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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선주 May 16. 2024

어떤 글을 좋아하세요

치열한 글

치열하게 살아온 이가 쓴 글이 좋다. 삶을 생생하게 살아낸 사람들, 무엇보다 녹록지 않은 현실 속을 살면서도 자기 자신을 놓지 않으며 살아가는 이들이 쓴 글. 겉 멋만 잔뜩 든 글 대신 소소하고 담백한 문체이더라도 자신의 생이 그대로 녹아있는 글을 쓴 작가를 좋아한다. 하루하루를 격렬하게 보내본 적 있는 이와 한 번도 그런 경험을 겪어보지 못한 이의 글은 사뭇 다르다. 후자의 글은 깊이가 결여되어 있다. 오래전, 오직 쾌락을 중시하는 삶만을 추구할 때의 나는 후자가 쓴 글에 마음을 빼앗겼다. 나 또한 내면의 깊이라고는 눈곱만큼도 찾아볼 수 없는 사람이었으므로 그런 글이 끌리는 것 또한 당연한 이치였다. 비슷한 것들끼리 끌리기 마련이므로. 지금도 그 깊이가 깊어졌다고는 결코 말할 수 없으나, 나와는 차원이 다른 품격을 가진 사람들의 글을 어떻게든 읽어나가다 보니 조금씩 구별할 수 있는 지혜 정도는 생겨나게 된 것 같다.


아무런 경험 없이, 평온하기만 한 날들 속에서 쓰는 글을 읽다 보면 지루하다 못해 미간이 찌푸려지기까지 한다. 그 글을 한때 좋아했음이 조금은 부끄럽게 느껴질 정도로. 감성적이기만 한 글은 독자의 내면에 아무것도 새기지 못한다. 그대로 스쳐 지나갈 뿐이다. 반대로 생생한 경험이 진득하게 묻어있는 글은 언제고 가슴에 남아있다. 잊어버린 듯하지만, 중요한 순간에 떠올라 길을 잃고 방황할 때 열쇠가 되어주기도 한다. 아무런 고통이나 시련 없이, 어떤 감정을 처절하게 겪어본 경험 없이는 좋은 글이 나올 수 없다는 생각을 한다. 이 생각은 위험한 생각인지도 모른다. 나의 오만에 가까운 사고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나는 그런 치열한 글이 좋다. 글은 음식과 닮은 구석이 있다. 음식 또한 요리하는 자의 숱한 경험으로 그 맛이 경이에 가까워지는 게 아닌가. 초보자가 아무리 플레이팅을 화려하게 했더라도 가지각색의 경험을 겪은 숙련자의 요리에 비해서는 아무것도 아닌 것과 같은 이치다. 겉만 번지르르한 맹탕 요리보다 겉은 소박할지언정 감칠맛이 입안을 가득 채우는 숙련자의 요리에 마음이 가는 건 당연한 일이다.


자기 자신이 쓴 작품을 사랑하고 애정하는 마음은 알겠으나, 오직 자신의 작품에만 매몰하는 이들을 종종 본다. 이들은 배울 생각이 없다. 누군가의 글을 읽고, 타인의 세계를 들여다보고 궁금해하며 애정을 갖는 일은 사치라고 여기는 듯하다. 자기 자신에게만 매몰된 사람은 매력이 없다. 내가 나의 책을 홍보할 의무는 있지만, 그게 과해지면 그 책이 더 이상 궁금하지 않다. 그래서 나는 조용한 성공을 거둔 하루키와 양귀자 작가님 같은 분들을 너무나 존경한다. 오직 글과 책으로 수많은 독자들에게 영향을 끼치면서도, 드러내지 않는 그들을 경닐한다. 여전히 드러내길 좋아하고, 애정을 갈구하는 에고의 하수인인 내게 그들은 공경의 대상이자 내가 가장 되고 싶은 나의 모습이기도 하다.


매일 한가로이 커피를 마시며, 산책이 전부인 자체를 비난하고 싶지는 않다. 다만 자신의 감성에 빠져 세상에 널린 문제들을 회피하고, 다른 시선과 관점으로 세상을 보지 못하며, 가난하고 궁핍한 자들 혹은 인간사에서 벌어지는 각종 사건들로 힘겨워하는 이들을 모르는 체하며 오직 감성팔이에만 매몰된 글은 보고 싶지가 않다. 나이가 들수록 회피하고 싶은 것들은 점점 늘어난다. 그런 와중에도 포기하지 않고 세상의 면면들을 다양하고 세밀하게 바라볼 줄 아는, 그런 마음을 가진 작가들이 좋다. 오직 자신에게만 매몰된 이를 경계해야 하는 건 글을 쓰는 사람도 마찬가지 인듯 하다. 그러니 좋은 글을 꾸준히 읽고, 또 읽으면서 빛 좋은 개살구처럼 쓰인 글을 분별할 줄 아는 지혜를 길러내야겠다는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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