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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딱좋은나 Apr 02. 2024

도움을 주고 받는 법

낳은 김에 키웁니다 42

언젠가 우리집에 남편의 죽마고우이자 척추장애인인 B가 왔을 때 이야기이다.


"오빠, 도움 필요하면 편하게 말해요!"


혼자 휠체어를 끌며 화장실에 다녀오겠다며 멀어지는 B에게 내가 주방에서 소리쳐 말했다.


"네네!! 걱정 마요!"


힘차게 대답을 하고 들어간 그가 내게 도움을 요청하지 않을 것이란 걸 안다.

그는 오랜 친구인 남편에게도 화장실에서의 도움은 요청하지 않는다.

그는 혼자서 충분히 뒤처리를 할 수 있는 고도로 숙련된 A급 척추 장애인이니까.


"엄마. 그렇게 말하지 마. 삼촌 부끄럽겠다!"


B에게 한 내 말을 들은 예삐가 쪼르르 달려와 이야기 했다.


"왜 부끄러워, 뭐가 부끄러워?"


의아한 얼굴로 내가 물었다.


"삼촌이 엄마한테 도와달라고 하면 부끄럽지, 안부끄럽나."


"도와달라고 하는게 부끄러운 거야?

도움이 필요해서 도와달라고 하는 건데?"


"아니.................."


싱크 안에서 바삐 놀리던 손을 멈추고 내 얼굴이 정색을 하고 묻자 예삐는 말 끝을 흐린다.


"잠깐만! "


도망가려는 예삐를 다시 내 앞으로 불렀다.


"엄마가 너한테 하나만 물어보자,

도움이 필요할 때 도와달라는 게 부끄러운 거야? 왜?"


"아니, 나는 그런 뜻이 아니고.................

삼촌이 화장실 간 건데.

엄마는 여자니까 도와달라하기 부끄러울까 봐....."


"삼촌이 남자라서 여자인 엄마가 도와주는 게 부끄러워?

삼촌이 장애인이라 정상인 엄마가 도와주는 게 부끄러워?

나는 그렇게 생각하는 니가 더 부끄러운데...

왜 그렇게 생각하지....

혼자 힘으로 안되는 일에 도움을 받는 건 부끄러운 일이 아니야.

삼촌이 혼자서 할 수 없는 건 옆에서 도와줘야지.

삼촌은 몸이 불편하니까, 당연한 거 아니야?."


"그래도 엄마가 먼저 말하는 건... 삼촌 입장에서는 부끄러울 수 있지."


한마디를 지지 않고 제 의견을 피력하는 예삐에게 결국 잔소리가 시작됐다.


"아빠가 잠깐 일 가셔서 없잖아.

그러니 엄마가 도와줘야지.

같은 남자라고 어린 막내가 간들 어떻게 삼촌을 도와 줘?

그리고 삼촌 엄마한테 도와달라 안해도 혼자서 잘 해.

혹시나 만약에!

도움 필요하면 편하게 얘기 하라고 엄마가 먼저 말 한거지.

너는 도와줄게 하는 사람한테 도와달라고 하는게 편해, 아니면 보고도 모른척 하는 사람한테 도와달라고 하는게 편해?"


다다다다

혹시라도 화장실에 들어간 B에게 들릴새라 소리 죽여 쏴붙이는 나를 보며

예삐는 아무 말을 못하고 듣고만 있었다.


"그리고 평소의 너처럼 니가 안다고 익숙하다고해서

남이 도와달라고도 안했는데 나서서 돕는 그 건 잘난척이야.

정말 도움이 필요해서 도와달라고 하는 건 부끄러운  아니야. 알았지?"


"네에..........."


"예삐도 도움 필요하다는 사람 있으면 지금처럼 잘 도와주고.

혹시나 너도 누구 도움 필요하면 정중하게 요청해. 부끄럽거나 니가 못나서 그런 거 아니야.

그렇다고 부탁하는 척 하며 너 하기 싫은 거 다른 사람한테 미루는 건 안된다. 알았지?"




"안그래! 나 안 그런다고!"



오지라퍼라 동네 일이 참견 다 하고 다니는 예삐가 뜨끔한지 대답하는 목소리가 높아졌다.








남편은 나같은 양은냄비는 절대로 종교도 갖지 말아야하며 정치판에 나가서도 안된다고 한다.


뭔가 하나에 일단 꽃히면 내 말과 의지에 반하는 것은 무조건 다 들이 받기 때문에.

이번에도 말 한마디 잘못꺼냈다가 예삐가 덤탱이를 썼다.


B가 돌아간 그날 밤, 나는 아이 셋을 모아놓고 잔소리 2탄을 시작했다.

너무한 걸 알지만 내 아이들에게 분명히 알려주고 싶었다.


도움을 요청하는 것은 절대로 부끄러운 것이 아니란 걸.

내 남편의 친구가 척추장애인이기도 하지만

내 아버지는 정상인에서 장애인이 되셨고

내 사촌동생은 태어날 때부터 지체장애였다.


단지 그들에게 도움이 필요한 순간이 우리보다 많을 뿐이다.

내 아이들이 좀 더 넉넉하고 너그러운 시선으로 세상을 봐주면 좋겠다.



그리고 나아가 내 아이들이 이렇게 커준다면 좋겠다.


타인의 도움 요청을 무시하는 사람이 되지 않기.

기꺼이 도움을 주는 사람이 되길.

자신 또한 꼭 필요한 경우엔 타인의 도움을 받기.

도움을 청할 땐 부끄러워하거나 자책하지 않기.

도움을 받은 후엔 충분히 감사하기.


단, 여기서 말하는 도움에서 돈은 연관되지 않았다는 전제는 확실히 한다.






이유도 모른 채 잔소리 폭격을 당한 아이들은 나의 말에 지친 듯 무조건적 수긍을 하고 빠른 속도로 잠자리에 들었다.


아이들도 2박 3일 동안 타인인 삼촌과 생활을 공유하며 나름 신경쓰고 배려했을 테다.

몸과 마음의 에너지가 많이 쓰였을 것이라 이렇게 뻗듯 곯아 떨어지겠지.


삼촌 곁에 제일 많이 붙어있던 예삐의 잠든 얼굴이 유난히 지치고 짠해 보였다.


아까 나와 생각이 다른 예삐의 말도 좀 더 들어주면 좋았을텐데. 엄마랍시고 너무 일방적으로 내 얘기만 다 맞다는 몰아붙였나?

하며 잠든 아이를 보며 잠시 후회도 했지만.


역시나 시간을 되돌린다해도 독불장군인 나는 아마 똑같이 했을 것 같다.

그래도 도움을 주고 받으며  사는 삶,

거기에 대한 내 진심만큼은 아이들이 알아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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