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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동 호서비 Mar 04. 2024

안동 내방가사이야기
 2. 노송정 18대 종부 최정숙

『옛집에 글빛을 비추다』

2. 노송정 18대 종부 소현당 최정숙 『옛집에 글빛을 비추다』     

안동 노송정老松亭은 안동시 도산면에 위치한 진성 이 씨 종가로 퇴계 이황李滉(1501~1570) 선생이 태어난 집이다. 노송정 이계양李繼陽(1424~1488) 선생이 조선 단종 2년, 1454년에 집을 짓고 손자인 퇴계가 1501년 11월에 이 집에서 태어났다. 본채는 안마당을 중심으로 ‘ㅁ’ 자 형이고 본채 중앙에 삼면을 계자난간으로 두른 누 형식으로 독특하게 꾸민 곳이 퇴계 태실이다.     

 

노송정 종택 성림문聖臨門@이호영

종택 대문에 걸린 현판 성림문聖臨門은 ‘성인이 임하셨다’는 뜻으로 퇴계 모친이 공자가 들어오는 태몽을 꾸고 선생을 잉태했다고 한다. 성림문을 들어서면 바로 앞에 ‘노송정老松亭’이 ‘ㅡ’ 모양으로 자리하고 큰 사랑과 작은사랑이 있는 본채에는 온천정사溫泉精舍라는 현판이 걸렸다.     


노송정과 온천정사 @이호영

퇴계의 조부 노송정 이계양 선생은 수양대군이 일으킨 계유정난癸酉靖亂을 불의라고 간주하고 두 임금을 섬길 수 없다는 불사이군不事二君의 충절에 따라 벼슬에서 물러났다. 어느 날 굶주린 스님을 구해주었는데, 스님이 온혜 일대를 살피더니 ‘여기에 터를 정해 살면 당대에 귀한 자손을 둘 것’이라며 일러준 곳에 집을 지었다는 일화가 있다.  노종정 종택에서는 퇴계뿐만 아니라 숙부인 송재 이우 선생, 형님인 온계 이해 선생 등 많은 학자가 태어났다.

      

노송정 이계양 선생은 멀리 떨어진 소백산 국망봉 정상에 단을 쌓고 단종의 유배지인 영월을 향해 매달 망배望拜를 올리며 절의를 지켰다고 한다. 당시 발각됐으면 멸문지화滅門之禍로 퇴계가 탄생하지 않았을지도 모를 일이었지만 노송정의 절의는 변치 않았다.     


이 노송정을 꿋꿋하게 지켜온 소현당素絢堂 최정숙崔貞淑여사는 노송정 18대 종부宗婦로 올해(2023년) 76살이다. 영천 최 씨 법산문중 종녀로 어릴 적부터 예절과 부덕을 배웠으며, 교육행정계에 근무하다 노송정 18대 종손인 이창건李昌建 선생과 결혼했다. 최정숙 종부는 종가 전통 음식 세계화에 힘썼고 대구 경북 종부회 회장 역임, 사단법인 박약회와 안동 내방가사 전승보전회 등에서도 많은 활약을 하고 있다.     

노송정 18대 종부 최정숙 여사@이호영

최정숙 종부는 지금도 내방가사를 쓴다. 종부가 쓴 내방가사가 책으로 출간됐을 정도다. 『엣집에 글빛을 비추다』는 종부가 시집와서 자신이 겪은 50년의 소중한 경험을 내방가사 형식으로 서술한 책이다. 종부는 경자년(2020년)에 닥친 코로나19로 안동은 물론 대구·경북, 전국이 얼어붙으면서 종가에 손님의 발길이 뚝 끊기는, 뜻하지 않게 세상과 단절된 시간을 맞이했으나 이 시간이 오히려 자신을 돌아보는 넉넉한 시간이 되었다고 회고했다.  


노송정 18대 종부 최정숙 여사가 쓴 책『옛집에 글빛을 비추다』표지

    

“살아온 햇수가 칠십 년을 넘었고, 노송정에 종부로 입문한 지도 어느새 오십 년이 다 되어간다. 과학의 발달로 수명이 늘어난다 해도 사람의 생명이 유한함은 진리이니 남은 날도 또한 점점 줄어들 것이다. 할머니와 어머니께서 늘 하셨던 말씀도 시간이 지나며 점점 잊혀 가는 것이 아쉬웠다. ‘총명이 무딘 글만 못하다’는 말이 있듯 말은 세월 따라 흩어지면 흔적도 없지만 부족한 글이나마 기록으로 남겨두면 먼 훗날 눈 밝은 후손이 할머니를 생각하게 될 때 유용하리라 여기고 교과서보다는 참고서의 의미로 이 글이 읽어지기를 바랄 뿐이다.”

                                                   『옛집에 글빛을 비추다』 책머리에서      


내방가사 '노송정 국가문화재 승격 기념가'@이호영

노송정 안채 대청마루 벽에 걸린 내방가사는 ‘노송정 국가문화재 승격 기념가’이다. 2018년

노송정의 역사와 문화적 가치를 인정받아 11월 국가민속문화재 제295호로 지정되었다. 이를 기념해 종부가 썼다.     


뒷산에서 불어오는 귀에설던 솔바람도

반백년을 듣고보니 조상님의 숨결인양

아늑하고 평화롭게 느껴지는 때가왔네

-----     

오백년의 세월가도 그가르침 빛이나니

종가중의 종가로서 자리매김 하였지만

성현께서 태어나신 자랑스런 노송정이

문화재로 지정된건 일천구백 팔십오년

경북민속 제육십호 도문화재 지정받고 

삼십삼년 세월흘러 정유년 십일월에

국가민속 제295호 문화재로 승격되니

가문에는 영광이요 후손들은 기쁨이라

-----     

노송정에 입문하여 일흔나이 넘긴여인

국가민속 문화재된 대청마루 올라서서

지금까지 돌봐주신 조상님전 묵념하니

감사한맘 가슴뭉클 조상님의 음덕이요

그정신을 계승함은 후손들의 몫이로다

대소사에 빠짐없이 참여하신 집안어른

지척에서 돌봐주신 고마우신 일가분께

진심으로 감사인사 필로적어 전하면서

대소문화 창대하길 두손모아 기원하며

두서없이 적었으니 고이하다 말으소서


내방가사 '노송정 국가문화재 승격 기념가'원문 @이호영

붓글씨로 곱게 적어 내린 내방가사 <노송정 국가문화재 승격기념가>는 단아한 종부의 모습과도 닮았다. 한 글자 한 글자 정성을 다하고 반듯한 글씨체가 돋보인다. 젊은 나이에 시집와서 대구에서 삼십여 년 생활하면서도 종가 소임을 소홀히 하지 않았을 때부터 일흔을 넘긴 지금까지의 소회가 글자 글자에 고스란히 담겨있다. 내방가사 특징인 4.4체 문장으로 운율에 따라 적은 글은 누구나 한 번쯤 읽어보고픈 마음이 든다. 내용도 쉽고 이해하기 좋아 종부의 문장력이 느껴진다.     


안동으로 시집온 종부가 늘 그리던 곳은 성주 친정이었다. 그리움이 조각되어 쓴 <우리 어매 전상서>는 돌아가신 어머니를 그리는 딸자식의 마음을 글자로 새겼다. 시댁 안동과 친정 성주는 경북 지역에 같이 있는 데다 요즘 세상에는 거리가 그리 멀지 않다.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지 갈 수 있는 곳이지만 세상살이는 그렇지 못하다.  누구에게너 말로는 가깝지만 발길은 멀기만 하다.   

   

우리 어매 전상서     

인동 장 씨 여헌 자손 궁색하지 않은 집안

오 남매 맏딸 되어 십팔 세로 성장하고

죽선 선조 종가집 십이 대 종부되어

신언서판身言書判 되시는 두 살 아래 남편 만나

일생동안 남편 향한 외사랑과 흠모로

육십여 년을 살아오신 장하신 우리 어매

-----     

몇 년 후 노환 중인 엄마를 보살필 때

냉면을 드렸더니 입맛이 없던 차에

그 냉면을 너무나도 맛나게 드셨지요

한없이 미련한 딸인 나는 그제서야 

엄마도 냉면을 좋아한다는 것을 알았고

힘겹게 아버지 병수발 하실 때

엄마 몫 한 그릇을 더 챙기지 못한 것이

마음에 걸려 지금도 냉면을 먹을 때면

엄마 생각에 가슴이 먹먹해지곤 하지요.

                < 『옛집에 글빛을 비추다』 中에서>     


종부는 미식가였던 친정아버지께서 병환 중에 냉면을 드시고 싶다고 하시자, 당시 가을이면 문을 닫는 냉면 가게를 겨우 찾아 냉면 한 그릇을 말아와 아버지께 드렸다고 한다. 아버지는 냉면을 맛있게 드셨는데 나중에 어머니께서도 노환으로 입맛을 잃게 되자, 냉면을 드렸더니 너무나 맛있게 드시는 걸 보고 어머니도 냉면을 좋아하셨다는 걸 늦게나마 알고 아버지 병석에 드렸던 냉면을 어머니를 위해 한 그릇 더 챙기지 못한 마음을 글로 적고 있다. 종부는 지금도 냉면을 먹을 때면 어머니를 생각한다고 한다. 


출처:한국국학진흥원 기획 '안동문화100선'.  이호영. 『어와벗님네들』. 안동내방가사이야기. 민속원. 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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