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꿈은 학원 강사가 아니었다. 예술대학 입시를 준비하던 열여덟 살 때부터 10년간 나는 극작가가 될 거라고 믿었다. 작업한답시고 집에만 틀어박혀있던 무렵 사촌언니에게 연락이 왔다. 언니네 옆건물에 논술학원이 오픈하는데 지원해보지 않겠느냐는 말이었다. 이력서를 내고 면접을 봤다. 원장님은 내가 문예창작학부를 졸업했다는 걸 마음에 들어 했다. 입사하자마자 강사 교육을 받았다. 그다음 일주일 동안 원장님 수업에 따라 들어가 보조 역할을 했다. 얼마 안 되어서 정식으로 수업을 맡게 되었다.
유치부 수업에서는 구연동화 능력이 필요했다. 몇 번이고 그림책을 읽었지만 입에 붙지 않았다. 어떤 책은 흉내 내는 말이 너무 많았고, 어떤 책은 추상적인 표현이 너무 많았다. 어떤 책은 도대체 무슨 말을 하는 건지 이해되지 않기도 했다. 아직 단어의 사전적 의미를 모르는 아이들에게 이야기를 어떻게 전달할지가 관건이었다. 목소리에 변화를 주고 감정을 넣어 읽었다. 아이들은 눈을 반짝이며 그림책에 몰입했다. 이따금 나의 입과 표정을 바라보기도 했다. 그래 성공이구나 생각했을 무렵 구름이가 말했다. "선생님, 재미없어요."
그다음 주도, 그 다다음주도 구름이는 말했다. 재미없다고. 나는 자존심이 상해 속으로 울었다. 독후활동을 진행할 때는 누구보다 집중해서 참여하는 구름이가 왜 책만 읽어주면 재미없다고 말하는지 이해되지 않았다. 구름이의 선포가 4주 차 되던 날 나는 선수를 쳤다. 앤서니 브라운의 <돼지책>을 읽는 날이었다. "오늘은 재미없으면 꿀꿀, 재미있으면 야호라고 말하자." 한 사람씩 돌아가며 야호를 외쳤다. 구름이 차례였다. 구름이는 꿀꿀이라고 말했다. 그리고 까르르 웃었다. 분명 재미없다는 뜻이었는데 나도 왠지 웃음이 났다.
우리는 매주 '꿀꿀과 야호' 같은 언어를 만들어서 책의 감상평을 남겼다. 아이들은 신중한 비평가가 되어 이 책이 왜 꿀꿀이고 왜 야호인지 이야기를 나눴다. 그림이 마음에 들어서 꼬꼬댁인 날도 있었고, 등장인물이 용감해서 콩콩인 날도 있었다. 무슨 내용인지 이해되지 않아서 뽕뽕인 날도, 선생님 목소리가 쉬어서 데굴데굴인 날도 있었다. 그렇게 감상평을 말하고 독후활동을 진행하자 수업 분위기가 확실히 좋아졌다. 나 역시도 괜히 상처받는 일 따윈 없었다. 도대체 '재미없다'는 말과 '꿀꿀' 사이에는 무슨 차이가 있었던 걸까.
재미없다는 단정적이고 귀결되는 말이지만, 꿀꿀은 은유적으로 확장되는 말이다. 무엇보다 놀이의 감각이 담긴 말이다. 아이들은 매주 비평할 언어를 만들며 논다. 원장님은 우리 반이 늘 흥분해 있다며 수업태도를 걱정하지만, 그 유난스러운 지점이야말로 아이들이 자라나는 방식인 것 같다. 나는 교육을 전공하지도, 경력이 오래되지도 않았지만 날마다 아이들과 소통하는 방법을 배워간다. 이렇게 우연히 들어온 사교육의 세계에서 아이들과 놀면서 책을 읽는 방식을 연구하고 있다. 나는 한 번도 학원 강사를 꿈꿔본 적이 없지만 이 일을 꽤 좋아한다.
※ 글에 등장하는 어린이의 이름은 가명을 사용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