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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순범 Oct 09. 2023

<어파이어>, 불길

그녀의 자전거가 마음 속에 도달할 때

본 영화리뷰는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크리스티안 페촐트 감독의 영화 <어파이어>는 '산불'을 배경으로 사람의 마음을 스크린에 그린다. 뜨겁고 건조한 여름 발트해 해변 근처 숲속 별장에 네 명의 젊은 남녀가 모이고, 묘한 감정이 오간다. 그리고 이곳에서 예술과 사랑의 무능이 미묘하고 묵직하게 다가온다. 그토록 녹음이 짙던 숲속에 산불이 드리운다. 그리고 기어코 관객의 마음까지 불길이 번진다. 영화가 끝나고 영화 <일 포스티노>의 대사 하나가 스쳐 지나간다.

"시(詩)란 설명하면 진부해지고 말아. 시를 이해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그 감정을 직접 경험해 보는 것뿐이야."




영화 <어파이어>는 <피닉스>, <트랜짓>, <운디네>에 이은 크리스티안 페촐트 감독의 신작이다. 크리스티안 페촐트 감독은 2010년부터 꾸준히 좋은 영화를 선보이며 독일 영화감독 중에서 주목받는 감독 중 한 명이다. 그는 역사의 소용돌이 속에서 사랑 이야기를 겹겹이 쌓아 진한 로맨스 영화를 만들었다. 하지만 이번 영화 <어파이어>는 일상적인 여름의 풍경 속에서 피어나는 다양한 감정들을 담는다. 또한 영화 <운디네>에서 신비롭게 흐르는 '물'과 다르게, <어파이어>는 '불'을 바탕으로 묵직한 감정을 선사한다.




뜨겁고 건조한 여름 발트해 해변, '레온'은 집필을 마무리하기 위해 친구 '펠릭스'와 함께 숲속 별장으로 향한다. 그곳에 '나디야'와 '데비트'도 모이게 되고, 네 명의 젊은 남겨들 사이에서 묘한 감정이 오간다. 산불 소식이 들려오고 소방 헬기가 오가는 가운데, 이들의 마음속에도 욕망, 사랑, 질투, 분노의 걷잡을 수 없는 불길이 번지기 시작한다.




레온은 작가로서 새로운 작품을 집필하기 위해 펠릭스와 함께 발트해의 근처 숲속 별장으로 향한다. 그러나 영화 첫 장면에서 그들의 자동차가 고장 나는 것으로 시작한다. 별장으로 가기 위해 숲속을 가로질러 가지만 곧장 길을 잃고 만다. 잠깐 펠릭스가 길을 찾으러 간 사이에 레온은 헬리콥터 소리를 듣고 불안감에 휩싸인다. 이내 펠릭스가 돌아와 여기서 15분 거리에 별장이 있다고 한다. 영화는 첫 장면에서 레온의 마음의 상태가 고스란히 드러낸다. 그는 자신의 길을 잃었다. 헬리콥터 소리는 그가 곧 위험에 빠질 것이라고 경고한다. 그는 온종일 두려워하지만 사실 그의 목적지는 바로 앞에 있다. 사실 레온은 타인의 도움 없이는 길조차 찾지 못하는 인물이다.




그러나 레온은 '작가'라는 자아에 강한 자부심을 가지고 있다. 그가 별장으로 온 이유는 자신의 소설을 쓰기 위해서다. 그는 자신이 굉장한 소설을 쓸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하기 때문에 펠릭스가 놀러 가자고 해도 한사코 거절한다. 별장에 있는 또 다른 인물 나디야가 데비트와 함께 성관계를 맺는 소리에 신경질적으로 반응한다. 그에게 소설 창작을 방해하는 것은 모두 짜증을 유발하는 요소이다.




그러나 그가 나디야의 모습을 처음 본 순간, 사랑은 그의 마음속에 잠재한다. 신비롭고 수수께끼와 같은 나디야가 비로소 모습을 드러낼 때 레온은 몰래 벽 사이로 그녀를 쳐다본다. 그리고 나디야가 자전거를 타고 나갈 때까지 응시한다.

상대방이 나를 쳐다보지 않아도, 내가 상대방을 쳐다보는 것은 사랑의 직접적인 신호이다. 사랑은 시선의 교차가 아니라 일방적 통행이다. 레온이 몰래 벽 사이로 나디야가 자전거를 타고 나가는 모습을 지켜봤을 때, 그녀의 자전거는 이윽고 그의 마음속으로 도달한다.




하지만 레온의 사랑을 막는 것은 다른 사람이 아니라, 자신의 예술이다. 그에게 자신이 방해받지 않고 소설에 집중하면 걸작을 탄생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것을 우월감으로 변모하여 상대방을 냉소하거나 경멸하기도 한다. 식사 자리에서 레온이 대놓고 데비트를 계급과 직업으로 무시하는 것이 대표적이다. 그러나 그는 내심 외롭다. 예술을 위해 고독을 자처하지만, 정작 혼자 있는 순간에는 테니스 공으로 벽을 두드리며 논다. 이처럼 이중적인 감정은 영화 내내 레온을 괴롭힌다. 그는 예술을 위해 사랑을 포기하지만, 그것이 아무것도 아닌 것이 될까 봐 두렵다.




그러나 레온의 마음속에 피어오르기 시작한 사랑의 불길은 쉽게 꺼지지 않는다. 마치 산불이 영화에서 직접 드러나지 않지만 늘 배경으로 존재하는 것과 비슷하다. 그의 마음은 영화 속에서 공간적으로 표현되어 있다. 그의 작가로서 자아는 '별장'이라는 공간으로, 마음속에 자리 잡은 사랑은 산불이라는 공간으로 표현한다. 특이한 점은 이 영화에서 산불은 영화 내에서 직접 눈으로 볼 수 없다는 것이다. 그리고 후반부에 도달하면 드디어 모습을 드러내어 레온을 덮치고 만다.




그러니까 사랑은 서서히 자각하는 것이 아니라, 손쓸 새도 없이 덮친다. 불길처럼 덮치는 것이 사랑의 속성이다. 문제는 레온은 이 사랑의 불길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지 전혀 방법을 모른다는 것이다. 레온은 일종의 사랑 무능력자다. 자신의 감정을 '작가'라는 직업으로 핑계 삼아 밀어낸다. 사실은 전혀 방법을 모르는 것인데 말이다.

그런데 이 상황에서 자신의 능력마저 부정 당한다는 것은 레온에게 큰 충격이다. 그가 쓴 소설 '클럽 샌드위치'는 편집장에게 거부 당한다. 단순히 아이스크림 가게 직원인 줄 알았던 나디야는 문학평론가였다. 깔보았던 펠릭스의 사진 예술 아이디어는 편집장에게 큰 호평을 받는다. 레온은 자신이 거대한 작가라고 생각하지만, 사실 그는 아무것도 성취 못한 무능력자다. 심지어 편집장이 무슨 질병을 앓고 있는지 짐작조차 못하는 인물이다.




영화에서 나디야가 언급하는 '아스라'의 시에서 노예는 말한다. "내 이름은 모하멧, 예멘에서 왔습니다. 제 부족은 사랑하면 죽는 아스라입니다." 결국 사랑한다는 것은 고통스러운 불길 속으로 들어간다는 것이고, 필시 죽음에 다가가고 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끝내 강렬한 이끌림 속으로 빠져들고 만다. 펠릭스와 데비트는 서로 너무 사랑했기에 불속으로 뛰어들었고, 그 불길 속에 타고 말았다. 죽음에 이르는 마지막까지 부둥켜안고 있어, 시신은 떼어낼 수가 없다. 그들은 사랑의 불길로 죽었지만, 사랑의 형태로 영원히 보존되었다.

레온은 그들의 모습을 보고 다시 글을 썼다. 앞서 언급한 영화 <일 포스티노>의 대사처럼 '가장 좋은 방법은 그 감정을 경험하는 것'이다. 펠릭스와 데비트가 문학적 영감이 되어 레온에게 새로운 활로를 열어준 셈이다. 그제야 레온은 감정과 창작은 별개가 아니라는 것을 깨닫는다. 자신의 감정을 솔직하게 인정할 때, 예술의 새로운 상상도 열린다.

펠릭스는  자신의 사진 예술 작품을 위해 바다를 바라보는 사람들의 초상을 찍었다. 사진 속의 인물은 뒷모습과 함께 바다를 바라보는 앞모습과 연결한다. 사진 속 인물은 카메라가 아닌, 카메라 너머의 바다를 바라본다. 다만 나디야의 사진만 앞모습이 없다. 레온은 나디야의 얼굴을 이제 더 이상 볼 수 없다. 그는 자신의 늦은 행동과 인정이 아쉬울 따름이다.



그러나 그가 야외 테라스로 나왔을 때, 휘파람 소리가 들린다. 그리고 희미한 기억이 다시 사랑의 불씨에 숨을 넣는다. 별장에서 자전거를 타고 있던 나디야는 이번에 휠체어를 타고 있다. 자전거는 혼자 타는 것이지만, 휠체어는 누군가 뒤에서 밀어줄 수 있다. 결국 레온의 사랑은 자전거로 도달하여 무능력자를 위한 휠체어로 승화한다. 숨어서 지켜보던 레온은 모습을 드러내고 그녀를 응시한다. 그렇게 그들의 시선이 교차하는 순간 사랑의 불길은 다시 선연하게 타오르기 시작한다. 그리고 영화는 기어코 관객의 마음까지 불길을 번지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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