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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의 기록들, 얼룩이 번져 당신에게 닿았습니다

예술은 마음에 떨어져 얼룩이 되고 번진다.

by 권순범
[월간 영화기록]은 월마다 간단한 소회와 함께, 영화관에 개봉 혹은 OTT에 공개된 영화들을 총정리하여 별점과 간단한 평을 남기는 공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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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위대한 히트>의 주인공 '해리엇'은 오랜 연인 '맥스'를 교통사고로 떠나보내고 상심에 빠져있다. 그런 그녀에게 특별한 능력이 있으니, 특정 음악을 들으면, 그 음악을 들은 첫 번째 순간으로 시간 여행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녀는 상실감을 시간 여행으로 극복하고자 한다. Jamie XX의 Loud Place를 들으면 맥스를 처음 만난 뮤직 페스티벌로 이동한다. Mozart의 Fantasia in D Minor를 들으면 함께 골동품 가게에서 이상한 의자를 산다. The The의 This Is the Day를 들으면 맥스가 죽기 직전 차 안이다.


안타깝게도 상실은 거대한 구멍을 가지고 있다. 연인이 그리워 과거로 갈수록 오히려 그리움은 깊어진다. 때문에 해리엇은 새 출발을 하지 못하고 과거에 얽매인다. 음악으로 시간 여행하는 능력은 축복이자 저주이다.


영화 <위대한 히트>는 추억의 물성을 '틈입'이라고 말한다. 그러니까 추억은 과정을 거치고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어떤 물질을 촉매 삼아 그냥 갑자기 나타나는 것이다. 해리엇의 경우 음악이 촉매이다. 맥스와 함께한 시간에 깃든 음악은 시간과 공간을 저장한다. 그렇게 음악은 '얼룩'이 된다. 해리엇의 마음에 번진 음악이라는 얼룩은 자국을 남긴다. 해리엇은 이제 자국을 볼 때마다 맥스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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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처럼 예술은 마음에 떨어져 얼룩이 되고 번진다. 쉽게 지워지지 않고 끊임없는 상기되는 것도 예술의 속성이다. 송경원 영화 평론가의 책 <얼룩이 번져 영화가 되었습니다>도 이를 설명한다.


"시간과 함께 내 안의 언어가 익어간다. 입을 닫자 갈 곳 잃은 마음이 넘치고 번져 끝내 지워지지 않을 얼룩이 되어버렸다. 스크린에 불이 꺼진 후 다시 시작되는 영화처럼, 순간을 영원으로 만들어주는 사진처럼, 미결된 사건은 스크린의 영원이 되어 지금도 끝나지 않은 이야기가 이어지는 중이다."


작년과 올해 운 좋게 송경원 영화 평론가의 수업을 들었다. 오래전부터 송경원 영화 평론가의 글을 탐닉한 팬으로서 무척 행복한 시간이었다. 그리고 송경원 평론가의 신간 <얼룩이 번져 영화가 되었습니다>에 사인을 받았다. 사인 위에 문구를 하나 적어주셨다.


"얼룩이 번져 순범님께 닿았습니다."


영화라는 얼룩이 번져 여기까지 닿았다. 이 지워지지 않는 얼룩이 내심 기쁘다.


얼룩이 영원하기 바라며, 여름의 기록들이다.

(이번 '여름의 기록들'은 7월과 8월의 기록들을 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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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생>

감독 : 안드레이 타르코프스키


'왜 영화인가?'라는 질문에 거대한 고목으로 대답하는 안드레이 타르코프스키.

무의미할지라도 죽은 나무에 물을 주기 시작하는 가능성의 자맥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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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펙트 데이즈>

감독 : 빔 벤더스


완벽한 하루는 굉장한 일이 생기는 날이 아니라, 목걸이를 만들 듯 소박하고 작은 즐거움이 조용히 이어지는 날.

마지막 야쿠쇼 코지의 표정을 보며 눈물이 차오르다가도 영화적 순간을 맞이해서 무척 행복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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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라이 미 투 더 문>

감독 : 그레그 벨란티


매끈한 연출 속에서 유려하게 흐르는 로맨틱 코미디.

시대적 배경을 통해 탐구하는 창작의 태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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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일리언: 로물루스>

감독 : 페드 알바레즈


에일리언 시리즈에 애정을 가득 담은 호러와 액션으로 알짜배기 유효타가 잔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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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시대>

감독 : 에드워드 양


도시의 그림자들을 비추며 건물 숲속에서 사라져가는 마음을 묘사하다.

마음은 계량하거나 계산하지 않고 손해를 보더라도 전달할 때 더욱 곡진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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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인즈 오브 카인드니스>

감독 : 요르고스 란티모스


수렁에 빠진 인간의 부조리를 허무적 냉소와 유머로 풀어내는 요르고스 란티모스만의 감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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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한 히트>

감독 : 네드 벤슨


추억의 물성을 음악과 연결하여 한없이 풍성하고 아련하게.

추억이 깃든 음악은 시간과 공간을 저장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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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납작 엎드릴게요>

감독 : 김은영


자존심 상하지만 마음만이라도 편해지기 위해 오늘도 더 납작 엎드리는 직장인의 체념이 코미디에도 불구하고 무겁게 다가온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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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브 라이즈 블리딩>

감독 : 로즈 글래스


넌 아무렇지 않게 내게 말했지. 날 위해 죽을 수도, 죽일 수도 있다고.

알아, 나도 언제나 같은 마음이야 Baby.

아마도 우린 오래 아주 오래 함께할 거야.

-- 검정치마의 <나랑 아니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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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주>

감독 : 이종필


탈주를 위해 돌격하는 에너지에 힘을 싣기 위한 서사적 장치가 때로 영화에 태클을 걸기도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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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드풀과 울버린>

감독 : 숀 레비


시리즈의 자장 안에서 능수능란한 유희 정신과 입이 떡 벌어지는 팬 서비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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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원더스>

감독 : 알리체 로르바케르


쓸쓸하게 희미해지는 풍경에 빛과 어둠으로 동화를 만드는 영화적 상상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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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의 나라>

감독 : 추창민


역사에 감동을 불어넣는 정직한 화법과 올곧은 그의 얼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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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오 카피타노>

감독 : 마테오 가로네


이야기를 현재의 사회 문제까지 확장하는 생생하고 절절한 현장감의 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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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위스터스>

감독 : 정이삭


할리우드의 블록버스터 자본력과 캐릭터 직조에 강점을 가진 감독 역량이 잘 결합하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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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편들의 집>

감독 : 시몬 레렝 빌몽


정돈된 쇼트로 담긴 아이들의 표정이 열 마디 말보다 더 큰 감정을 전달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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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이 싫어서>

감독 : 장건재


'헬조선'과 '탈조선' 담론을 시작으로 행복의 보편적 조건까지 궤적을 향한다.

어쩌면 그 펭귄은 단지 따뜻한 곳을 원했을지도 모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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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럿>

감독 : 김한결


단순히 웃고 넘어갈 수 없는 첨예한 문제를 그저 피상적으로 표현할 거면 왜 소재로 활용했을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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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로스>

감독 : 이명훈


연기꾼들이 모여 그저 그런 시시껄렁한 영화가 나올 줄이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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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출: 프로젝트 사일런스>

감독 : 김태곤


좀비 장르에서 착안한 상황과 징징대는 인물만 있을 뿐, 이야기가 없다.

안개가 나온다고 영화마저 안개에 갇힌다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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