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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동 호서비 Feb 29. 2024

안동  내방가사 이야기
    1. 화경당 '쌍벽가'

 현존 최고의 내방가사, '쌍벽가'

1. 화경당 ’쌍벽가‘ – ’어와 우리 님아‘      


세계문화유산인 안동 하회마을은 풍산 류 씨의 집성촌이다. 조선 초부터 600여 년간 한 씨족을 중심으로 살아온 한국의 대표적인 동성마을이다. ‘하회河回’, ‘물돌이’란 마을 이름은 바로 옆의 낙동강이 마을을 감싸고 흐르는 모양에서 유래했다. 풍수지리에서도 태극형, 연화부수형, 행주형으로 불린다. 마을 동쪽에는 화산(327m)이 있고 낙동강 솔밭, 만송정과 강 건너 부용대 절벽 등이 절경을 자랑한다.      

또 마을 중심부에는 600여 년 된 삼신당 신목 느티나무가 있는데 이 느티나무를 중심으로 마을 집이 강을 향해 배치되어 있어 좌향이 일정치 않은 특징이 있다. 하회마을은 오래된 전통 마을 모습뿐만 아니라 ‘하회별신굿 탈놀이’,‘선유줄불놀이’ 등 전통 놀이가 지금까지도 재현되고 있다.      

주요 인물로는 조선 초기 공조전서를 지낸 류종혜柳從惠 공이 마을에 들어와 입향조가 되었다. 대유학자인 겸암謙菴 류운용柳雲龍(1539~1601)와 그의 동생 임진왜란 때 영의정으로 국난을 극복하고 유명한 ‘징비록 懲毖錄’ 쓴 서애西厓 류성룡柳成龍(1342~1607) 선생 등이 있다.      

화회마을 북촌댁 솟을대문 @이호영


하회마을 중심부에 있는 입암고택(양진당)은 풍산 류 씨 대종택이고, 건너편 충효당은 서애 류성룡 선생의 종택이다. 삼신당 신목과 담사이로 접한 고가옥은 북촌댁으로 불린다. 북촌댁의 당호는 화경당和敬堂으로 1797년 류사춘柳師春(1741~1814)이 사랑채와 날개채, 대문채를 짓고 1862년 그의 증손자인 류도성이 안채와 큰 사랑채, 사당을 지었다. 집 규모가 웅장하고 대갓집의 격식을 완벽하게 갖추어 사대부 가옥의 면모를 보여주고 있다. 화경당은 ‘和’ 어버이를 섬기고, ‘敬’으로 임금을 섬긴다는 뜻으로 충효忠孝와 같다고 한다.      

북촌댁 당호 화경당和敬堂 @이호영

이 화경당에서 나온 내방가사 ‘쌍벽가(상벽가)’는 지금까지 전해온 내방가사 가운데 가장 오래된 작품이다. 현 종손인 류세호 씨의 8대 조모인 연안 이 씨(1737~1815)가 1794년, 정조 18년에 지었다. 내용은 연안 이 씨의 아들 학서鶴捿 류이좌(柳台佐,1737~1937))와 큰 조카 류상조(柳相祚,1763~1838) 형제가 동시에 과거에 급제했다. 이에 정조가 승지를 보내 류성룡의 음덕을 기리는 제사를 지내게 했으며 연안 이 씨가 이날 즉석에서 언문(한글)으로 ‘쌍벽가’를 지었다고 한다.(김수현, 「연안 이 씨의 삶과 <쌍벽가>」 한국고전여성문학회, 2016)      

북촌댁 안채 벽에 걸린 '상벽가'@이호영

‘쌍벽가’ 원본은 한국국학진흥원에 기탁돼 지난해(2021년) 유네스코 아시아. 태평양 기록 유산으로 지정돼 한국국학진흥원에서 보관 중이다. 화경당에 남아있는 ‘상벽가’는 복제품으로 현 종손인 류세호 씨가 갖고 있다.

      

“‘쌍벽가’는 제8대 조모이신 연안 이 씨가 쓴 것으로, 최초의 규방가사, 내방가사입니다. 당시 아드님이셨던 ‘이좌’ 할아버지와 ‘상조’ 할아버지께서 대과에 급제하시고 그 기쁨을 조상님께 알리기 위해 썼습니다. 임금께 하사 받은 제물과 물품, 시집살이의 고단함, 하회마을의 아름다운 풍광, 아들과 조카의 급제 사실, 가문의 번영 등을 기원하는 내용으로 지었고요. 아드님이신 ‘이좌’ 할아버지는 원래 이름이 ‘태조台祚’였는데 정조의 명에 따라 ‘나를 도우라’는 뜻으로 ‘이좌台佐’로 고쳤다고 합니다. ‘류이좌柳台佐’ 한자를 태좌로 읽는 사람이 많답니다.”     


북촌댁 종손 류세호 선생이 '쌍벽가'를 소개한다. @이호영

안채 대청마루에서 ‘쌍벽가’(복제품)를 내보이면서 류세호 종손이 7대조 할아버지 류이좌 선생과 8대 조모 연안 이 씨에 대해 설명한다. 210여 년 동안 북촌댁은 적선지가積善之家(좋은 일을 많이 한 집)를 실천하는 등 선대부터 어려운 이웃을 위해 많이 베풀었고, 선비로서의 학식과 기품을 고스란히 간직한 집안이었다고 말한다.      


“연안 이 씨 8대 조모께서는 서울에서 계시다가 ‘師자 春자’ 8대조와 혼인을 하시고 하회로 와서 생활하셨는데 와서 보니까 빈한하기가 그지없는 집이었어요. 변변한 농토도 없었고, 재산은 말할 것도 없고, 집도 물론 이 집이 아니었지요. 몇 칸짜리 초가에... 지금으로 말하면 (친정아버지가) 판서면 장관 아니에요? 고관의 애지중지하던 딸로 서울, 한양에서 살다가 이 시골 하회에 와보니까 누구 하나 거들어줄 살림살이도 있는 게 아니고 본인이 다 하셔야 돼요. 그 귀한 집에서 자란 8대 조모가 아이(학서 류이좌)를 등에 업고 뙤약볕에서 밭을 갈고, 아이에게 줄 간식 하나 변변하지 않았어요. 학서는 어머니의 땀에 젖은 옷을 빨면서 컸다고 해요. 자식 교육에는 엄격하셨고 굉장히 열성이었어요. 그래서 가르쳐서 과거에 급제시켰고, 큰 집 조카가 같이 시험을 봐서 동시에 합격했습니다. 정조께서 치하하시고 ”귀향을 해서 부모님께 인사를 드리고 오라“고 해서 종형제분이 하회에 들어오셨어요. 8대 조모가 아들과 조카가 하회에 들어오는 걸 보고 ‘가히 쌍벽이로다’ 하며 내방가사 ‘쌍벽가’를 지었다라고 합니다.”     


이 ‘쌍벽가’는 효성여자대학교, 현 대구가톨릭대학교에 재직했던 ‘권영철’ 교수가 최초로 발굴했다. 대부분의 내방가사는 ‘작자가 모호하고, 장소, 연대도 굉장히 모호한데 ’쌍벽가‘는 지은 작자가 연안 이 씨고, 장소는 아들이 귀향하는 것을 보고 감격스러워서 하회마을에서 지었다는 점, 내용은 첫째 조상의 음덕에 감사하고, 두 번째는 성은에 감사하고, 세 번째가 본인의 영특함에 감사하고 네 번째가 연안 이 씨의 심경, 즉 내가 기르고 가르치면서 느꼈던 회한 등을 싣고 있는 등 작자와 창작 장소, 내용 등이 완벽하게 남은 현존 최고의 내방가사라는 점을 권 교수는 논문에서 강조했다.     

집안에서도 연안 이 씨를 가난한 집에 시집와 갖은 고생 끝에 집안을 일으킨 할머니였고, 자녀 교육을 위해 부단한 노력을 다한 조상으로 여기며 칭송하고 있다.


북촌댁 종손 류세호 씨가 보관 중인 '쌍벽가'(복제품) @이호영

"어와 우리님아

 효와 인의를 가훈삼은 화산아래 대대명문가

 성은이 중첩하다.

 화회촌 이룬이래 황하가 다시 맑아

 금옥같은 인재와 물자 가지가지 주시니

 상하귀천 노소없이 모이기도 모였구나...


 젊어서 제사모셔 어느사이 백발됐네

여자부모 이별은 옛글에도 적혀있다

강호의 사십년이 어제인듯 그제인듯

지난세월 생각하니 가시밭길 그지없다."


(2022년 국립대구박물관.국립한글박물관 공동 특별전 '이내말삼 드러보소'에서)


화경당의 내방가사는 쌍벽가를 비롯해 ’셩조감구가‘, ’한양가‘, ’교녀가‘, ’상화농죠가‘, ’베틀가‘, ’백발가‘, ’대명복수가.북정가‘ 등 다양한 내방가사가 발견됐고, 13점은 한국국학진흥원에 기탁돼 모두 유네스코 아시아. 태평양 기록유산 목록에 올랐다.      

북촌댁 큰 사랑 '북촌유거'@이호영

하회마을 북촌댁은 큰사랑인 북촌유거北村幽居와 중간사랑인 화경당和敬堂, 작은사랑인 수신와須愼窩, 안채와 솟을대문 등이 있고 북촌유거 뒷마당에는 하회마을 물돌이 모양을 닮은 하회소나무가 있다.

북촌유거는 정면 7칸, 측면 3칸 건물로 방 4개와 대청, 누마루 등으로 구성돼 있다. 집안의 가장 웃어른인 할아버지께서 거주하시는 사랑으로 외빈 접객용으로 사용한다. 7대조 ’학서‘ 선생의 선조 과거급제 홍패와 5대조 ’석호‘ 선조의 경상도사 교지가 걸려있다.

학서 선생 과거급제 홍패와 석호 선생의 교지@이호영
북천유거 뒤 '하회소나무' @이호영

북촌유거 뒤 하회 소나무는 3백여 년 된 고목으로 낙동강 강줄기의 흐름과 같은 형상이어서 관람객의 감탄을 자아낸다. 북촌유거 현판은 조선 철종 당시 명필인 ’해사 김성근‘ 선생의 글씨로 ’북촌에 기품있게 기거하고 있다‘ 라는 뜻이다. 중간사랑 ’화경당‘은 학서 류이좌 선생의 당호로 가족과 친족간에 화목하고 임금과 어른을 공경하라는 뜻이다. 편액은 한석봉 글씨를 모았다. 작은사랑 ’수신와‘는 집안의 손자가 기거하던 곳으로 ’어려운 이웃을 생각해 언제나 삼가면서 겸손하라‘는 뜻이다. 역시 해사 김성근 선생의 글씨다.     


’북촌유거‘ 등은 한옥 체험장으로 개방한다. 전통 사대부가의 격식을 갖춘 방과 가구, 솜 이부자리 등을 체험하고, 유기 놋그릇으로 제공되는 아침 식사와 군불 난방의 구들장 체험이 일품이다.


출처: 한국국학진흥원 기획 '안동문화100선'. 23  이호영. 『어와벗님네들』. 안동내방가사이야기. 민속원. 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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