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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딱좋은나 Apr 03. 2024

이럴 땐 어떻게 해야 하나

낳은 김에 키웁니다 43

꽤 오래 전에 썼었던 B의 이야기를 이제 와 다시 한 번 더 꺼내 쓴 것은

장애인과 비 장애인간의 차이로 인하여 

비장애인 혹은 정상인이 장애인에 대한 관점이나 시각이

집에서 사는 나와 딸도 다를 있다는 것을 말하고 싶어서였다.


앞선 글에서 언급했던 대로

나의 아버지는 심장문제로 인하여 다리 신경이 손상되어 보행에 어려움이 있는 후천적 장애인이다.

나와 한 살 차이나는 사촌 동생은 날 때부터 중증 장애인이다.

우리집 둘째 역시 태어났을 때 꼬리뼈가 하나 없어, 6개월간 대학병원 두 곳을 다니며 검사했다.

갓 낳아놓은 딸이 장애인일지도 모른다는 건 나를 산욕기 내내 두려움에 떨게했었다.


조금 멀리 까지 범주를 확대해보면

초등학교 동창은 새끼 손가락을 운동하다 다쳤는데 구부러지지 않아 장애 진단을 받았다.

친구의 부모님은 곱추라고 흔히 부르는 척추장애인인 분도 계셨고,

신발 공장을 하던 아버지의 동료 중에선 프레스 기계에 다쳐 손 하나, 손가락 몇 개 등의 절단장애도 계셨다.

내 친구 아이는 난치성 희귀 질환을 앓는다더니 자폐도 있다는 걸 얼마 전 알게 됐다.


이렇게 꼽아보면 내 주위에만해도 여러 형태의 장애를 가진 사람들이 제법 있다.

지금도 우리는 충분히 장애와 비장애가 뒤섞인 환경에서 살아가고 있다.





그동안 사교육 종사자로서 일하면서 다양한 아이들을 만났다.

분노조절장애라는 표현이 장애의 범주에 들어갈런지는 모르겠지만,

정확한 병원 진단 없이 분노조절장애를 가졌구다 싶은 아이들도 있었다.

그 아이들은 학습하기 싫거나 모르는 문제로 인해 화가 나는 걸 참지 못하고 

자신의 머리를 뽑거나 피부를 긁거나, 다른 친구들에게 소리를 지르고 학습을 방해하는 행위로 피해를 주었다.

물론 예의없는 것에 칼 같이 구는 내게는 덤비려다 그에 걸맞는 대가(숙제나 빽빽이라 부르는 개념 필기)를 혹독하게 주기에 늘 시도만 하려다 눈짓 한번에 그치곤 했다.


사실 이 아이들의 분노조절장애가 걱정스러운 점은 

바로 그 분노는 자신보다 약한 존재에게만 드러낸다는 것이다.


사랑하는 내 학생 중에는, 경계선 지능장애이라는 장애와 정상의 범위 중간에 걸친 아이도 있었다.

또, ADHD(주의력결핍 과다행동장애)라는 

장애라는 말이 명확히 들어간 병을 가지고 약을 먹는 아이도 있었다.


경계선 지능은 솔직히 본인의 학습이 마음과 뜻대로 되지 않을 뿐 남에게 피해를 주진 않는다.

그러나 ADHD는 확실히 결이 다르긴 했다.

경계선과는 달리 학습을 잘 따라가는 걸 넘어 우수하다 싶을 정도로 똑똑한 아이도 있었지만

안타깝게도 약을 먹었을 때와 먹지 않았을 때의 현저한 차이가 있었다.


다만 약만 먹으면, 또 가끔은 약을 먹지 않아도 약빨이 남아 있을 때면

그 아이들이 지극히 평범한 보통의 아이 같을 때도 있음은 분명히 한다.


말 하지 않고 모르고 보면 조금 많이 별나구나 하고 넘길 정도로 증상이 약해 지극히 정상처럼 보이는 아이들도 있고, 수업을 더는 진행하기 어렵구나 싶은 중증도 있었다.

아이들마다 드러나는 증상이 조증이나 울증, 약을 먹었을 때의 부작용도 잠이나 식사 거부 등 행태가 다양했다.

요즘 ADHD진단을 너무 많이 하는 건 아닌가 싶을 정도로 ADHD를 앓는 아이는 비교적 많았다.





이사로 예삐가 새로운 학교, 새로운 반에 배정 받아 첫 등교를 한 날.


실습을 나가 학교에 가지 못한 나 대신 남편이 선생님께 아이를 인계하는데

예삐가 배정된 반의 문이 열리며 덩치가 친구가 "우어어" 하는 소리를 내며 튀어나왔단다.


한 해 조기 입학을 해 가뜩이나 작은 체구가 더 작게 느껴지는 예삐는

몬스터처럼 달려오는 그 친구를 피해 아빠의 등 뒤로 숨었다고 했다.


한 눈에 보기에도 정상이 아닌 걸 알 수있는 그 친구는 장애가 있는 특수반 친구라 했다.

(자폐인지 지능장애인 건지는 아직 자세히 모른다.

자세한 병명까지는 내가 알려고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내가 자세한 걸 알게되고 이야기를 하는 순간 편견이나 차별이 생길 것 같아 부러 캐묻지 않았다.)


나의 딸로 자라는 동안 우리 예삐는 이 독불장군 엄마로부터 

장애인을 비장애인과 똑같이 대하라는 가르침을 받고 자란 아이였다.

자신의 꿈 중에 유치원 선생님도 있을 정도로 작은 몸이지만 누군가를 돌보는 것을 좋아하고 잘하기도 한다.


그래서 첫 전학 날 그 친구로부터 맛 본 두려움과는 별개로

교실에서 같은 반 친구로 만난 그 아이를 다른 친구와 똑같이 대했다고 한다.

아무도 상대해주지 않고 말을 걸어주지 않는 친구가 혼자서 무언가를 하고 있으면

"오! OO이야, 그림 그려? 잘 하는데?! 그런데 여기도 꼼꼼히 색칠해야겠다!"  하거나

식사 시간에 마주치면 " OO야, 밥 많이 먹어!" 하는 식으로 말을 걸어주었다고 했다.


자신과 같은 반의 친구기 때문에 

그 아이가 가진 장애 여부와 상관없이 당연히 다른 친구들과 똑같이 대해야 한다고 생각했단다.


한동안 학교에 적응을 못해 힘들어한 아이들 때문에 학교 얘긴 그다지 꺼내지 않았었다.

나 역시 마음의 여유가 없이 실습의 시간을 버티느라 세심하게 신경을 못써준 게 미안했다.

일상으로 돌아온 1월 초, 저녁 식사를 하며 전학간 학교에 대해 대화를 나누며

나는 그제야 예삐반에 특수 학급 친구가 같은 반에 있다는 이야기를 처음 들었다.


그 때 남편은 반주를 하고 있었는데 조금 흥분해서 이야기를 했다. 

신체적 장애는 배려받고 아이들이 양보도 할 수 있고, 더불어 생활할 수 있지만

정신적 장애는 자라나는 일반 아이들에게 피해를 주기 때문에 특수 학교를 보내야 한다며.


나는 가끔 그렇게 선을 긋고 사람을 가르는 그의 태도에 화가 난다.

사회복지사를 공부하고 있는 아내를 두고 어떻게 그런 말을 하냐!

내 아버지도 장애인이다! 네 이모, 네 친구도 장애인이 없냐! 하며

나는 장애인들도 교육 받을 권리가 있다며 몹시도 흥분했다.


장애인이라고 학교에서 함께 지내지 못한다는 건 아니다!

지능이나 정신에 문제가 있는 친구들을 특수 학교가 모두 수용할 수 없다면서.

그들도 일반인에 섞여 사회에 적응할 기회가 주어져야 한다며 목소리를 높였다.


남편은 왜 무조건 네 말만 맞다 하느냐, 그건 현실이 아닌 이상일 뿐인데 하며

아이들에게 선한 영향력 뿐만 아니라 악한 영향력도 분명히 있을 수 있다 하며 고개를 저엇다.







전학 간 지 한 달 반 후, 두 달에 가까운 긴 겨울 방학이 시작되었다.


예삐는 아무 생각 없이 지냈던 긴 시간이었겠지만,

아마 그 친구에게는 자신을 유일하게 상대해주던 친구가 없어 서운했던 것 같다.


개학 후 예삐와 다른 반으로 배정을 받았지만,

옆반이라서 매일 같이 시도 때도 없이 우리 예삐를 찾아온단다.


선생님 소리만 겨우 할 줄 알던 아이가 예삐의 이름은 확실하게 부를 수 있다고 했다.


하지만 수업 중이든 쉬는 시간이든 가리지 않고

앞문에서 번쩍 뒷문에서 번쩍 하며 갑자기 나타나

우리 예삐를 향해 소리를 지르며 달려와 껴 안거나 정수리 냄새를 맡거나 하니 문제였다.


내가 참아라 봐줘라 할 거라 예상을 했던 예삐는 한 달이 넘도록 속 앓이를 하며

"선생님, 저 다른 반으로 보내주시면 안돼요?"

"선생님, 쟤 저희반 못오게 해주시면 안돼요?"

라고 선생님이나 주위 친구들에게 푸념만 했다고 한다.


그러던 어느날, 예삐와 같은 반인 친구로부터 학교에서 예삐의 고민을 전해들었다.


"앞문 이고 뒷문이고 갑자기 나타나서 예삐가 자꾸 놀래서 선생님이 뒷문 걸어 잠그셨어요."

하고 말을 전해준 친구의 이야기를 들을 때만해도 솔직히 나는 상황의 심각성을 인지하지 못했다.


하지만 그날 저녁, 내가 먼저 말을 꺼내 묻자 저녁식사를 하던 예삐가 엉엉 울었다.

정말 서러움이 복받친 울음이었다.


"쉬는 시간에도 나는 교실 밖엔 나를 지켜줄 선생님이 안계시니까 복도도 못 나가!!

갑자기 나타나서 막 안고! 머리 냄새 맡고! 뽀뽀할려고 하고.

피하려고 해도 걔가 얼마나 힘이 센데! 진짜 덩치가 엄마보다 더 크다고!

나 학교 가는 게 무서워!!!"


한창 사춘기가 시작되는 초등 고학년이고, 올되서 조기 입학까지 할 정도의 예삐이니

정상도 아닌 특수반 친구의 과한 애정표현이 다른 친구들 보기에도 부끄러웠을테다.

그리고 자신이 베푼 호의가 그 친구에게 호감으로 착각된 것도 황당한데

원치않는 그 아이의 애정 표현을 지속적으로 받고 있음에 꽤나 큰 스트레스를 받는 듯 했다.


"그 정도이면 엄마한테 말을 했어야지." 하는 내게 예삐가 원망섞인 목소리로 울부짖었다.


"엄마는 참으라고만 할 거잖아. 걔가 장애인이라 몰라서 그런다고 하면서! 그러니까 말 못했지."


아빠에게 화내고 소리를 지른 엄마를 보며 더더욱 예삐는 입을 다물 수 밖에 없었으리라.


다른 사람들에게는 다 말해도, 받아주지 않을 엄마인 걸 알아서 말을 못했단다.

나의 뜻대로 따라주길 바란 일방통행 양육과 가정교육이 이렇게나 내 아이의 입을 강하게도 막고 있었다.


그날 밤, 밥을 먹다 말고 울고 또 먹다 소리지르던 예삐는 구토를 하고 열이 올랐다.


다음 날, 퉁퉁 부은 얼굴로 

"엄마, 엄마가 학교 같이 가줘. 엄마가 걔 눈으로 직접 봐." 하는 예삐에게

"일단 선생님과 이야기 먼저 나눠보고, 그 때도 답 없으면 엄마가 갈게." 라 했다.


그리고 하이톡으로 담임 선생님과 이야기를 나누었다.


나는 무엇보다 그 친구가 가진 예삐에 대한 호감이 애증으로 바뀔까 염려스러웠다.

막으면 더 하고 싶은 게 사람 심리인데

상대 아이를 싫어하는 티를 내고 다가오지 못하게 막으면 

예삐에게 갖는 마음이 미움이 되어 해코지를 할까 걱정되었다.


또 솔직히 자식 키우는 입장에서

내 딸의 문제라 나서서 일을 해결은 하되, 그 친구의 마음까지는 다치게 하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학교로 찾아가는 것은 잠시 미루었다.




길고 긴 문장으로 선생님께 예삐의 사정, 마음, 가정에서 도닥이고 있다는 점,

학교에 바라는 점 등을 보냈다.


다행인 것은 상황을 옆 반 선생님, 아이의 담임 선생님 모두 인지 하고 계신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특수반 교사가 채용되는대로 아이를 전담해주실테니 조금만 기다려 달라고 했다.


정중하지만 단호하게 말씀 드렸던 나의 의견이 모두 들어간 답을 내어 주셨다.


그리고 얼마 뒤 예삐에게 상황을 물었다.

특수반 선생님이 오셔서 해당 아이를 전담하시게 되어

더는 갑자기 찾아오지 않고, 또 과한 애정 표현도 안한다고 했다.

지나가다 마주치면 인사하는데 선생님들이 밀착마크해서 안된다고 이야기 해주고

예삐에게도 얼른 지나가라고 하신다 했다.

예삐 역시 요령껏 재주껏 그 아이와 마주칠 기회를 줄이며 피해다닌다 했다.

단, 만났을 땐 이름을 불러주고 인사는 하라고 했다.








이번 일을 겪으며 많은 생각이 들었다.


아이가 고통받고 울며 스트레스를 받는 동안 말도 못꺼내게 한 엄마로서 죄책감.

장애인과 비장애인의 조화는 정말 현실에선 불가능 한 건지.

내 아이가 이렇게 고통받는 동안 왜 담임 선생님은 아무 말씀 없으셨던 건지.

모든게 원망스러웠다, 나 자신조차도.



그리고 그날, 나는 예삐에게 말했다.


"예삐야, 엄마가 예삘 너무 이쁘게 낳았나봐.

그래서 그 친구 눈에도 네가 예뻤나봐.

이 엄마가 미안하다. 예쁘게 낳아줘서."


거리두기를 하고 그 간격이 잘 유지되고있는 덕에 예삐의 스트레스는 많이 저감되었다.


하지만 그런 예삐를 지켜보며 나에겐 고민이 하나 더 얹어졌다.


앞으로 아이들이 마주할 현실이 이렇게나 나의 이상과 다르면 나는 어떻게 해야 하지?

이럴 땐 정말 어떻게 해야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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