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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선주 Jan 05. 2024

쓰지 못한 글들

생각은 여러 번 했으나 쓰지 않고 흘려보낸 글들이 있다. 고민만 하다가 흘려보낸 수많은 글들. 흘려보내게 된 이유는 여러 가지다. 우선적으로는 게으름이 가장 큰  이유인데, 미루고 미루다가 머릿속 생각이 흩어져 도무지 무슨 글을 쓰려했는지 떠오르지 않을 때 나는 하나의 글을 잃어버린다. 반드시 좋은 글감이 될 거라 생각했던 것들도 기록해놓지 않으면 휘발되어버리고 만다.


모든 쓰지 않은 글들에 대한 후회가 남는다. 쓰고 싶은 말과 조금은 부끄러운 글들이라고 해도 모조리 다 써버렸다면 지금 느끼는 후회의 무게는 덜 하지 않았을까. 쓰지 않고 후회하는 것보다 쓰고 나서 후회하는 게 낫다는 건 글을 쓴 이후로 항상 느끼는 바이지만, 여전히 나는 미루길 좋아하는 게으른 한 인간이다.


때로는 쓰기 전 유독 망설여지는 글들이 있다. 나의 치부를 드러내는 것 같을 때나, 나의 무식함이 만천하에 드러나는 것 같을 때, 혹은 내가 인정하고 싶지 않은 면을 글에 녹여내야 할 때다. 내가 가진 모든 면면이 다 좋을 수 없다는 것은 명백한 사실이다. 모든 면면이 다 좋은 인간이란 존재할 수 없고, 아무리 좋다고 여겨지는 사람이라고 해도 단점이 한 가지는 있게 마련이다. 인간이란 무릇 불완전한 존재이므로.


작가란 어느 한쪽에 치우치지 않아야 한다고 본다. 너무 어둡고 불안한 쪽에 치우치지도, 생각 없이 낙관적이지도 않아야 한다는 생각. 내가 가진 에고는 이런 나의 생각과는 늘 반대로 이야기한다. ’ 네가 좋게 보일 만한 글만 써야 해. 네 찌질하고 멍청한 면과, 너의 그 부정적이고 불안한 면을 사람들이 알게 된다면 너라는 인간이 쓴 글을 읽어주기나 할까? 너는 그저 좋게 보이기만 하면 돼.‘라는 속삭임을 언제까지고 반복하는 것이다.

나는 여전히 ego에 의해 지배당하고 있음을 여실히 느끼고 있다.


그러나 인간의 영혼은 수천 겹으로 이루어져 있다는 사실이 나를 위로한다. 이러저러한 모양의 영혼들이 나를 이룸으로써, 하나의 자아를 이루고 그 자아는 결코 좋은 면면으로만 이루어질 수 없다는 사실을 안다. 양과 음, 빛과 어둠, 낙관과 부정, 기쁨과 좌절, 행복과 슬픔을 이루는 모든 것들이 내 안으로 들어와 나를 이룬다. 어둠이 있어야만 빛이 존재할 수 있고, 빛이 있기에 어둠이 존재하는 명백한 사실이 있기에 나는 다시 글을 쓸 용기를 얻는다. 한쪽으로만 치우친 글은 오히려 불편한 글이며, 가면을 쓰고 타자기를 두드리는 모습과 별반 다르지 않다. 더 이상 발가벗겨진 완전하 내 자아를 부끄러워하지 않기로 한다. 온전한 자신을 드러낼 용기가 있는 자만이 타인의 가슴에 닿을 수 있는 글을 써낼 수 있다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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