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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선주 Dec 05. 2023

읽고 쓰는 일

지금 나는 배가 무척 부른 상태다. 이런 상태에서 좋은 글이 나올 리 만무하지만, 굳이 쓰기를 마다하지 않는 이유는 무엇인가. 지금 아니면 나는 오늘 안에 글을 쓰는 일을 아예 포기할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글은 내가 어떤 상황이든 매일 쓰는 게 중요하다. 어떤 핑곗거리를 대면서 쓰지 않는 날들이 하루, 이틀 쌓여가는 날들이 많아질수록 나는 ’ 쓰지 않는 ‘ 인간에 가까워진다. 그것은 퇴보하는 일과도 같다. 아무런 성숙도, 아무런 변화도 일어나지 않는 상태의 인간이 된다. 멈춤은 퇴화를 부른다. 변화는 자연스러운 것인 동시에 성스러운 일이다. 고여있다는 건 썩은 결말, 혹은 미래를 맞이하는 일과도 같다.


어느 순간에서부터 읽고 쓰는 일을 멈출 수가 없다. 두렵다기보다는(어쩌면 두려움도 어느 정도 맞는 말이다.) 자연스러운 흐름이 되어 삶에서 빼놓을 수 없는 일이 되어버렸다. 원래도 읽고 쓰는 걸 좋아하던 한 어린이였던 나는 20대 이후로 읽고 쓸 여유가 도무지 없었다. 그때는 그랬다. 굳이 읽고 쓰는 일 따위에 관심을 가질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다. 나는 마시고, 먹고, 유희를 즐기는(쾌락에 가까운 것들이었다) 일에만 몰두해 있었다. 그 시간 동안 내 영혼은 깊은 심연 속에 빠져 도무지 출구를 찾지 못한 채 허우적거리기 일쑤였고, 20대 후반이 되어서야 가까스로 빠져나올 수 있었다.


30대를 앞둔 내 영혼은 너덜너덜해지고, 뜯기고, 상처 입고, 도무지 형태를 알아보기 힘든 상태나 마찬가지였다. 살기 위해 어떤 것이든 읽었고, 무작정 써 내려갔다. 이유도, 영문도 모른 채 그냥 그래야만 할 것 같았다. 그렇게 서서히 조각조각 흩어진 영혼은 제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고, 지금은 완전한 형태까진 아니더라도 형상을 갖추게 되었다.  그래서 나는 멈출 수가 없는 것일 테다. 형상에 불과한 영혼에서 내가 원하는 상(像)의 모습이 될 때까지 끊임없이 읽고 쓰기를 반복할 수밖에. 완성되지는 않아도, 불완전한 형상의 영혼이더라도 괜찮다. 나는 더 이상 그때처럼 내 영혼을 짐짝처럼, 혹은 씹다 뱉은 껌처럼 취급하고 싶지는 않으므로. 어떤 상황에서든 읽고 쓰는 일을 멈출 수 없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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