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써 5년 전의 일이다. 금리가 많지 않던 시절, 한 은행에서 4%+1.1%를 준다는 이야기를 듣고 은행에 달려갔었다.
하루에 은행 지점당 30 계좌만 개설된다고 해서 아침 6시에 일어나 7시까지 은행 앞에 가는 걸로 스케줄을 잡았다.
6시 50분쯤 은행 지점 앞에 막 가려니 벌써 줄이 길게 늘어서 있는 게 보였다.
손가락으로 머릿수를 세워보니 내 앞에서 대기번호가 마감되었다,
내 바로 앞에 사람이 안쓰러운 표정으로 길 건너편에 지점이 하나 더 있으니 빨리 가보라고 했다.
그 말을 듣자마자 머리카락 휘날리도록 뛰어 도착했더니 거기도 이미 줄이 길게 뻗어 있었다.
'이번만은 제발 나까지 번호가 오기를'이라고 속으로 되뇌고 숫자를 세보니 내가 딱 마지막 30번째였다.
속으로 아싸라비야 콜롬비야를 되뇌고 있으니 은행 관계자분께서 번호표 30번을 주셨다.
좋았던 것도 잠시, 주위를 둘러보니 여기저기 서류 같은 걸 들고 있는 게 보였다. 혹시 준비해야 할 서류가 있냐니까 나를 한심한 눈으로 쳐다보며 그것도 모르고 여기 서있느냐는 말투로 말해주었다. 그렇다. 아이 통장을 발급받을 때는 챙겨가야 할 서류가 따로 있었다. 주민등록증만 챙겨 간 내 불찰이었다.
아이 통장 개설할 때 필요한 서류는 아이 명의 도장, 아이 이름 나온 기본 증명서, 주민번호 다 나온 가족관계증명서, 방문한 부모 거랑 아이 거, 부모 신분증, 입금할 돈이 필요하다.
은행 업무 시간이 다 되어서 문이 열리고 초조한 마음에 서류 없으면 오늘 온 게 헛수고 인가? 싶던 찰나에 은행 청원경찰분이 서류 가져왔냐고 일일이 물어보셨다.
다행히 나 같은 사람이 또 한 명 있었다. 남자분이셨다. 멋쩍게 서로 눈인사를 했다.
물어보지도 않았는데 아내가 시켜서 왔다고 답해주었다.
동사무소에 가서 서류를 빨리 떼오라고 해서 그분과 무언의 동행을 시작하게 되었다.
마을버스를 타고 가야 제일 빠른 주민센터가 나와 정류장까지 열심히 뛰었다.
주민센터에서 대기번호를 받고 내가 저 사람보다 빨리 가야겠다는 이상한 경쟁심리가 들끓었다. 다행히 내가 서류를 먼저 발급받고 다시 은행에 가기 위해 정류장을 향해 뛰었다. 내가 탄 버스가 먼저 은행을 향해 달려갔다.
은행에 도착하자마자 땀범벅인 나를 보며 은행 직원이 수고했다고 말을 해주었다.
다행인 건 아직 번호 28번이 전광판에 찍혀 있었다. 아직 내 순서가 안 왔었다.
이 짜릿한 쾌감이란. 같이 갔던 남자분도 그제야 문을 열고 들어오고 있었다.
30번째 번호가 띵똥 울리자 아직 숨 고르기였던 나는 헉헉거리며 은행 창구 앞에 앉았다. 은행 직원이 주는 종이에 적고 사인하고 서류를 제출하니 아이 통장 만들기가 그렇게 끝이 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