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려운 조건에서 살아남기
선배의 전화에 나는 생각이 많아졌다.
회사를 그만둘까?
둘째를 가져서 휴직을 할까?
그냥 도망갈까?
어떻게 이 상황을 해결할 수 있는지 방법은 떠오르지 않고 현재 내가 처한 상황을 회피할 방법만 떠올랐다.
나는 도저히 현재 상황을 해결할 수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다가 굳이 이 부서를 꼭 가야 할까?라는 의문이 들었고 왜 내가 이 부서에 가지 못 하게 되는 상황이 힘든지에 대해 찬찬히 들여다보기로 하였다.
왜 꼭 이 부서일까?
회사 생활 9년 차인 현재의 시점에서 돌이켜 보면 그곳에서 나는 가장 행복했었다.
그 부서에서 근무할 때 좋은 사람들을 많이 만나 아직까지 인연을 이어오고 있으며,
그 부서에서 근무할 때 내가 가장 빛이 나고 성과도 좋았으며,
그 부서에서 근무할 때 내가 가장 행복했던 순간들이 많았기 때문이다.
3년 전 번아웃과 우울증을 경험한 후 나의 인생을 완전히 달라졌다.
자신감 넘치고 자존감 충만했던 '나'는 사라지고 사람들의 시선을 애써 외면하고 자꾸 사람들이 없는 곳으로 도망 다니기 바빴다.
누군가 나에 대해 이야기를 할까 봐 두려웠고, 직장동료들의 눈치를 보며 그들이 좋아하는 말과 행동을 하기 위해 노력했다.
무엇이든 시작을 하면 성공이라는 결과를 보기 위해 계속하여 도전했던 나의 인생에 처음으로 중도포기라는 글자가 새겨졌고 실패한 인생처럼 느껴지기도 했었다.
그렇게 나는 주눅이 들어 있었다. 그리고 임신과 출산, 육아휴직으로 2년이라는 공백을 깨고 복직을 했을 때 많이 바뀐 회사 분위기와 업무 매뉴얼 때문에 신입의 자세로 업무를 익혔다.
이러한 순간은 나에게 경력도 많고 나이도 많지만 실력은 없는 사람이 되었다는 부정적인 생각을 하게 만들었고 또 한 번 주눅이 들었다.
이렇게 있다가는 곧 사직서를 낼 것만 같았다. 아이를 키우면서 '엄마'로 살아가는 인생을 하루에도 몇 번씩 상상해 봤다.
그렇게 살아갈 자신이 없었다. 결국 그러한 선택도 나의 기준에서는 커리어우먼으로 멋지게 살겠다는 나의 인생목표를 중도 포기 하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아이에게 당당하고 멋진 사람이 되도록 항상 노력하는 자세를 가지며 살아가라고 가르치고 싶은데 정작 나는 그렇게 살지 못하니 아이 앞에서도 떳떳하지 못한 엄마가 될 것 같았다.
일단 자신감 회복이 우선이었기에 내가 가장 빛이 났던 그 부서로 꼭 돌아가고 싶었던 것이다.
내가 할 수 있는 방법으로
이 상황을 해결하자
나는 승진이나 좋은 연봉을 위해 부서이동을 꾸역꾸역 신청하였다기보다는 예전의 '나'로 돌아가기 위해 부서이동을 신청한 것이다.
내가 누구였던가! 산후우울증으로 어둠 속을 헤매고 스스로 걸어 나왔던 사람이 아니었던가!
그렇다면 이렇게 가만히 있을 수 없었다. 부서이동의 궁극적인 이유도 찾았고, 나와 함께 일하고 싶어 하지 않는 근본적인 원인도 알기에 나만의 방법으로 해결하기로 마음먹었다.
일단 이동을 원하는 부서에 가서 팀장님에게 면담을 요청하였다.
나는 팀에 합류하게 되면 어떻게 근무할 것인지에 대해 브리핑하였다.
그러나 내가 3년 전 왜 그러한 선택을 해야 했는지에 대해 감정적인 호소는 하지 않았다.
이유가 무엇이든 결과는 팀에 큰 피해를 준 것이 맞기에.. 대신에 3년 전과 같은 일은 절대 없을 것이라고 나의 다짐을 어필하였다.
팀장님은 긍정적인 검토를 하겠다는 답변을 주셨다.
그래서 현재는?
인사 발표 당일,,, 꼭 대학 합격 소식을 기다리는 고3 수험생처럼 긴장이 되었다.
결과는?
부서이동 명단에 내 이름이 있었다..
다행이다. 정말 다행이다.
다시 시작할 수 있는 출발선에 설 수 있게 되었다.
인사이동이 끝은 아니다 오히려 시작이다.
나에게 많은 과제가 남아있다.
이곳 역시 업무에 변화가 있었기에 내가 기억하고 있던 업무매뉴얼들을 수정하고 재입력하는 시간이 필요하다
한번 도망친 팀원은 또 도망칠 수도 있기에 혹시나 하는 불안감을 가지고 있을 팀원들과 팀장님에게 말이 아닌 행동으로 신뢰를 주어야 한다
회사에서는 온전히 업무와 동료들과의 관계 개선에 힘을 쏟고 집에서는 살림과 육아 그리고 육아에 지쳐가고 있는 남편에게도 최선을 다 해아 한다
올해 목표는 이 세 가지를 기준으로 회사생활과 가정생활을 꾸려나가야 한다는 나만의 과제를 가지고 살아야겠다는 다짐을 하였다.
아직까지는 회사생활이 즐겁다.
한때 나에게 일을 배웠던 후배가 지금은 나의 선임이 되어 업무를 가르쳐 주고 있다.
좀 낯설기는 하지만 그래도 아는 사람이 나에게 업무를 가르쳐 주기에 참 다행이라는 생각을 하며 열심히 배우는 중이다.
교대 근무를 하기에 시간이 들쑥날쑥이다.
그래서 스케줄 표에 해야 할 집안일을 기록해놓고 그때그때 맞춰 살림을 유지해 가는 중이다.
아이와 보내는 시간이 적어진 것 같아 아이와 함께 할 때는 최대한 안아주고 사랑한다는 말을 많이 해주며 정서적으로 불안해하지 않도록 노력하는 중이다.
나의 꿈을 응원하기 위해 조금 더 독박육아를 하게 된 남편에게는 최대한 자유시간을 보장해 주며 육아에 대한 스트레스가 없도록 배려하는 중이다.
힘들다면 힘든 생활이지만 하고 싶은 일을 해서 그런지 나는 매일 행복한 감정을 느끼며 지내고 있다.
역시 사람은 하고 싶은 일을 해야 하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