잠시, 방금 전 아버지가 하신 말씀을 다시금 곱씹어 봤다. 결국 수 분 동안 생각한 결과, 기쁨보단 왠지 모를 서운함과 죄송함이 앞섰다.
아버지의 나에 대한 관심과 기대감을 더 이상 받을 수 없음에 말이다.
그 뒤로 정말로 아버지께선 나의 성적표와 공부에 대해선 일절 관심을 두시지 않았다.
어린 마음에 나는 왠지 모를 해방감에 들떴지만, 한편으론 여전히 아버지에게 실망감을 안겨 드린 거 같아 죄송한 마음에 마냥 편치는 못했다.
오늘날에 와서 아버지에게 안겨드린 실망감에 대한 죄송한 마음으로 다시금 생각해 보면, 과연 그날에 아버지의 지도에 따라 공부를 열심히 했더라면 과연 나의 미래가 바뀌었을까라는 생각을 해본다. 비록, 아주 좋은 성과는 이루지 못해도 아버지가 만족할 만 결과를 만들어 낼 정도로 공부를 했더라면 지금은 조금 더 나은 생활을 영위하지 않았을까 하고 말이다.
하지만 살다 보니 굳이 그런 틀에 박힌 공부가 다가 아니라는 걸 알게 되면서, 이러한 나의 생각들은 얼마 가지 않아 다시금 추억의 한편으로 돌아서게 했다. 심지어 나보다 못한 학벌에도 ‘성공’이란 가도에 있는 사람들이 넘쳐 난다는 것을 알았고, 그러므로 ‘공부=미래’라는 공식은 꼭 고정된 공식만은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물론, 살면서 공부라는 것이 때론 필연적으로 다가오는 순간이 있다. 하지만 그 공부를 하는 때에 있어서 과연 내가 원하고 좋아하는 일을 하기 위한 공부인 가는 확실히 따져 봐야 할 문제라 생각한다. 결국 우리는 하고 싶은 일을 해야만 집중할 수 있고 때에 따라 조금 더 전문성을 기르기 위해 '공부'를 택하기 때문이다.
반대로, 하기 싫지만 어쩔 수 없이 해야만 하는 일을 위한 공부는 집중하기 힘들고, 그로 인한 공부의 지속성은 장담할 수 없다고 본다. 이유는 단순하다. 하기 싫은 건 정말 하기 싫기 때문이다.
이렇듯 자신만의 낮은 점수 성적표에 ‘나는 왜 공부를 못할까’라는 의구심과 자책은 잠시 접어두고, 내가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인지 또, 어떤 것에 자신 있는지를 먼저 생각해 보는 지혜를 발휘해 보는 것이 좋지 않을까 싶다. 그리곤 언젠가 좋아하는 것을 찾고, 그에 관련된 ‘공부’를 시작하며 집중할 수만 있다면, 그걸로도 늦지 않다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