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켜야할 선: 썸탈 때는 문어다리 OK, 교제 때는 한 사람에게만 올인
이 남자와의 첫 소개팅 장소는 삼성역 파크하얏트 24층에 있는 더라운지였다. 디너코스가 한식 스타일 스테이크로 꽤나 괜찮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두 번째 만남은 파크하얏트 팀버하우스에서 만났는데, 하모니디너코스라는 일식 오마카세를 먹고, 그곳 Bar에서 위스키 테이스팅 플라이트로 다양한 위스키를 시음해볼 수 있었다. 데이트 장소들은 모두 근사했고 분위기 있었으며 그의 매너도 젠틀하고 좋았다. 그는 부동산 관련업을 하는 것이 어울릴만한 마동석같은 건장한 풍채를 가진 남자였다. 그런 듬직해보이는 인상과는 달리, 긴장한듯한 표정과 말투를 보였다. 많은 여자를 만나본듯한 청산유수의 남자들보다는 수줍은 듯 보이는 모습이 호감이 갔었다. 이후 그는 내가 다니는 회사로 직원들 명수에 맞게 커피를 보내주는가 하면, 집에서 야근 중인 날에는 우리 집으로 디저트를 보내주기도 했다. 나 또한 받기만 하는 건 잘 못하는 편이라 그가 쓴 데이트비용과 보내온 선물들에 상응할만한 선물을 카톡으로 보내드리기도 했다. 다른 것보다 적극적으로 내가 좋아하는 것들을 캐치하려 노력해주시는 게 보여서 감동한 부분들이 많았다.
하지만 나는 다른 분들과의 만남도 선약이 되어 있었고, 아직 그에 대한 내 마음도 모르겠는 상황이었기에 어떤 표현을 하기는 좀 어려웠다. 나의 속도보다 그의 속도가 너무 빨라서 부담이 되려던 찰나, 일이 터지고 말았다. 사귀는 사이도 아닌데 그가 어느 순간 나의 스케줄을 관리하려 들고, 나의 일거수일투족을 다 알려고 들었다. 배달을 받긴 받았으나, 그가 집착적으로 변모하기 시작할때쯤 나의 회사 주소와 거주지 주소를 알고 있는 것이 많이 불편해지고 꺼림칙하게 느껴지기 시작했다. 그는 포르쉐 포함하여 차만 3대가 있었기 때문에 나와 데이트를 할때마다 다른 차를 타고 왔었다. 그에게 마음이 식은 2가지는 차 포함하여 현금만으로 엄청난 부자였으나 부동산 자산을 마련해놓지 않았고, 매수타이밍만 계속 쟀었던 것과 계속 집착스러운 모습을 보이며 선을 넘는 언행을 했던 것, 이렇게 두가지였다.
안정된 결혼생활의 첫 번째로 꼽은 것이 1주택 소유 여부였기 때문에, 그의 말대로 매달 300~500선의 신축아파트에서 월세생활하는 것은 너무나 불안정하게 느껴졌다. 지금 생각해보면 이건 흠은 아니었다. 매달 2천만원 이상의 현금흐름이 나오는 사람이었고, 월세 몇백을 감당할 수 있을 정도면 경제적으로 불안을 느낄만한 게 아니었지만, 그 때의 나로선 레퍼런스가 될만한 주변인물(자산가와 결혼한)이나, 나의 지금 상황을 고민상담할만한 사람도 없어서 나만의 기준으로 판단하게 되었다. 그 때 당시는 부동산 불장이었기에 부동산 자산 여부가 결혼상대를 고르는 큰 축일 수 밖에 없었다. 그렇다보니 부동산과 그의 언행들까지 해서 그에 대한 마음이 점점 사그라들고 있었다. 사실 지금도 1주택이 있는 상태에서 월세를 사는거면 모를까, 무주택상태에서 상급지 아파트에서 몇백의 월세살이하는 건 말이 안된다고 생각하고 있다.
어쨌든 그는 지리지리한 통화를 2시간 이상 하는 스타일이었고, 나는 여러 대화들을 해보며 그에게 호감이 갈만한 요소들이 있는지 계속 탐색을 했었다. 하지만 기억도 안날만큼 대화는 지루했고, 세번의 만남과 세번의 통화를 끝으로 그에게 서로 알아가는 걸 그만하자고 말하게 되었다. 그는 나에게 양다리냐, 문어다리냐 라는 말들을 하며 내가 잘못되었다고 했다. 썸타는 사이에 너무 간보는 거 아니냐며 욕을 할 수는 있겠지만, 한 사람과 썸타는 중에 다른 사람과 데이트를 해보는 것에 대해서는 비난받을 일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교제를 시작한다는 것은 서로에게 ’단 한사람‘ 이 되어주겠다는 약속이다. 이 약속을 할 단 한 사람을 찾기 위해 두세명 이상의 사람과 동시에 데이트를 해보는 것이 왜 비난받을 일일까. 회사에서도 한 사람을 뽑기 위해 수많은 사람들을 동시다발적으로 면접보지 않던가. 서로에게만 집중하는 사이가 될 것을 약속하는 교제 자체는 얼렁뚱땅 대충 고르고 몇주도 안되어 헤어지면서도, 왜 썸타는 것에 대해서는 그렇게나 1인1썸을 강조하는 것일까. 그와 나는 그런 약속을 하지 않았고, 교제하는 사이가 아니라면 어떤 누구도 상대에 대해 구속할 권리는 없다. 한 사람과 썸을 타다가 중단하고 다시 다른 사람을 소개받는 순차적인 썸을 할지, 여러 사람을 소개받고 동시에 썸을 타는 동시다발적 썸을 탈지는 선택의 문제이다. 이 부분에 대해 골드스푼 어플 라운지에서 누군가는 욕을 하기도 하고 누군가는 이게 왜 잘못되었냐며 싸우는 소모적인 일들이 많이 생기곤 했다. ’교제는 단 한사람과‘ 라는 철칙을 절대 고수하게 되면, 이 철칙을 잊지 않을수록 정말 더 신중해지고 더 똘똘하게 사람을 고르게 되고 교제를 신중하게 시작하게 된다. 결혼적령기의 여성일수록 나는 소개팅을 많이 해보기를 권하고 싶다. 많은 소개팅 만남들을 통해 분명 나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더 명확하게 알게 된다. 그리고 결국엔 한 사람으로 수렴되는 그 지점까지 꼭 갈 수 있음도 알려주고 싶다.
결국 그 남자는 2시간이 넘는 통화 때에도 진지충스러운 면모로 지루함을 안겨주었던 것 처럼, 끝맺음을 할 때에는 시리어스함과 집착적인 면모들로 힘든 안녕을 고했다.
데이트 코스 ★★★★★
경제 능력 ★★★★☆
매력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