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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순범 Oct 01. 2023

<거미집>,<천박사>,<1947 보스턴>,추석영화 3편

한국 추석 영화 리뷰

추석 연휴가 우리를 찾았다. 과거에 비해 유달리 길게 느껴지는 이번 추석 연휴에 한국 영화 3편이 개봉하였다. 김지운 감독의 <거미집>, 김성식 감독의 <천박사 퇴마 연구소: 설경의 비밀>, 강제규 감독의 <1947 보스턴>이다. 각자 다른 매력을 가지고 이번 추석 극장가에 발을 들여놓았다. 과연 어떤 결과를 거둘지 기대 되는 가운데, 각 영화를 보고 느낀 점을 솔직히 적어보고자 한다.



김지운 감독의 <거미집>은 영화에 대한 영화로 이번 추석에 개봉하는 한국 영화 중에서 가장 흥미로운 영화였다. 중후반에 이르면 시간 가는 줄 '알고' 볼 정도로 늘어지는 부분이 있긴 하지만, 영화의 전체는 활력과 생기가 넘치고 리듬감도 좋다. 걸작 영화를 만들려고 재촬영을 하기 위한 감독의 고집과 스태프, 배우들이 이해충돌이 일어나면서 영화의 이야기가 흐른다. 그리고 캐릭터 간의 유머와 그들이 촬영하는 또 다른 영화 '거미집'으로 술술 풀어나간다. 사실 유머가 취향을 많이 타지만, 김지운 감독 특유의 유머 감각을 좋아한다면 한바탕 웃고 나오기 좋다.


 


영화의 역사가 깊어지면서 영화에 대한 영화가 최근 들어 종종 나오는 것 같다. (데미언 셔젤 감독의 <바빌론>과 스티븐 스필버그의 <파벨만스>) <거미집>도 영화에 대한 이야기를 유머러스하게 풀어나가고 있다. 1970년대 유신정권의 영화 제작 현장을 묘사하며, 당시 영화 제작이 얼마나 힘들었는지 흥미롭게 보여준다. '문공부'('문화공보부'의 줄임말로 현재 문화체육관광부이다. 유신정권에서 문공부는 언론 통제와 프로파간다 기관의 역할을 하였다.)와 같은 당시 시대상을 좀 알고 가면 더 재미있다. 엄혹한 시대와 촬영 현장에서 감독의 고집과 배우, 제작자의 마찰을 캐릭터의 앙상블과 유머 가득한 대사로 리듬감 있게 전달한다. 그리고 그들이 제작하는 극 중의 영화 '거미집'이 캐릭터의 상황과 묘하게 겹치면서 예술의 우연성도 드러난다.


 


겉에 드러난 김지운 감독의 <거미집>의 이야기를 따라가도 즐겁지만, 그 안에 들어간 '김 감독'의 '거미집'도 함께 겹치면서 보면 또 다른 지점이 있다. 이 영화는 생각보다 복층적으로 레이어를 쌓아서 나아간다. 70년대 영화 역사에 대한 헌정이기도 하면서, 영화 제작에 최선을 다한 스태프를 위한 영화이기도 하고, 예술에 대한 딜레마를 다루기도 하면서, 창작자로서 괴로움도 다룬다. 특히 자기확신과 자기부정에서 사이에서 헤매는 창작자의 딜레마를 심도 있게 다루었다. 자신의 머릿속에 있는 상상과 상념은 굉장히 대단한 것처럼 느껴지기 때문에 자기확신으로 작동한다. 그러나 그것을 구체화할수록 별 볼 일 없다는 것을 깨닫고 자기부정과 자기혐오에 빠지기 마련이다. 비단 이런 과정은 감독뿐 아니라 배우도 해당하고, 더 나아가 모든 창작자에게 해당한다. 그래서 이 영화의 마지막 장면은 쉽게 잊기 힘든 잔상을 만든다. 


 


물론 아무 생각 없이 그냥 봐도 즐겁다. 일단 대사 센스가 좋고, 배우들의 앙상블이 뛰어나다. 배우들이 현실적인 연기와 70년대 특유의 과장된 연기를 전부 소화하는데, 연기 보는 맛이 좋다. 전부 개성 있는 톡톡 튀는 연기를 하는 것 같은데, 영화는 이를 조화롭게 조율해서 누구 하나 처지거나 도드라지지 않는다. 물론 송강호 배우의 연기가 제일 눈에 들어오긴 하지만 다른 배우들도 각자 역할, 그 이상을 해내었다.



김성식 감독의 <천박사 퇴마 연구소: 설경의 비밀>(이하 <천박사>)는 오래간만에 찾아온 오컬트 장르의 한국 영화이다. 장재현 감독의 <사바하> 이후로 오랜만에 찾아온 오컬트 장르 영화이지만 완성도는 다소 미흡하다. 아무래도 추석 시즌에 맞춰서 최대한 많은 관객을 끌어들이고자 했는지, 온갖 장르를 뒤섞어 이도 저도 아닌 모양새를 갖추었다. 오컬트 소재를 다루고 있지만 물에 물 탄 듯 맹탕이다.




근본적으로 오컬트 장르를 표방하고 있지만 오컬트 영화의 작법을 거의 사용하지 않았다. 무서운 연출의 사용은 거의 배제하였고, 여기에 코미디 영화나 가족 영화를 기웠다. 그래서 영화가 특별할 것 하나 없이 무개성이다. 이야기의 깊이는 얄팍하고, 캐릭터는 기능적으로만 사용한다. 물론 배우 강동원, 허준호, 이솜, 이동휘와 같은 스타들이 눈에 들어오지만, 영화 자체가 평범하여 배우들도 평면적이다. 지나치게 스타 캐스팅의 파워를 믿은 탓일까. 잠깐 나오는 배우들도 전부 휘황찬란한 스타들로 도배하였지만 제대로 다루지 못하여 기억에 남을만한 인상을 주지 못한다. (앞서 말한 <거미집>도 카메오가 나오지만, 굉장한 인상을 남긴다.)




그래서 영화를 다 보고 나면 별로 할 말이 없다. 좋은 영화는 많은 생각을 남기기 마련이지만, <천박사>는 그냥 아무 생각 없이 끝나고 만다. 물론 오락 영화가 진중한 이야기를 다룰 필요는 없지만, <천박사>는 이야기가 지나치게 가볍다. 공포, 오컬트, 코미디, 액션 장르를 조합하지만, 무엇 하나 제대로 다루지 못해 조악하다. 공포와 오컬트 영화라고 하기엔 연출의 힘이 없다. 코미디 영화라고 하기엔 게으르게 배우들의 힘만 믿고 있다. 액션 영화라고 하기엔 액션의 연출이 영화와 그다지 어울리지 않는다. 후반부에 CG로 범벅되어 있는 액션 장면들도 CG의 퀄리티 문제가 아니다. CG의 사용법이 영화의 톤 앤 매너와 어울리지 않는다. 장르에 대한 판단 착오가 이런 경우가 아닐까.



강제규 감독의 <1947 보스턴>은 굉장히 익숙한 맛이다. 우리가 2000년대 느꼈던 한국 영화의 감성적 작법이 고스란히 들어있다. 좋게 말하면 익숙하고 정석적인 연출이고, 나쁘게 말하면 새로울 것 하나 없다. 분명 '서윤복' 선수의 실화가 주는 감동은 있지만, 영화 자체는 굉장히 지지부진하다. 인물은 달리고 있지만 정작 영화가 달리지 않는다. 마라톤을 다루는 영화가 마라톤처럼 꾸준히 힘차게 달리지 못하고, 설렁설렁 걷거나 터덜터덜 맥없이 달린다.




영화의 초반부는 손기정 선수와 서윤복 선수의 일화를 다루느라 앞으로 나아가지 않는다. 캐릭터의 서사 관계도 익숙한 구도로 설정되어 있어 흥미롭게 다가오지 않는다. 물론 익숙한 캐릭터라도 다루는 방식이 독창적이라면 새롭게 느껴지지만, <1947 보스턴>은 감동을 강요하는 한국 영화의 악습을 그대로 반복한다. 그래서 이 영화는 30분 정도 보고 있으면 나머지 1시간은 알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다. 영화가 국가주의적 감격(일명 '국뽕')의 힘만 믿고 초지일관 무노력이다. 이야기는 개성이 없고, 캐릭터는 입체적이지 못하며, 연출은 감동을 위한 압박 도구이다. 심지어 간간이 나오는 유머조차 특색이 없다. 새롭고 독창적인 것이 무조건 좋은 것은 아니지만, 익숙한 것을 그대로 반복하는 것은 새로운 재미를 주기 어렵다.




실화를 다루기 때문에 각색하기 어렵다고 변명하기엔 이미 앞에 개봉했던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오펜하이머>가 있다. <오펜하이머>도 똑같이 실화와 실존 인물을 다루지만, 플롯의 배치를 통해 굉장한 영화적 순간을 선사한다. 그러니까 실화를 다루기 때문에 영화만이 가질 수 있는 개성을 포기한다는 것은 변명이 되지 않는다. 그냥 영화가 개성을 가지기 포기했거나, 고민하지 않았다는 태업의 증거이다. 추석 연휴에 극장을 찾는 가족 단위의 관객을 만족시키기 위해서였을까. <1947 보스턴>은 지나치게 익숙해서 흥미가 떨어지고, 지나치게 구시대적이라 지지부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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