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낭만젊음사랑XBIFF

2023 BIFF의 낭만과 젊음, 사랑을 기대하며 -

by 카도

낭만젊음사랑

대구 중구 국채보상로 634 2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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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문대 앞에 서서 낭만/젊음/사랑 중 하나를 골라야했다.

어릴 적에는 당연히 사랑이지-하며, 무턱대고 눈에 들어오는 사랑을 골랐겠지만 옆에 적힌 맛과 향, 균형감 내용을 하나씩 하나씩 다 읽은 뒤에야 겨우 한 잔 고를 수 있었다. 그것은 '낭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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낭만은 초콜릿한 바디감에 메이플 시럽의 단맛이 특징이며 젊음은 베리류의 산뜻한 산미와 와인을 머금은 듯한 끝맛이 특징이고 사랑은 높은 고도에서 자란 커피 체리를 사용해 여러 향미를 동시에 느낄 수 있는 치명적인 맛의 특징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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낭만을 위한 시간이었다.

얼마만의 글쓰기인가 싶을 정도로 2년만에 다시 시작하게 된 1개월 짜리 글쓰기 모임은 예정과 다르게 불금을 장식하게 됐다. 본래 신청할 당시만 해도 목요일이었는데, 일정과 겹치게 되면서 다음날인 금요일로 변경된 상황이다. 이번 모임의 진행자이면서 아이덴티티인 작가님께서는 흔쾌히 금요일의 일탈을 수락해 주셨다. 첫 모임 날, 우리는 <새 시작>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새로움은 언제나 낭만적이었다. 처음으로 모임 내 사랑이라는 주제를 빼고 다른 주제들로만 글을 써보고 싶다는 말씀과 더불어 고인물로 형성된 목요일날의 글쓰기 모임 소식은 이번 글쓰기 모임이 얼마나 건전하고 유려한지를 판단할 수 있는 지표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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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를 만난 건, 프로그램 중 일환인 생산적 활동에서였다. 물론 그는 모임에 출현한 나를 기억하지 못하는 눈치였다. 그는 볼 때마다 친절했고, 귀품이 있었다. 유료 글쓰기 모임이니 당연히 참여자 개개인을 보살피고 신경 써주어야 하는 것은 어찌보면 당연한 순리이겠지만 뒤죽박죽인 모임만 보다가 스케줄이 잡힌 모임을 참여하다 보니 마음이 편안해졌다. 기한 내 글을 써야 하는 것이 조금 수고로운 면은 있었지만, 회사에서 잠깐 짬을 내어 단편 한 작을 써내려 갈 때, 아 나는 정말 글쓰는 걸 빼면 시체구나 싶었다.


어느 한 날은 사람들과 이야기를 하다가 '출판사' 언급을 하게 되었다. 웃긴 것은 내가 미팅 약속이 잡혔던 출판사의 이름을 전혀 기억하지 못한 사실이다. 어떻게 보면 제대로 된 출판사에서 '소설'로 처음 연락을 주신 건데, 이걸 까맣게 잊어버리다니, 스스로가 참 멋없게 느껴졌다. 낭만을 잊은 이십 대 초반은 이토록 수고롭고 정없는 존재였던지_단맛도, 신맛도, 치명적인 형태의 향기도 머금지 못한 채 직장인이 되었다. 제법 괜찮은 삶을 수확 중이라 믿고 있었는데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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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는 젊음을 위해 부국제로 향했다. 그때 처음으로 양조위 굿즈를 샀고, 화양연화 부스 앞에서 낭만을 찾았고 감독님과의 짧은 만남과 토크쇼로 현실의 묵은 찌든내를 벗겼다. 그들은 각자 다 하고 싶은 말과 삶을 그려내고 있었다. 토크쇼가 끝나고, 젊은 남자 감독 옆으로 한 여성분이 다가가 이것저것 질문을 하는데, 나는 옆에서 그 모습을 흘깃거렸을 뿐이었다. 영화, 나에게도 영화가 꽤 큰 젊음이었던 시절이 있었다. 그때는 지금만큼 드라마나 전시를 좋아하지 않았을 무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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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 동네방네비프에서 최동완 선수를 만났다. 그는 젊은 시절 내내 야구에 열광했고, 야구와 동기화되는 삶을 살았다. 그를 추억하고 회고하는 선수들의 뜨거운 말들을 보며 그와 동시에 스크린 너머로 반짝이는 보랏빛 광안대교를 보며 가만, 생각에 잠겼다. 계단에 앉아 보는 형식이었기 때문에, 영화가 끝나기도 전에 자리에서 일어나 이곳을 벗어나는 사람들을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반짝이는 젊은날, 나는 글쓰기 모임에서 젊음이 축복인지 모르겠다는 말을 덧붙였다. 어떤 한 분께서는 나의 글을 보며 충격을 받았다고 했다. 전혀 생각지도 못한 관점으로 젊음을 이야기했기 때문에, 공감이 가기보다는 충격적이랬다. 나와 같은 나이인 다른 참여자 역시 그녀의 의견에 동의했다. 오랜만이었다. 젊음에 대한, 시작에 대한 이야기를 글로 써서 입으로 소리내어 읽은 것도, 남들이 나의 글에 대해 평가해주는 것도, 애초에 몇날 며칠까지 글을 써서 제출해야지-라는 생각을 은연 중에 계속 하고 있는 자태가 근 2년만이었다. 그때도 꽤 재미있었다. 그 전에 이십대 초반 때 발 담근 수필 모임도 꽤 유익했었다. 그중 한 수필은 공모전에 출품하여 수상까지 한 영광을 안았다. 역시, 나는 무엇이든 말로 해야, 말로 되뇌어야 살아있음을 느끼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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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_지친 몸을 이끌고, 어머니를 불렀다. 어머니와 커피를 사갈 동안 잠깐 이야기를 해야겠다 싶었다. 실제로 커피가 나올 때까지 시간이 조금 걸렸다. 그 사이 나는 앞으로의 일과를 언급하며, 집에 없는 시간이 꽤 길어질 것 같다고 전달했다. 몰랐는데 방문이 열려있을 때 내가 보이지 않으면, 아버지께서 내심 걱정하신다고 전해 들었기 때문이다. 그날은 약간 추웠다. 벤치에 앉아 어머니와 담소를 나누는데 내가 젊은날의 내 삶을 낭만이라, 사랑이라 부르지 않는 나를 용서하지 못하겠다라는 이야기를 거침없이 꺼냈다. 달은 예뻤고 아파트 동마다 훤히 켜진 불빛들이 반짝였다. 아이스 커피를 휘저으며, 나는 어떻게 해야 이 재미없음 상태에서 벗어날지를 물었다. 어머니께서는 정말 충전이 안 되는 것이냐고 물어오셨다.

그냥 그런 말이었고 비유였다.

3만 명과 함께한 무대 위를 벗어난 연예인들도 그렇고, 퇴근길을 나서는 남들도 다 사는 게 그렇듯 공허함, 그 이로 말하기 어려운 채워지지 않는 요상한 상태를 겪는 나는 항상 허기져했다. 고단한 삶이 고픈 것, 딱 그런 상태


"그래. 배가 고프고 허전한 거랑 같다며. 그럼 밥을 먹는 걸로는 해소가 안되나?"

"뭘 먹어도 맛이 없잖아. 그냥 뭘하든 재미가 없긴 없더라고. 계속."

"밥을 먹고 나면 알아서 풀리던데. 우리는 맛이 안 중요하다. 쉬고 싶을 때 쉬면 풀리고, 혼자 있고 싶을 때 혼자있으면 괜찮아지고. 시장이 반찬이라고 배고플 때 밥에 물 말아서 김치랑 먹어도 또 그런대로 살만하고 행복하다. 맛이 뭐가 중요한데?"


음, 그러니까 나는 무슨 음식을 먹어도 고무나 찰흙을 씹는 맛인 상태에 놓여있는 건가? 체한 상태나 토한 상태, 역류 중인 삶을 살고 있는 것은 아니지만 단순히 여행을 간다/혼자 있다/휴식한다/새로운 모임을 시작한다로는 해결이 안 되는 지점에 놓여있다. 글쓰기 모임을 시작했다는 말과 더불어 이것이 나를 조금이나마 채울 수 있는 근원지가 되기를 바란다는 나의 말에도 어머니께서는 삶의 맛, 향, 바디감이 대체 왜 중요한 것이냐며 되물어오신다. 글쎄, 커피를 마시고 싶다 해서 아무 커피나 마시고 싶지 않은 내가 너무 까탈스럽게 살고 있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요즘 나는 지금 하고 있는 일이 무사히 마무리 짓기를 바라고, 새로운 모임에서 마음 맞는 사람 한 둘과 적당한 인연으로 이어지기를 바라고 또 3월에 나올 더 글로리 시즌 2를 목 빠지게 기다리며, 심심할 때마다 더 글로리 요약본 유튜브 영상을 챙겨보고 있다. 내 삶을 달여서 마시고, 거하게 먹고, 취하고, 함께 여행할 날들을 그리고는 있지만 나는 어머니가 될 수도 없고 여행자의 심장으로 살 수도 없는 것만은 확실하다. 사랑, 내 삶을 지탱하고 영위할 수 있을 만한 사랑을 찾아야겠다. 그것이 어딘가에는 소잿거리로 남아 나를 기다리고 있음에 틀림없다. 다시 나의 삶이 무취와 무미에서 벗어나 낭만_사랑_젊음을 되찾을 것이라 믿는다. 오늘만은 그렇게 믿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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