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떠나지 않는 여름

슬리퍼 한 켤레로 일 년 내내 살아내기

11년 전 하와이에 온 이후, 내 삶의 계절은 여름 하나로 간추려졌다. 일 년 내내 한 계절에 사는 기분은 참으로 이상하다. 계절이 새롭게 찾아오고 떠날 때 느끼는 설렘과 긴장감, 삶의 자연스러운 흐름을 좀처럼 느끼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11년 전 여름에 한국을 떠나 온 나는 아직도 여름에 갇혀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하와이의 기후는 대체로 온화하다. 아무리 더워도 폭염 수준으로 덥지 않고 아무리 추워도 한국의 초가을 날씨보다 따뜻하다. 하와이에도 겨울은 찾아온다. 10월 중순쯤 되면 비가 자주 내리면서 새벽 공기가 차가워지고 12월과 1월 사이에는 아침에 일어나 긴소매 옷을 찾아 입어야 할 정도로 선선해진다. 물론 오전 9시만 되면 햇볕에 모든 것이 달궈지기 때문에 다시 여름이다. 이곳에서 봄학기가 시작되는 1월 중순, 본격적으로 바빠지는 2월부터는 다시 더위가 슬금슬금 고개를 내밀기 시작한다. 가장 더운 시기는 아무래도 5월에서 8월이 아닌가 한다. 5월은 이상하게 더 덥다. 7-8월 한여름에는 오히려 ‘여름이라 더운가 보다’ 싶지만 5월의 한낮에 불타는 햇볕을 맞아보면 정신이 번쩍 난다.


하와이의 뜨거운 햇빛은 피부 속으로 깊이 스며든다. 처음 하와이에 와서 바다수영을 즐길 때 나는 심한 일광화상을 입었다. 피부에 바른 선크림은 수영을 하다 보면 씻겨나가기 마련이고 젖은 피부가 햇빛에 계속 노출되다 보니 노릇노릇하게 익어서 살 껍질이 두껍게 벗겨질 정도의 깊은 화상을 입었다. 속옷 끈만 스쳐도 무척 쓰라리고 아픈 상태가 되었다. 서핑과 바디보드에 한창 빠져 있을 때 나는 매일같이 이렇게 바짝 타고 허물을 벗는 생활을 반복했다. 사실 바깥 활동을 매일 하지 않는다면 이런 화상을 입을 일은 없다. 다만 늘 햇빛에 노출되어 있는 팔다리에 수많은 갈색 점들이 올라오기 시작한다. 발등에는 슬리퍼 끈 자국이 문신처럼 깊숙이 새겨진다. 피부를 보면 그 사람이 하와이에 얼마나 오래 살았는지 알 수가 있다. 일 년 내내 햇빛을 받은 팔다리는 선크림을 바르더라도 오랜 시간 동안 탄 자국이 남고 거뭇거뭇해지기 때문이다.


사람마다 더위나 추위에 반응하는 민감도가 다르기 때문에 일반화할 수는 없지만 하와이는 보통 반팔에 반바지만 입고 일 년 내내 살 수 있는 곳이다. 더운 날씨는 사람들의 옷차림에도 아주 큰 영향을 준다. 일단 옷을 살 일이 현저히 줄어든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계절의 변화에 맞추어 새로운 패션을 선보이고 판매하고 소비하는데 하와이에서는 이러한 순환이 별 의미가 없다. 쇼핑몰의 쇼윈도에는 가을 겨울을 겨냥한 옷들이 전시되지만 실제로 패딩 점퍼 같은 겨울 옷을 사는 사람들은 거의 관광객이거나 겨울이 있는 곳으로 여행을 가는 하와이 사람들일 것이다. 내가 하와이에 처음 왔을 때는 그래도 겨울 니트도 사고 플리스 재킷도 사서 아침에 입을 만큼 겨울 날씨가 선선했는데 10여 년 사이에 지구의 온도가 많이 올라 이제는 더더욱 겨울 옷이 필요가 없게 되었다.


나는 하와이에서 태어나 자란 학생들을 많이 가르치는데 젊은 로컬 학생들을 보면 전형적인 옷차림새가 얼핏 보인다. 남학생의 경우 반팔 셔츠에 보드 쇼츠라고 하는 무릎까지 내려오는 수영복 반바지를 많이 입는다. 또는 운동할  입는 편한 트레이닝 반바지를 입기도 한다. 수영복 반바지를 입고 대학교 수업에 간다니 말로만 들으면 놀랍지만 나름 색깔과 디자인이 다양하고 수영복처럼 보이지 않는 경우가 많아서 눈에 거슬리지는 않는다. 하루 종일  입고 다니다가 수업이 끝나고 곧바로 바다로 향해 물에 뛰어들  있다니, 멋지지 않은가. 여학생의 경우 짧은 탱크탑이나 크롭탑에 짧은 반바지를 많이 입는다. 냉방이 아주  되는 실내에서는 가방 속에 후드 집업이나 얇은 남방 등을 가지고 다니다가 꺼내 입는다. 그리고 남녀 구분할  없이 모두 발에는 슬리퍼를 신고 있다.


한국에서는 쪼리라고 부르기도 하고, 미국에서는 플립플랍이라고 부르기도 하지만 하와이에서는 슬리퍼라고 부르는 이것은 평평한 발 모양의 밑창에 연결된 끈을 발가락 사이에 끼워 신는 신발이다. 하와이 로컬 사람들이 사용하는 피진 (Pidgin) 발음으로는 ‘Slippah’ (슬리-파-)이고 이 슬리퍼에 대한 농담도 많다. 하와이에서 명절에 가족 친척 친구들이 모두 모이면 그날 현관은 슬리퍼 잔치이다. 집에 갈 때 자기 슬리퍼 짝 찾느라 바쁘다. (피진 Pidgin - 모국어가 다른 여러 사람들이 만나 교역이나 노동을 하는 등의 상황에서 언어들의 접촉을 통해 자연스럽게 탄생하는 ‘섞이고 간소화된’ 언어. 하와이 피진의 경우 영어를 기본 틀로 하고, 플랜테이션 노동자들의 다양한 모국어의 영향을 받았으며 하와이어 어휘가 많이 사용된다. 영어처럼 들리지만 발음이 변형되거나 ‘비문법적인’ 표현이 많아서 사회적인 낙인 요소가 있다..)


그럼 하와이에서는 슬리퍼를 신고 어디든지 갈 수 있을까? 대부분은 그렇다. 물론 사무직의 경우 회사에는 신고 갈 수 없고 격식 있는 레스토랑에서도 슬리퍼 착용 입장을 금지하는 곳이 있다. 하지만 여성의 경우 슬리퍼 수준의 편안함을 주는 낮은 굽의 적당히 점잖은 샌들을 착용한다면 어디든 신고 갈 수 있을 것이다. 미끄러운 바닥을 걷거나 무거운 것을 들거나 몸을 많이 움직이는 하는 일을 한다면 슬리퍼 착용은 금지된다. 학비 때문에 잠시 식당 주방에서 일한 적이 있는데 부상 위험 때문에 슬리퍼 착용을 금지했다. 평생 슬리퍼만 신고 살 것 같은 하와이 아저씨들과 일하는 남편의 직장에서도 안전의 이유로 슬리퍼를 신지 못하게 했다.

하와이에 살면서 내 옷장은 아주 간소해졌다. 학교에서 강의할 때 입는 셔츠와 긴 바지 외에 나머지는 모두 면티와 반바지이다. 계절감을 옷으로 표현하는 것을 즐기던 한국에서의 옷 입는 방식은 이곳에는 어울리지 않는다는 걸 살면서 터득했기 때문이다. 굽이 있는 신발을 신는 건 어디든 펼쳐져 있는 풀밭을 걸어야 하기에 편하지가 않고 해가 뜨면 밖에서 조금만 움직여도 땀이 줄줄 나기에 홑겹의 얇은 옷을 입어야 한다. 그러다 보니 하와이 사람들의 옷차림은 격식에서 너그럽고 패션에 대한 엄격한 잣대로부터 자유롭다. 여기에는 관광객들이 많다는 사실도 한몫한다. 물놀이와 야외활동을 즐긴 뒤 거리를 서성이는 관광객들은 활동하기 좋은 편안한 옷차림을 하고 있다. 한낮의 와이키키엔 수영복을 입은 채로 걸어 다니는 사람들도 많다. 이런 분위기가 너무나 자연스러운 하와이에서는 그 누구도 편한 반바지 반팔 차림으로 쇼핑몰을 돌아다닌다고 해서 낮춰 보거나 눈치를 주지 않을 것이다.


이 때문에 하와이의 일상에서 정장을 빼 입은 사람을 찾아보기는 하늘의 별따기이다. 검은 수트 정장에 구두를 신은 사람은 어딜 가든 눈에 띈다. 이런 차림새의 사람은 대략 두 군데에서 볼 수 있다. 하나는 비싼 명품샵 근처에서이다. 와이키키나 알라모아나의 명품샵에 가면 문 앞에 서 있거나 상점 안에서 맞아주는 말쑥한 정장 차림의 직원들을 볼 수 있다. 또 하나는 다운타운 비즈니스 디스트릭트에서이다. 중요한 업무가 있는 전문직들이 간혹 수트를 빼입고 지나다닌다. 하지만 날씨가 더운 하와이에서는 갑갑한 양복 대신에 알로하셔츠에 정장 바지를 포멀 한 옷차림으로 인정한다. 부드러운 옷감과 튀지 않는 색감과 무늬의 알로하셔츠는 하와이대학교 남자 교수님들의 교복 같은 착장이다. 직장 여성들은 좀 더 선택의 범위가 넓다. 민소매 원피스부터 블라우스에 바지 차림까지 다양하긴 하지만 여전히 본토나 한국 직장인들에 비해서는 단출한 편이다.

사실 하와이에서는  입어도 괜찮다. 적어도 나는 그렇게 느끼고,  옷차림에 대해서 과도하게 의식하거나 신경 쓰지 않고 다니는 것에 대해 익숙해졌다. 하지만 평소의 내가 서울의 동네 거리를 걷거나 지하철에 오른다면 무심하고 추레하기까지  옷차림에 지나가는 사람들의 눈길이나 수군댐을 피하지 못할 것이다. 차려입지 않을 자유, 화장하지 않을 자유이런 자유로움이 보장되어 있다는 믿음 덕분에 나는 평소 외출  한두 시간은 머리를 싸맸던 ‘무슨 옷을 입어야  있어 보일까 대한 고민에서 해방되었다. 물론 하와이에서도 완벽한 패션을 추구하고 즐기는 이들이 있고 세계 어디서든 간편한 옷차림을 일상화하는 삶을   있다. 그렇지만 하와이에는 분명히 체면과 시선으로부터 너그러운 문화가 존재하고 나는 시간이 갈수록 이런 삶의 방식에 매료되고 익숙해지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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