센트리우스의 출간 일기 (5)
초고를 전부 다 쓰고 나니, 기나긴 여정 내내 지고 다녔던 무거운 짐을 내려놓은 낙타의 심정이 되었다. 낙타에게 사람과 같은 지능이 있다면 아마도, '뭔가 편안하군!' 하는 느낌과 함께 '이제 어디로 가야 하지?' 하는 걱정을 동시에 하지 않았을까?
"수고 많으셨어요, 이제는 잠시 원고에서 멀어져 있으세요"
원고를 쓰는 동안 지도를 해 주셨던 위너책쓰기의 대표님께서는 축하 인사와 함께 의외의 말씀을 전하셨다. 당장 퇴고에 들어가거나 하지 말고 잠시 원고에서 거리를 두고 휴식을 취하라는 것. 처음에는 의아한 생각이 들었는데, 시간이 지나고 나서 생각해 보니 몇 가지 이유로 인해 초고를 쓰고는 잠시 숨을 고르는 편이 좋은 것 같다.
1. 초고를 쓸 때의 격한(?) 감정이 가라앉아야 내 글을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다.
출간을 위해 글을 쓸 때, 초고라고 해서 아무렇게나 대충 쓰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누구나 본인의 지식과 글솜씨를 총동원해서 최선을 다 하게 되며, 그래서 초고를 완성한 직후에 원고를 검토하면 너무 잘 쓴 것 같은 착시현상이 들 수 있다.
슬램덩크의 강백호는 점프슛 연습을 시작할 때만 해도 본인의 폼이 이상적이고 멋지다고 생각하고 있었지만, 그날의 연습이 끝난 후 촬영된 비디오를 보고 충격에 빠지고 만다. 이처럼 우리의 글도 객관적으로 돌아보는 것이 필요한데, 잠시 숨을 고르고 나서 초고를 읽어보게 되면 처음에는 보이지 않았던 내 글의 단점이 드러나게 된다.
"이 문장은 너무 길어지다 보니 비문이 되어 버렸네"
"~했으니 ~했다. 이런 표현이 너무 반복되는데"
"이 부분은 ~를 더 강조했어야 했어"
"여기 ~부분은 첫 번째 파트에서 이야기했던 내용과 거의 똑같은 내용을 다시 써버렸네"
강백호의 점프슛 실력은 본인 스스로가 본인의 부족함을 깨우친 이후에 더 빠른 속도로 좋아졌다. 초고를 검토하다 보면 부족하다 못해 창피한 느낌이 들 때가 있지만 걱정할 필요는 없다. 아무리 좋은 작가들도 거치는 과정이며, 내 예전 글을 읽고 부족한 점을 발견했다는 것은 그만큼 성장했다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2. 초고를 완전히 뜯어고치기 전에 출간 방향을 잡아야 한다.
퇴고를 본격적으로 시작하기 전에 반드시 결정해야 하는 것은, 출판 방향을 잡아야 하는 것이다. 출판 방향에 따라 퇴고의 방향이 완전히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1) 자비 출판, PDF 전자책 제작
개인 돈을 들여서 자비 출판을 하는 경우나 따로 비용이 발생하지 않는 PDF 전자책을 만드는 경우라면 출판 일정과 원고의 콘셉트 등 모든 것이 작가의 마음대로이다. 극단적으로 퇴고 없이 바로 책을 출판해도 되고, 본인 마음에 들 때까지 수정한 뒤에 출판해도 아무 문제가 없다. 그저 본인이 충분히 숨을 고른 뒤에 퇴고에 들어가면 된다.
2) 기획 출판
출판사로부터 계약 제의를 받아 기획 출판을 성공하고 싶은 작가라면, 초고에 손을 대거나 크게 원고를 수정하기 전 먼저 출판사와 커뮤니케이션하는 과정이 반드시 필요하다. 초고를 전부 쓰고 나서 한참을 수정했는데, 만약 계약하기로 한 출판사에서 원고의 대대적인 수정을 요청하거나 책의 콘셉트를 바꾸는 것을 원한다면 애써 고쳐놓은 부분을 상당 부분 덜어내야 한다.
한 장사가 우물을 만들기 위해 열심히 땅을 파고 있다고 생각해 보자. 옆에서 그 삽질 솜씨를 높게 평가한 누군가가 다가오는데..
"어휴, 힘이 정말 좋으시네요, 저희와 함께 우물을 만들어 봐요. 그런데 거기는 땅이 너무 딱딱한 것 같은데 여기 오셔서 이쪽을 한번 파 보시는 것은 어떠세요?"
라고 한다면, 본인의 솜씨를 인정받은 것까지는 기분 좋으나, 기존에 파던 땅은 그야말로 의미 없는 삽질이 되어버릴 수 있다.
초고를 완성했다면 그 초고의 모든 부분이 완벽하지는 않다고 해도, 분명히 출판사 편집자분들의 눈길을 끌 만한 매력적인 부분은 있을 것이다. 그런 부분 위주로 출판사에 어필해서, 나와 함께 책을 만들어 갈 출판사가 있을지 찾아보는 과정이 우선이라고 생각한다.
3. 주변의 애정 어린 평가와 냉정한 평가도 필요하다.
초고에 손을 대기 전에, 주변의 사람들이나 전문가들에게 내 글에 대해 평가를 부탁하는 것도 필요하다. 특히 주변에 책을 많이 읽는 가족, 친구가 있다면 너무 부끄러워하거나 망설이지 말고 나의 글이 어떤 장점을 갖고 있는지, 한계는 무엇인지 검토를 요청하는 것이 필요하다. 다만 혹시라도 내 초고가 좋은 반응을 얻지 못하고, 주변에서 모두 냉정하게 평가를 내리더라도 너무 주눅 들지 말자. 오히려 칭찬보다는 따끔한 충고의 한마디가 초고를 개선하는데 큰 도움이 될 수 있다. 스타크래프트나 축구를 봐도 해설을 하거나 훈수를 두는 것은 쉽지만, 실제 플레이하는 것은 어렵다.
브런치 글을 쓰면서도 느끼는 것이지만, 짧은 블로그 글이나 브런치 글을 쓰는 것도 상당한 시간이 소요되고 에너지를 써야 한다. 그런데 책 한 권 분량의 초고는 오죽하겠는가? 만약 당신이 충분한 분량의 초고를 완성했다면 그 자체만으로도 충분히 칭찬받을만하다. 앞으로 작가로서 성장해 나갈 수 있는 씨앗을 뿌린 것이라고 생각한다! 다음 글에서는 출판사의 시선을 사로잡는 출간기획서 쓰는 방법과, 원고를 투고하는 방법에 대해 알아보도록 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