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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순범 Sep 18. 2023

[월간 영화기록] 여름의 기록들

7월과 8월의 영화 별점과 단평

[월간 영화기록]은 월마다 간단한 소회와 함께, 영화관에 개봉 혹은 OTT에 공개된 영화들을 총정리하여 별점과 간단한 평을 남기는 공간입니다.

7월과 8월은 그야말로 혼돈의 극장가였다. 우선 한국 영화의 위기가 진짜인지 확인하는 시간이었다. <밀수>, <비공식작전>, <더 문>, <콘크리트 유토피아>가 연달아 개봉하며, 한국 영화가 흥행을 얼마나 기록할지 기대와 우려가 섞여 있었다. 결국 <밀수>와 <콘크리트 유토피아>는 웃었고, <비공식작전>과 <더 문>은 울었다. <비공식작전>과 <더 문>은 같은 날, 동시에 개봉하는 신의 한 수(?)를 두었는데, 이것이 자충수가 되고야 말았다. 또한 <더 문>은 한국 영화의 고질적 문제인 신파가 더 이상 통하지 않는다는 것을 확인시켜 주었다. 결국 <더 문>은 입소문이 안 좋아지면서 100만도 기록하지 못하고, 눈물을 머금고 VOD 시장으로 먼저 출발하였다.

더군다나 8월 15일 영화관에 <오펜하이머>라는 핵폭탄이 떨어지면서 한국 영화는 더욱 힘을 받지 못하였다. <오펜하이머>는 IMAX라는 특수관을 적극적으로 이용하면서 그야말로 문전성시를 이루었다. 우리나라에서 유일하게 1.43:1 IMAX 비율로 볼 수 있는 용산 CGV는 지금도 명당자리 얻기가 쉽지 않다. 아무래도 크리스토퍼 놀란이 보여주는 플롯의 도술은, 3시간이라는 러닝타임이 장애물이 되지 않는 모양새다.

나에게 이번 여름은 혼곤한 계절이었다. 어디로 가야 할지 결정하지 못하여, 몸은 게으르고 마음은 여유가 없는 역설적인 상태가 되었다. 학원도 다니고 글도 계속 쓰고 있건만, 과연 이 길이 맞는지 고민하느라 지독한 압박감에 시달리는 느낌이었다. 이 상태가 방황인지, 부유(浮遊)인지 알 수 없어 더욱 괴롭다. 방황이라면 방향을 잡아주는 것이 필요하지만, 부유하는 상태라면 가만히 기다리면서 자신을 돌아보는 것이 낫기 때문이다. 결국 모든 선택은 나의 몫이니 더욱 치열하게 고민하는 수밖에.


"한 알의 모래 속에서 세계를 보며

한 송이 들꽃에서 천국을 보라.

손바닥 안에 무한을 거머쥐고

찰나 속에서 영원을 보라."


윌리엄 블레이크의 시를 떠올리며, 여름의 기록들이다.

(이번 여름의 기록들은 7,8월에 관람한 영화가 전부 포함되어 있습니다. 각 영화에 사진을 전부 넣으면 글이 지나치게 길어져서 제가 재미있게 본 영화 위주로 사진을 넣었습니다.)

(브런치스토리의 경우 별 반개가 표시가 되지 않아서 점수도 함께 표시합니다.)


<보 이즈 어프레이드>

감독 : 아리 애스터


'천의무봉'의 환상적 시각 스타일로 심연을 표현하는 아리 애스터의 영화적 도술.

지나친 사랑을 받았기에, 오히려 사랑을 갈구하는 역설적 존재의 여정이 '탄생의 물'에서 '죽음의 물'로 귀결되는 순간 서늘한 무력감마저 맴돈다.

★★★★☆(4.5)




<엔니오: 더 마에스트로>

감독 : 쥬세페 토르나토레


영화가 바로 떠오르는 음악은 어떻게 탄생하는가.

★★★(3.0)



<미션 임파서블: 데드 레코닝 PART ONE>

감독 : 크리스토퍼 맥쿼리


히치콕스러운 구성으로 관객을 하나의 탐정으로 만드는 이 영화는,

각본에서 매우 냉정하고 액션에선 매우 열정적으로 접근한다.

다시 1편으로 돌아가는 듯 정통 첩보 스파이물로 회귀하면서, 이제 고전적인 품격까지 갖춘 <미션 임파서블> 시리즈.

★★★★(4.0)



<바비>

감독 : 그레타 거윅


메시지 그 자체보다, 그 메시지를 갖고 놀면서 유머를 구사하는 영리한 컬트적 유희 정신.

★★★☆(3.5)




<보통의 카스미>

감독 : 다마다 신야


난 가끔 내가 이런 사람이라

난 고작 내가 이런 사람이라

좋을 때도 있고 싫을 때도 있고

소름 끼치도록 이상할 때도 있죠

내가 불쌍한가요 아니면 반갑나요

그게 뭐가 됐든

좀 더 살아보려구요

-박소은의 노래 <좀 더 살아 보려구요>

★★★(3.0)




<왬!>

감독 : 크리스 스미스


서로가 이끌어주고, 버팀목이 되어주고, 놓아줄 때를 정확히 아는 사람들이 만든 노래들.

★★★(3.0)




<러브 라이프>

감독 : 후카다 코지


이기적인 이타심을 이해시키기 위한, 이해하기 힘든 영화의 타이밍들

★★☆(2.5)




<비밀의 언덕>

감독 : 이지은


솔직하지 않더라도 타인의 마음을 헤아리고 자신의 마음을 묻어두는 비밀의 언덕.

그렇게 또 다른 방식으로 마음을 자유롭게 써나가는 예술의 세계.

★★★(3.0)




<밀수>

감독 : 류승완


여름 블록버스터가 해야 할 것을 정확히 알고 실행하여, 관객의 기대를 충족한다.

수중 액션이 다소 밋밋하고 바다라는 공간이 평면적으로 느껴진다.

범죄극, 케이퍼 무비를 차용하면서, 정작 이야기는 직선적으로 풀어서 통쾌함이 덜하다.

★★★(3.0)



<더 썬>

감독 : 플로리앙 젤레


소중한 사람을 위해 하해와 같은 사랑을 가지고 있다 한들,

그 사람이 우주와 같은 공허를 가지고 있다면 어떡할 것인가.

★★★☆(3.5)




<데이 클론드 타이론>

감독 : 줄 테일러


신나게 입을 털고 기발한 재미도 있지만, 정작 제목에 타이론이 들어갈 이유가 없다.

★★★(3.0)



<시크릿 인베이젼>

감독 : 토마스 베주커, 알리 셀림


자신의 과거를 반성하고 고치기 위한 사람의 감정이 가득한 첩보극.

그 모든 희생에도 당신은 이 생에서 얻고자 하는 것을 얻어도 되는가.

★★★(3.0)




<비공식작전>

감독 : 김성훈


쥐락펴락 긴장감 속에서 알뜰살뜰 장르적 재미를 챙긴다.

템포 조절이 능수능란하고 카 체이싱 장면은 할리우드에 밀리지 않을 정도로 서스펜스가 좋다.

★★★(3.0)




<더 문>

감독 : 김용화


사람 구하는 영화가 정작 사람 구하는 데 관심이 없다.

도대체 언제까지 감정에 '호소'하는 걸 넘어서 '읍소'할 것인가.

★★(2.0)




<다섯 번째 흉추>

감독 : 박세영


귓가를 소름 돋게 하는 명징한 사운드 디자인, 생각보다 알 수 없는 희미한 이야기.

★★☆(2.5)



<콘크리트 유토피아>

감독 : 엄태화


'무엇을' 선택하느냐 가 아니라 '어떻게' 선택하느냐의 문제

삶의 '조건'을 묻는 자의 질문을, 삶의 '이유'로 답한다.

결국 선한 사람은 없다. 아직 사악해질 기회를 부여받지 못했을 뿐.

★★★☆(3.5)



<오펜하이머>

감독 : 크리스토퍼 놀란


원자폭탄의 원리(파멸적인 연쇄반응)을 고스란히 반영한 야심과 뚝심의 플롯.

놀란 감독 말대로 "구조가 곧 이야기이다."

★★★★☆(4.5)




<보호자>

감독 : 정우성


스토리보다 중요한 스타일과 캐릭터.

하지만 결국 스타일을 설득시키지 못하는 각본.

어쩌면 정우성의 사심이 가득 담긴 실험작.

★★☆




<지옥만세>

감독 : 임오정


살지도 못하고, 죽지도 못하는 이 지옥 같은 현실 속에서 가장 필요한 것은, 나를 이해해 주는 단 한 사람.

★★★(3.0)




<달짝지근해: 7510>

감독 : 이한


카풀보다 밥풀이 더 사랑스러운 세계가 영화의 인물을 축복하듯이, 마음 속 풍금 소리가 진하게 울려 퍼진다.

★★★(3.0)



<강변의 무코리타>

감독 : 오이가미 나오코


보는 영화가 아니라 먹는 영화.

영화를 다 보고 나면 눈에는 여름 햇살의 뙤약볕이, 코에는 구수한 밥 냄새가, 입에는 아삭한 여름 채소의 식감이, 귀에는 풀벌레 소리가 한아름 담긴다.

★★★☆(3.5)



<볼코노고프 대위 탈출하다>

감독 : 나타샤 메르쿨로바, 알렉세이 추포프


맹렬히 추격하는 카메라의 힘.

피할 수 없는 죽음 앞에서 용서와 구원에 관한 장력이 팽팽하다.

★★★☆(3.5)




<타겟>

감독 : 박희곤


힘겹게 구축한 서스펜스를 폭력적 연출과 난데없는 스케일 액션으로 얼렁뚱땅 해결한다.

★★☆



<한 남자>

감독 : 이시카와 케이


우리는 스스로 자신의 뒷모습을 볼 수 없기에,

타인의 뒷모습으로 자신의 뒷모습을 하나씩 그려나갈 수밖에 없다.

텍스트가 두꺼운 영화란 이런 영화.

★★★★(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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