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일기 02] 개강 이틀 만에 자체휴강 즐기기
학점을 등진 대학생의 소심한 일탈
오전 10시 10분
아인슈페너를 한 번 쪽 빨고, 요거트 젤라또를 한 입 삼킨다.
크- 이것이.. 학점을 등진 대학생만 느낄 수 있다는 그 행복인가.
아마 그렇겠지..?
이 라떼는 말이야... 후후.. 강의 ot를 듣고 있는 너희가 이 맛을 알겠냐고..!?
비수기에 다니는 제주도 여행이 즐겁듯, 현역 장병들을 보면서 사회의 행복을 만끽하듯, 상대적인 행복이란 꽤 큰 즐거움을 준다.
해방감도 이루 말할 수 없지.
나는..!! 나는..!! 무려 전액등록금을 내고 다니면서, 오늘 하루 치 강의 수강료 따위를 바닥에 내던져 버린 극악무도한 녀석이다!!!
나는 자유로운 영혼이면서도 은근히 시스템 친화적인 인간이다.
주변 사람들이 느끼는 나는 다소 제멋대로에 망나니 같은 대학생활을 즐기는 사람이겠지만,
의외로 나는 그렇지 못한 사람이다.
놀랍게도, 나는 대학생 전체를 통틀어서 아마 가장 ‘자체 휴강’의 횟수가 적은 사람 상위 10% 안에 들어갈 것이다.
그것은 교수님께 느끼는 죄송함, 그리고 놓칠 지도 모르는 중요한 수업 내용과 시험 정보에 대한 불안 같은 여러 요소들이 한껏 뒤섞인 결과물이지.
자체 휴강으로 수업에서 도망칠 때에도 꽤나 추태를 부리곤 한다.
같은 수업을 듣는 친구들에게 미리 연락해서 “나는 일탈을 하겠다! 그런데 혹시 중요한 내용은 좀 공유해줄 수 이쒀..?” 같은 말을 슬쩍 꺼낸다는 의미다.
뭐.. 예전에 학점을 신경쓰던 버릇이 아직 남아있는 탓이지.
여튼, 나는 개강 2일 만에 두 수업을 제껴버렸다!
이 행동은 딱히 자랑할 일도 아니고, 부끄러워 할 일도 아니니 그냥 들어주면 된다.
학부 에이스가 되고 싶은 마음과 상충하는 제멋대로 사는 야생의 삶.
워라밸이라는 말처럼 나 역시 규칙과 일탈의 균형을 맞추며 살고 있는 게 아닐까.
개강 이틀 만에 자체 휴강을 때렸다는 것은, 이 일탈이 매우 소극적인 것임을 시사하는 것이다.
개강 후 3주가 지나고 부터는 중요한 내용을 놓칠 것이라는 불안과 교수님과의 의리 때문에 이런 도주는 불가능할 것임을 직감했기에.
고작 첫 주의 OT를 제끼는 것 만으로 일탈의 행복을 즐기겠다는 값싼 행복인 것이다.
모범생. 난 그런 것을 추구하지 않는다.
망나니. 딱히 그런 것도 아니다.
글쎄.. 자기주장이 강하고 막나가기도 하지만 생각보다 공부를 때려치지도 않았고, 교수님들과의 의리를 지키는 척 하면서도 말은 잘 안듣고 교수님들을 놀리기도 하지만 누구보다 대학 생활에 진심인?
아 모르겠다. 여튼 이런 삶에 매우 만족하고 있다.
왜 이런 글을 썼냐..?!
그거슨 내가 드물게 즐긴 일탈에 대한 자랑을 초큼 하고 싶었달까.
60명이 모여 작은 강의실을 가득 채우고, 이산화탄소로 가득 찬, 더워 죽을 것 같은 강의 시간을 버티는 이들을 뒤로 한 채, 젤라또 아이스크림에서 별다방을 한 입 떠먹고 있는 나로서는 굉장한 행복을 느끼고 있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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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수님 죄송합니다 - 이무진, 『과제곡』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