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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동 호서비 Mar 10. 2024

안동문화관광이야기 5. 거꾸로 쓰여진 도산서원 현판

한석봉이 쓴 도산서원 현판,  역락서재, 금송이전 에피소드

5.선조, 한석봉에게 도산서원 현판 글자를 거꾸로 불러주었다.          

도산서원 전교당, 현판 글씨는 '한석봉'이 썼다.

    

도산서원 전교당(典敎堂)에 걸린 현판 글씨 ‘도산서원(陶山書院)은 당대 명필가로 이름 높았던 한석봉이 썼다고 한다. 전교당은 유생들이 가르침을 받고 글을 쓰고 배우던 교실이자 강당이다.      

도산서원 현판 글씨에는 선조 임금과 한석봉의 에피소드가 있다.      

하루는 선조가 석봉을 불러 글씨를 쓰게 했는데, 내용을 직접 가르쳐 주지 않고 글자를 한 자씩 불러주었다고 한다.     

“집 원(院)”, “글 서(書)”, “메 산(山)”     

이때까지도 석봉은 선조가 어떤 글씨를 쓰게 하는지 몰랐지만 마지막 “질그릇 도(陶)”를 부르자 붓을 잡은 손을 떨면서 자신이 도산서원의 편액 글씨를 쓰고 있다는 걸 알았다고 한다. 그만큼 퇴계 선생의 정신이 깃든 도산서원에 대한 무게감을 한석봉도 느끼면서 선생에 대한 존경심에 마지막 도(陶) 자를 쓰기에 힘들었음에 틀림없다. 선조 임금도 ’도산서원‘ 편액을 쓴다는 사실을 알려주면 한석봉이 부담감을 느껴 제대로 쓰지 못할 것을 염려해 한 글자씩 거꾸로 불러주었다는 이야기가 전해온다.


'역락서재' 도산서원 담장 밖에 있다.

역락서재(亦樂書齋)는 도산서원 대문 밖에 담장으로 따로 둘러쳐진 건물이다.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를 쓴 유홍준은 이 건물이 기부금 입학의 전통적인 사례라고 했다.  과연 그럴까?     

역락서재는 지헌(芝軒) 정사성(鄭思誠)의 아버지가 17세 아들을 퇴계 선생께 처음 가르침을 청하면서 지었다고 한다. 하지만 역락서재는 정사성 아버지가 단독으로 짓지는 않았다. 이휘재(李彙載)의 역락서재이건기(亦樂書齋移建記)를 보면 “정사성 후손이 주도하여 지역 선비들의 도움을 받아서 지었다.”라고 되어 있다.      


역락(亦樂)은 <<논어論語>> 첫머리에 나오는 글이다.


“子曰 學而時習之면 不亦說乎아”(학이시습지 불역열호)

“有朋이 自遠方來면 不亦樂乎아”, (유붕 자원방래 불역락호)

“人不知而不 이면 不亦君子乎아”(인불지이불온 불역군자호)     


“배우고 때로 익히면 또한 기쁘지 아니한가

벗이 먼 곳에서 찾아오면 또한 즐겁지 아니한가

남이 나를 알아주지 않아도 노여워하지 않음이 또한 군자가 아니겠는가”

         

역락서재는 지헌 선생의 집안이 주도하고 지역 유림이 함께 지은 공부방으로 기부금 입학과는 거리가 멀다.                 
  

'역락서재' 퇴계 친필. 출처:도산서원 옥진각

                                          

2011년 도산서원 설경. '금송'이 도산서당 앞에 우뚝 서 있다.  출처:도산서원

사진은 2011년 도산서원에 눈내린 모습이다. 도산서당 앞에 우뚝 솟은 나무는 ’ 금송‘이다. 금송은 1970년 도산서원 성역공사를 마무리한 후 박정희 대통령이 기념식수했다. 이후 일본 고유종인 ’금송‘이 민족의 정기와 유학의 심장인 도산서원에 심겨 있다는 사실이 논란이 되었다. 금송을 철거해야 한다는 주장이 빗발쳤다. 그래서 2018년  반세기 만에 ’금송‘이 도산서당 앞에서 제거돼 역락서재 앞으로 퇴출되었다.

         

'역락서재' 앞으로 옮겨진 '금송'

금송이 있던 자리에는 퇴계 선생이 아끼던 매화나무 두 그루가 심어졌다.     

사실 지금의 금송은 박정희 대통령이 심은 나무가 아니다.  70년 당시 서원 보수사업 당시 식재된 금송은 말라죽는 바람에 같은 종을 다시 심어 보존해 왔다고 한다.      

금송 논쟁은 2003년부터 시작됐다가 유교문화권 정비사업이 시행되면서 금송 시비가 다시 일었고 나무를 제거하거나 다른 곳으로 옮기자는 주장이 제기되었다.  왜색 시비와 서원의 경관을 해친다는 논란 속에 금송 자리가 퇴계 이황 선생이 기거하던 도산서당 구역이어서 문화재가 훼손될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됐됐다.                        

한국은행 발행 ’천 원 권‘ 구 지폐 속 ’금송‘ 출처:도산서원


금송은 천 원 권 구 지폐에도 들어있었다. 구 지폐는 금송 논쟁 때문인지 폐지되고 한국은행은 2007년 1월 천 원 권 새 지폐를 발행했다. 새 지폐는 발행과 동시에 새로운 구설수에 올랐다. 새 지폐의 뒷면 정자 그림이 '도산서당이 아니다'라는 논쟁이 한때 일었다.


덧붙이는 말: 도산서원 이야기는 세계유산콘텐츠센터  https://whcc.kr '내가 바라보는 세상이 콘텐츠가 된다' 에도 실려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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