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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요즘작가 Aug 21. 2023

가치의 상정, 그리고 선택의 이유

당신이 무엇을 고르는 기준은 무엇인가.

당신은 무엇에 높은 가치를 부여하는가.


남들이 전부 ‘명품’이라 칭하는 것?

아니면, 당신 주변 사람들이 모두 구매하는 유행템?


잠깐 ‘가치’라는 것이 어떻게 상정되고 부여되는지에 대해 생각해보자.

생각해볼 만한 주제를 하나 가져왔다.

순수 미술에 대해서 꽤 멋지다고 생각하는 내게 나름 많은 고민을 안겨주었던 것.

당신은 추상화와 사실주의 작품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늘 그렇듯이, 이번 글 역시 나의 가치관을 가감 없이 이야기할 뿐, 어떤 생각이 옳다고 주장하거나 불호하는 것에 대한 비판의 제기가 목적이 아님을 명확히 밝힌다.


나는 아직도 추상화를 썩 좋아하지 않는다.

그것은 단순히 추상화를 그린 화가들이 마음에 들지 않아서 하는 말이 아니다.

그림 자체가 예술성이 떨어진다고 생각해서 그런 것도 아니다.

단순히 미술에 무지한 내가 그것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작품 설명을 수 차례 읽어보고, 작가의 삶을 공부하고, 큐레이터의 설명을 듣고 나서야 그림에 대해 겨우 이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


추상화와 달리, 사실주의와 초현실주의적 작품들은 보자마자 무엇을 표현하고자 했는지 어느정도 느낄 수 있고, 때로는 금방 알아챌 수 있다.

작가가 설명해주지 않더라도, 어떤 것을 표현하고자 했는지를 유추해볼 수 있다.

이해되는 예술, 그것이 내가 추구하는 ‘아름다움’의 첫 요소다.

음악에서도 그렇다.

새로운 센세이션을 불러왔다는 한 여성 래퍼의 발음조차 알아듣지도 못하겠는 곡에, 끄덕이며 “야, 대박인데?”라고 말할 자신이 없다.


<기억의 지속 - 살바도르 달리> https://blog.naver.com/futureflow99/220795565456


스페인의 초현실주의 화가 살바도르 달리의 유명한 작품, <기억의 지속 The persistency of memory>을 보았을 때, 우리는 이 작품이 의미하는 바를 정확히 맞출 수 없더라도 작가의 ‘시간’에 대한 새로운 표현 방식을 느낄 수는 있다.

오히려 정확히 알 수 없더라도, 작품에 투영하고자 하는 주제에 대해 음미할 ‘실마리’ 정도는 얻을 수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추상화는?

형체를 알아볼 수 없는 괴이한 형태의 피사체.

때로는 검은 배경에 흩뿌려진 잉크들만 존재하는 수십억 짜리의 그림.

몇 번을 들여다보고 깊이 느껴보고, 어떤 마음으로 이 그림을 그렸을 지에 대해 생각해보아도 알 수 없었다.

그림을 보자마자 모든 것을 느낀 척 고개를 끄덕이는 이들처럼 행동하고 싶지도 않았다.


‘큐레이터의 설명을 듣고 나서야 제대로 이해할 수 있는 그림은 좋은 그림일까?’

언제인지 기억이 나지 않지만, 몇 년 전에 방문했던 미술관에서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유명 화가의 추상화가 아니라면, 동일한 류의 추상화를 누군가 그렸다고 해도 전시될 수조차 없었을 것이다.

얼마나 많은 생각과 번뇌가 담긴 작품인지와 무관히, 성실한 무명 작가의 추상화는 아무도 궁금해하지 않는다.

그들의 그림에는 어떤 의미가 함축되어 있는 것인지 알기 위해 노력하지도 않지.

그들의 그림에 대해 깊이 해석해주는 큐레이터도 당연히 없다.


음.. 추상화의 가치는 어떻게 상정되는 것인가.

유명한 작가의 그림이라는 인센티브가 미친듯이 붙어버린 한 점의 ‘소장품’이 아닐까.

비난하려는 목적이 아니다.

예술적 소양과 직관의 수준이 일정 경지에 오른 이들만이 느낄 수 있는 그 세계는 일반인인 ‘나’와는 너무 동떨어진 느낌을 주었기에 선호하지 않는다는 것, 그 뿐이다.

이것이 나의 주관적 기준이자 선호일 뿐이다.


적어도 내게는, 거장이라 불리는 마크 로스코의 추상화 몇 점보다 미술학과 대학생인 ‘이지후’ 작가의 <JUMP> 한 점이 더 큰 가치를 지닌다.


<JUMP - 이지후> 2023 아시아프 전시회에서 엄마가 직접 찍어준 사진


혹시나 해서 덧붙이자면, 나는 추상화라는 표현방식을 선호하지 않을 뿐, 그 범주에 속한 그림 자체를 선호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단순히 그림의 심미성이 높은 작품들은 그 자체로도 큰 의미가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나도 몬드리안의 작품을 좋아하고, 칸딘스키의 추상화에서 영감을 얻기도 하니 오해는 없길 바란다.


<노랑, 빨강, 파랑 - 칸딘스키> https://cafe.naver.com/chamart/1221?art=ZXh0ZXJuYWwtc2VydmljZS1uYXZlci1zZWFyY2gt
AI가 그린 몬드리안 스타일 작품들 - 픽사베이 Roses _Street 




가치의 '이유'


이와 함께 생각해보고자 하는 것이 있는데, 그것은 당신이 무언가에 가치를 부여하는 ‘이유’에 대해서다.


가끔 누군가 최신 모델의 아이폰으로 바꾸고, 내게 자랑하러 오곤 했다.

“야, 미쳤지. 진짜 개이뻐.. 인정..? 진짜 큰 맘 먹고 150만원 질렀다.”


폰을 바꿀 때마다 늘 그래왔듯이, 3년이 꽉 채워지도록 국내 우량주 S기업 스마트폰을 쓰고 있는 나는 뭐라고 대답했을까.

부럽다고? 아니면 돈 낭비를 왜 했냐며 핀잔을 주었을까?

둘 다 아니다.

그저 궁금한 것을 물었을 뿐.

“그래, 폰 이쁘네. 근데 왜 아이폰 최신기종으로 바꾼거야? 국내 폰들은 좀 별로인가..?”


예상은 했지만, 실제로 들으니 안타까웠던 답변이 돌아왔다.

“음.. 이게 또 유행이지. 인싸들은 그런거지~ 알잖아~ 애플 감성 몰라?!”

음…ㅋㅋ 차마 모르겠다며 한 껏 들뜬 기분을 죽이고 싶지는 않아서 조용히 박수를 쳐주었다.


누군가는 이런 말을 하겠지.

“그래도 자기 돈으로 사는건데 뭐 어때~”

맞는 말이다.

본인이 번 돈으로 본인이 사고 싶은 폰 산다는데 말릴 이유도 없지.

그래도 나는 내 친구들이 좀 더 확실한 자신만의 기준이 있었으면 좋겠다.


감성 값으로 금액이 무거워진 그 사과폰을 샀다는 이유로 뭐라고 하는 게 아니다.

어느 정도의 돈을 쓰고, 나름의 선택을 하는 것에 대한 ‘이유’가 중요하기 때문에 안타까웠던 것이다.

어떤 폰을 사던, 뭘 하던 간에 그런 선택 자체가 중요한 것이 아니다.

단지, 그 선택을 하게 된 이유가 중요할 뿐.


아이폰과 갤럭시의 색감 차이 - https://blog.naver.com/very-strawberry/222282494384


DSLR 카메라도 브랜드 별 색감의 차이가 존재하듯, 그리고 그 선호가 사람마다 분명하듯이, 스마트폰도 똑같겠지.

어쩌면 정말 사진 찍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이 아이폰에서만 표현되는 그 특유의 따뜻한 색감을 원해서 구매했다면, 꽤나 합리적인 소비였을 것이다.

사과농장을 운영하는 사람들만이 사용할 수 있는 맥 OS 전용 어플을 쓰고 싶어서 구매했다면?

당연히 옳은 선택이지.

맥북과 애플워치, 아이패드, 아이맥, 에어팟 등 여러 파츠를 모아버린 “대 사과 농장주”라면?

3개 이상의 기기 호환성에 있어서는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그 OS” 체제이기에, 이 이유였다면, 가장 합리적인 소비였다고 오히려 칭찬했을 것이다.


하고 싶은 말은, ‘그냥’과 ‘남들이 하니까, 유행이니까’ 따위의 이유만 아니면 된다는 것이다.

내가 안타까웠던 이유는 누군가가 자신의 선택에 대해 ‘남들을 납득시킬 이유’는 없어도 된다고 생각하지만, 적어도 본인 스스로에게는 합리적이라고 느껴질, 충분히 확고한 이유를 가지고 있어야 한다는 신념이 있기 때문이다.


이 무슨 오지랖인가.

나도 알고 있다.

그래도 말이지, 내겐 주변 사람들이 소중하고, 모두가 자신만의 색깔을 가지고 살아갔으면 한다.

그저 남들하는 대로, 유행따라 살아가는 ‘죽은 물고기’처럼 살아가지 않았으면 한다.


남들이 가는 정반대 방향으로 달려야 개성있는 사람이 되는 것은 아니다.

때로는 같은 방향으로 가야 할 때도 있는 법이다.

자신의 가치에 부합하는 것에 있어서는, 남들과, 사회의 주류라 불리는 흐름과 동일한 선택을 할 수도 있다.

그것은 유행을 따르는 것이 아니며, 합리적인 선택이다.


하지만 그저 수많은 물고기 떼의 이동이 만들어낸 흐름의 끝에는 무엇이 있을지 생각하지 않고 그저 휩쓸리는 것이 당신의 삶을 윤택하게 할 수 있겠는가.

적어도 당신이 80억 인구 중 하나라는 ‘모두에게 부여된’ 타이틀에 가리워지지 않도록 당신만의 기준을 세우고 그 색을 드러내보는 것은 어떨까?


당신은 오늘 당신의 키를 한 자 더 늘리고, 태양 앞에 서서 누군가에게 그늘을 제공하는가,

아니면 누군가의 그늘에 가리워지기 위해 끝 없이 줄 선 사람들 뒤에서 당신도 번호표를 뽑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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