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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동 호서비 Mar 28. 2024

안동문화관광이야기 7. 도산서원 향사에 여성 출입금지?

이배용 전 총장 초헌관 참배

7. 도산서원 향사에 여성은 참석할 수 없었다. 

             

이배용 전 이화여대 총장 도산서원 향사 초헌관 참배 출처:도산서원

 2020년 경자년 추계향사 때 도산서원 사당 상덕사에서  획기적인 사건이 발생했다. 여성이 초헌관(初獻官)으로 임명돼 퇴계 선생께 첫 술잔을 올렸다. 초헌관은 종묘(宗廟)나 능에서의 제례(祭禮)에 삼헌(三獻, 술을 세 번 올림)을 할 때 처음으로 술잔을 신위(神位)에 올리는 직임이다. 지금까지 모두 남자가 봉행하였다.

우리나라 서원 600여 년 역사상 처음 있는 일이다. 이날 이정화 동양대 교수가 여성 제관, 분헌관으로 참여했고,  집사에는 서원관리단 소속 박미경 씨가 봉행하였다.

     

도산서원 향사 여성 초헌관, 제관, 분헌관, 집사 봉행

초헌관이 아닌 여성들의 도산서원 상덕사 참배는 이보다 더 빠르다. 2002년 4월 도산서원은 ’원규시행세칙‘을  고치고 ’ 부녀자'도 남자에 준하여 알묘할 수 있다는 내용을 신설하면서 그해 8월 1일 선비문화수련원생으로 온 여교사 7명에게 상덕사 알묘를 처음으로 허용하였다. 그 후 퇴계 선생께 세배를 드리는 ’정알례‘와 춘계, 추계 향사 때 여성의 참배가 허용되었다. 2002년 여성의 상덕사 참배는 도산서원 건립 후 428년만으로 금녀 구역이라는 오래된 관례가 깨졌다. 그동안 여성들은 도산서원 경내에 들어와 전교당 등 관람할 수 있었지만 전교당 뒤 상덕사의 출입은 엄격히 금지됐다. 

특히 1960년대 모윤숙 시인 등 유명 여성들도 참배를 시도했지만 못했다는 일화가 있다. 

  


陶山聖域과 女性

毛允淑

[조선일보 1969.1.21. 기사]

몇 해 전 일이다. 文學강연차 안동엘 갔다가 도산면에 있는 陶山書院에 마음먹고 찾아갔다. 잔잔한 물기슭을 따라 주름진 野山들이 포근한 감을 주는 마을이었다. 맑은 돌다리를 건너 退溪 先生 제자들은 갓과 도포를 갖추고 아침저녁 건너 마을에서 이곳으로 왕래하였다 한다. 

書院에 들어서니 마당에 돗자리들이 깔려있었다. 男子 文人 몇 분과 同行인지라 우리는 함께 祠堂을 向해 절을 하리라는 것을 알고 마음과 몸 채비를 갖추었다. 4 사람이 신을 벗고 돗자리를 밟으려는데 섬돌 위에 도포 입은 한 선비가 내려서더니 

“女子는 안됩니다. 陶山書院의 규칙입니다.” 

理由인즉 不淨을 탄다는 것이다. 나는 너무 어이가 없으면서도 근엄한 자리에서 싸울 수도 없어 신을 신고 밖으로 나왔다. 아버지께 들은 말이 문득 기억났다. 퇴계 선생의 아내는 끔찍이도 지아비의 속을 썩였을 뿐 아니라, 망신까지 시킨 일이 여러 번 있었는데 흰 도포 앞섶을 태워 가지고 그 태운 곳을 빨간 헝겊으로 기웠다고 한다. 퇴계 선생은 그 옷을 그대로 입으시고 이튿날 아침 弟子들을 만났는데 제자들은 그 옷을 보자 조금도 내색하지 않고 그다음 날 일제히 자기네 도포 앞섶에다 빨간 헝겊을 붙이고 나와 퇴계 선생에게 계면쩍은 감을 일으키지 않도록 했다는 有名한 예기다.

나는 얼른 그 아내의 얼굴을 떠올랐다. 우리 女子는 모두 아내의 후예로 취급을 받아 몇 백 년이 지난 지금에도 그 祠堂에 절을 할 염체마저 박탈당하고 말았나 보다 하면서 退溪先生의 直接 유언인지 모르되 너무 심하고도 옹졸한 처사라고 보아졌다. 사실 같이 간 세 男子文人은 그 전날 잔뜩 취한 막걸리 냄새가 그 아침에도 풍풍 풍겼음에도 절을 시키고 세수 양치 깨끗하고 들어간 나는 쫓겨났으니 분한 마음 금할 수 없었다. 

그런 아내를 가진 분이 어찌 퇴계 先生뿐이며 그보다 더 우둔한 男便을 가진 女人이 어찌 또 그 수를 헤아릴 것이 리오. 모든 것이 융통성 있게 조절되는데 오히려 大聖人이나 大學者의 超人間性이 드러나 머리 숙이게 되는 것이다. 退溪先生은 그래서 惡妻를 가졌던 소크라테스의 짝으로도 우리가 숭배하는 바이다.

이제 그가 나시고 工夫하고 가르치시며 살으시었던 安東 땅에 聖域의 자리를 마련한다 하니 실로 도산면 山川이 더 큰 學問의 고을로 번창해질 것을 기뻐마지 않는다.

다시 더 女性이라 하여 門밖으로 쫓을 것이 아니라 女性이라 하여 더욱더 환영하여 그의 道와 理致를 배우게 함이 성역의 의미를 달성시키는 일이 아니겠는가? 


외국인으로서는 2012년 3월 6일 당시 대북시 민정국장인 黃呂錦茹 씨가 공자 79대 종손 공수장 일행 단장의 자격으로  상덕사에서 종헌관으로 헌작한 사례가 있었다고 한다.

도산서원은 2009년부터 새벽(1시)에 봉행하던 향사 등 의례를 낮(오전 11시)에 봉행하고 2012년부터는 알묘 때에 부득이하게 의복을 갖추지 못하여도 단정한 복장이면 참례가  가능하도록 의규를 바꾸는 등 시대의 흐름에 동참하고 있다. 보물 211호인 상덕사는 퇴계 선생의 위패를 봉안한 도산서원의 사당이다.     

2002년 여성 개방 당시 종손 이근필 옹(2024년 3월 7일 별세)은 

“퇴계 선생은 대장장이를 제자로 받아들인 분입니다. 당시 신분 사회에서는 어림도 없는 일이었지만 선생께서는 신분을 타파하셨습니다. 퇴계 선생께서 지금 살아 계신다면 아마도 여성들을 모두 제자로 받아들이라고 하셨을 겁니다.”라며 남녀 불평등이 본격적으로 사라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알례 참배 기념(2017년) 출처:도산서원선비문화수련원

 덧붙이는 말: 도산서원 이야기는 세계유산콘텐츠센터  https://whcc.kr '내가 바라보는 세상이 콘텐츠가 된다' 에도 실려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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