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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선주 Nov 21. 2023

횡단보도에 서서

  

 이미 꽉 찬 버스를 타고 10분여 정도를 구겨진 상태로 버틴다. 겨우 버스 정류장에 내려 숨을 돌릴라치면, 역으로 향하는 횡단보도 앞에는 여기저기서 내린 사람들로 발 디딜 틈이 없다. 그나마 바깥이라는 사실에 약간의 안도감을 느꼈다. 숨 막히는 순간을 견디고 선 나는 하늘을 바라본다. 북적이는 사람들 위로 파랗고 투명한 하늘이 보인다. 하늘은 곧 겨울이 시작됨을 알리기라도 하듯 총명하게 파랗다.

 

 문득, 매일 보던 누군가가 보이지 않음을 깨닫는다. 호루라기를 쉴 새 없이 불어대던 사람. 늘 정신없는 버스 정류장과 횡단보도를 정리하던 그녀가 보이지 않는다. 이상하다. 어디가 아픈 건가. 한 번도 그녀가 없던 적이 없었는데. 적어도 평일 아침에는 그녀의 모습을 매일 볼 수 있었는데 말이다. 무슨 일이 생긴 걸까. 마음이 무거워지는 걸 느끼지만, 알 수 있는 방법은 없다.

 그녀가 없으니 원래도 통제되지 않던 사람들이 더욱 제각각이 되었다. 여전히 횡단보도는 초록으로 바뀔 생각이 없어 보였다. 그러나 사람들은 역으로 향하는 발걸음을 멈추지 않는다. 누군가 발걸음을 바삐 떼었고, 그 뒤를 많은 사람이 따랐다. 수 십 대의 차들이 빵빵거리기 시작했고, 경적 소리는 점점 커졌다. 그러나 건너는 사람들은 전혀 아랑곳하지 않았다. 자신의 생명보다 중요한 그 ‘무언가’를 향해 표정 없이 전진할 뿐이었다. 

 

 그러나 남아있는 사람들도 있었다. 그들은 앞서간 사람들을 따라갈까 말까 망설이는 듯했으나, 굳건히 자신의 자리를 지켰다. 그런 사람들이 반이나 있었다. 그래서 나는 속으로 정말 다행이라는 생각을 했다. 반이나 있다니. 반이나 질서를 지키다니.

 어릴 때부터 기본적으로 배우는 것들이 있다. 그러나 그것들은 나이가 들면서 누군가에게는 반드시 지켜야 할 일이지만, 무시되는 경우도 적지 않다. 순간의 잘못된 판단이 결코 돌이킬 수 없는 결과로 이어지리라고는 눈곱만큼도 생각지 않게 된다. 날이 갈수록 모든 것에 무뎌지고, 싱거워지고, 그딴 것쯤은 실컷 어겨도 된다고 생각하게 된다. 나도 가끔 아무도 보지 않을 때면 신호를 어기거나, 무단횡단을 한다거나, 쓰레기를 길가에 버리거나 하는 일들을 하기도 하는데 그럴 때마다 마음 한구석이 찝찝해짐을 느낀다. 꼭 집에 오면 떠오른다. 그런 일들은 하도 사소해서 잊힐 법도 하지만, 내게는 아니다. 그래서 다음에는 반드시 그렇게 하지 않으리라 다짐하게 되는 것이다.

 

 그런 사람들이 사회에 많아질수록, 사소한 것들에 무뎌지는 사람들 말이다. 그럴 때 사회는 점점 질서를 잃어가고, 더욱 혼란이 가중되고, 혼란과 불안이 일상이 되는 사회가 만들어진다. 결국 그 사회에서 더 불행해지는 것은 우리 자신이지만, 애써 회피한다. 나는 절대로 사회를 그렇게 만든 장본인이 아니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나의 사소하고 안일한 행동이 간과하는 것들은 무엇인가에 관해 떠올려본다. 나는 내 욕심과 조급함으로 사회에 어떤 영향을 끼치고 있는가. 사회의 한 구성원으로서 긍정적인 영향을 끼치는 존재인가, 혹은 조금씩 사회를 갉아먹는 한 존재로서 살아가고 있는가. 횡단보도를 이루는 검은색과 흰색 중에서 나는 어떤 색과 가까운 부류인가. 마음이 무거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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