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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동 호서비 Jan 29. 2024

안동문화관광이야기

1.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하회마을은 원래 사람이 살기 힘든 곳이었다.

1.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하회마을은 원래 사람이 살기 힘든 곳이었다.

안동시 풍천면 하회마을은 2010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됐다. 이 마을은 600년 넘는역사를 간직하고 있다. 고려 말, 가까운 풍산에서 살던 류종혜柳從惠가 풍수를 보고 마을에 들어오면서 풍산류씨의 입향시조가 되었다. 류종혜는 마을 입구 화산에 올라 물의 흐름이나 산세를 몇 해를 살펴본 후 일가를 이끌고 마을에 들어왔다.
 
마을 이름 '하회河回'는 바로 옆 낙동강이 마을을 감싸고 흐르는 모양에서 유래했다. 우리말 이름 '물돌이'도 물이 돌아가는 곳이라는 뜻을 품고 있다. 이곳은 '산태극물태극', '연화부수형', '행주형' 등으로 길지로 여겨졌다. 하지만 '토길인해처土吉人害處' 땅에는 좋지만 사람에게는 해로운 곳이라는 속설이 있었다. 그래서 당시 마을 주변에 살고 있던 허 씨와 안 씨 문중은 사람이 살기에 불가능한 곳이라고 했다.
 
그도 그럴 것이 낙동강을 끼고 있는 하회마을은 해마다 물난리가 났고 평소에도 습지나 다름없어서 집을 짓기 힘들고 농사는 더욱 지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주변 마을 사람들은 마을에 살겠다는 류종혜의 결정을 비웃기까지 했다. 류종혜는 이에 굴하지 않고 집을 짓기 시작했다. 그러나 기둥을 설치하면 넘어지기 일쑤였다. 류종혜는 이곳에 터를 잡으면 일족이 대대손손 번창할 것을 확신하고 집짓기를 이어갔다.
                                      

▲ 하회마을 양진당 양진당, 풍산류씨 대종가 ⓒ 이호영


그리고 정성을 다해 하늘에 기도한다. 드디어 하회 여신이 나타나 만 명의 사람에게 덕을 베풀고 자신을 위해 마을에 느티나무를 심어 달라고 요청한다. 류종헤는 낙동강 모래밭에 참외밭을 만들어 가난한 사람을 구휼하는 공덕을 쌓는다. 이 공덕을 쌓아 다시 집 기둥을 세우니 집을 완성할 수 있었다. 그리고 마을 한 가운데에 느티나무를 심는다. 이 나무가 지금까지 마을의 안녕을 지키는 삼신당 신목이다.

▲ 하회마을 삼신당 신목 삼신당 신목, 하회마을 중심부에 위치하고 있다. 600년 넘게 마을의 안녕을 지키고 있다고 한다. ⓒ 이호영


류종혜가 집을 짓기 시작하면서 풍산 류씨 일가들이 들어와 살기 시작하면서 하회마을은 풍산류씨의 집성촌이 되었다. 하회마을에는 지금도 '허 씨 터전에, 안 씨 문전에, 류 씨 배판'이라는 말이 전한다. 허 씨와 안 씨가 하회마을 입구에 일찍부터 살았지만 마을 안은 류 씨가 집성촌을 이루면서 600년 넘는 세월 동안 동성마을이 된 것이다. 물론 지금은 하회마을에 다른 성씨가 들어왔으나 아직도 70% 정도는 풍산류씨가 일가를 이루고 살고 있다.

▲ 하회마을 충효당 서애 류성룡 선생의 종택 충효당, 선생 사후에 후손들이 지었다. ⓒ 이호영


하회마을 중심에는 입암고택(양진당)이 있다. 풍산류씨 대종가다. 대대로 풍산류씨 종손들이 살아온 집이다. 건너편 충효당은 서애 류성룡 선생의 종택이다. 서애가 돌아가신 후 후손들이 역사에 큰 족적을 남긴 서애 선생을 기리기 위해 세운 집이다.


▲ 하회마을 화경당 북촌댁으로 불리는 이 고택은 류사춘이 지었다. 화경당의 화경은 충효와 같다가 한다. ⓒ 이호영


북촌댁이라 불리는 화경당은 정조 21년 1797년 류사춘이 지은 집으로 증손인 류도성이 안채와 사랑채, 대문간, 사당등을 지어 지금의 모습을 이뤘다. 화경당에서는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내방가사 <쌍벽가>가 발견됐다. <쌍벽가>는 현 종손인 류세호 씨의 8대 조모인 연안이씨가 1794년 정조 18년에 아들 학서 류이좌와 큰집 조카 류상조 형제가 동시에 과거에 급제하면서 그 기쁨을 노래하기 위해 지은 내방가사이다.


"연안 이 씨 8대 조모께서는 서울에서 계시다가 '사춘師春' 8대조와 혼인을 하시고 하회로 와서 생활하셨는데 와서 보니까 빈한하기가 그지없는 집이었어요. 변변한 농토도 없었고, 재산은 말할 것도 없고, 집도 물론 이 집이 아니었지요. 몇 칸짜리 초가에, 지금으로 말하면 (친정아버지가) 판서니까, 장관 아니겠어요? 고관의 애지중지하던 딸로 서울, 한양에서 살다가 이 시골 하회에 와보니까 누구 하나 거들어줄 살림살이도 있는 게 아니고 본인이 다 하셔야 해요. 그 귀한 집에서 자란 8대 조모가 아이(학서 류이좌)를 등에 업고 뙤약볕에서 밭을 갈고, 아이에게 줄 간식 하나 변변하지 않았어요. 학서는 어머니의 땀에 젖은 옷을 빨면서 컸다고 해요. 자식 교육에는 엄격하셨고 굉장히 열성이었어요. 그래서 가르쳐서 과거에 급제시켰고, 큰 집 조카가 같이 시험을 봐서 동시에 합격했습니다. 정조께서 치하하시고 "귀향해서 부모님께 인사를 드리고 오라"고 해서 종형제분이 하회에 들어오셨어요. 8대 조모가 아들과 조카가 하회에 들어오는 걸 보고 '가히 쌍벽이로다' 하며 '쌍벽가'를 지었다고 합니다."  <류세호 종손 인터뷰 중에서>  


▲ 내방가사 '쌍벽가'(복제품) 북촌댁 안채 마루에 걸린 내방가사 '쌍벽가'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내방가사이다. ⓒ 이호영


<쌍벽가> 원본은 한국국학진흥원에 기탁돼 2022년 유네스코 아시아 ‧ 태평양 기록 유산에 등재됐고 조만간 세계기록유산에 등재될 것으로 기대된다.


하회마을에는 양진당과 충효당, 화경당외에도 고택이 많다. 남촌댁으로 불리는 염행당 고택은 정조21년 류치목이 건립했고, 하동고택은 헌종 때 류교목이 세웠다고 한다. 또 원지정사와 빈연정사, 임진왜란의 회고록인 징비록이 쓰여진 '옥연정사'가 강 건너 부용대 아래에 자리하고 있다.

▲ 하회마을 부용대 부용대, 하회마을 낙동강 건너에 있는 절벽. 정상에 오르면 하회마을을 내려다 볼 수 있다. ⓒ 이호영


하회마을이 한국의 전통을 가장 잘 간직한 마을로 알려지면서 1999년 4월 영국 엘리자베스2세 여왕이 방문했다. 영국 여왕의 '로얄 로드'로 하회마을은 한국을 넘어 세계적인 유명 마을의 반열에 오르게 된다. 그 후 국내외 많은 사람들이 이곳을 찾으면서 2010년 7월 브라질리아에서 열린 제34차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 총회에서 경주 양동마을과 함께 '세계유산'으로 등재된다. 당시 유네스코는 하회마을을 '살아있는 유산(Living Heritage)이라고 극찬하고 자연과 조화를 이루며 살아온 한국인의 삶이 제대로 투영됐고 세계 인류의 문화유산으로서 탁월한 보편적 가치를 지니고 있다고 평가했다.


사람이 살기 힘들었던 하회마을에 터를 잡은 풍산류씨 입향조 류종혜의 혜안은 자신의 대를 넘어 수백 년 동안 후손들의 삶의 기틀을 마련했고 한국의 전통마을 하회마을은 풍산류씨뿐만 아니라 한국인의 삶과 문화를 더욱 풍요롭게 만들게 분명하다.


[기사 출처]

『스토리가 있는 안동여행』안동시. 2023

이호영,「안동내방가사이야기」, 『어와벗님네들』, 민속원, 2023

「리플릿」유네스코세계유산도시 안동


태그:#하회마을#양진당#충효당#화경당#삼신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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