낳은 김에 키웁니다44.
아이 셋을 키우면서 내가 아이들에게 강조하는 것이 몇 가지 있는데
그 중에 하나가 시작을 했다면 끝을 내라는 것이다.
실패해도 괜찮다.
잘하지 않아도, 잘 하지 못해도 괜찮다.
하지만 중간에 포기만은 하지 마라.
라고 나는 가르친다.
내가 학교를 다니던 시절에는 개근상이라는 것이 있었다.
대학이라는 고등 교육 기관에서도 과 수석을 하는 근간이 된 것이 출석이었다.
그런데 요즘 세상은 가정학습이나, 가정에서 가는 여행.
즉, 현장체험학습을 통하여 학교에 신청서와 보고서만 내면 20여일 한도 내에서 결석이 가능하다.
직장의 생리휴가 처럼 여학생들에게는 월 1회에 한하여 월경결석이 인정된다.
무엇보다 요즘 대다수의 아이들의 장래희망은 몰라요와 유튜버로 축약할 수 있다.
그만큼 공부를 꼭 잘하지 않아도 돈을 벌 수 있는 직업들이 지금은 너무나도 많다.
학업성취도가 성공과 직결되지 않는 세상에서는
공부가 아닌 다른 방법으로 충분히 부와 명예와 관심을 가질 수 있다.
그래서 요즘 아이들은 공부의 필요성을 그다지 절실히 느끼지 못한다.
생활 수준도 내가 자랄 때에 비해 높아지다보니
지금 엄마 아빠의 뼛골을 빨아 먹으며 누리는 것들을 쉽게 생각하는 경향도 있다.
공부를 하지 않아도 잘 살 수 있다를 반대로 말하자면
그만큼 공부를 많이하고 열심히 하는 아이들이 줄었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공부로 성공하기 쉬운 세상이기도 하다.
하지만 지금 내 주위 아이들은 알지 못한다.
기득권을 쥐게 되는 소위 가진자가 되기 위해서 해야하는 공부를
이미 거의 모든 것을 다 가진 아이들이 더 많이 하고 있다는 것을.
힘을 가진 부모는 아이의 머리를 더욱 더 채운다.
공부머리가 안된다면 고집부리지 않고 다른 진로를 함께 탐색해준다는 게 예전과 차이가 있지만
일단 기본적으로 돈 있는 엄빠들이 제 자식을 더욱 더 열렬히 가르친다.
상대적으로 돈을 적게 쓰는 엄빠들은 공부 못해도 괜찮다, 1등이 성공하는 건 아니다, 공부 잘한다고 성공하는 건 아니다 라는 말을 핑계 삼는다.
공부를 해야하는 시기인 학생일 때 공부조차 열심히 해보지 않은 아이가
과연 나중에 무언가를 진득하게 원하고 갈망하고 노력할 수 있을까?
해본 적이 없는 '노력'이 원하면 가능해질까?
방법을 모르고 버티는 법을 모르고 답을 찾아가는 길을 모르는데!
이렇게 지금의 아이들은 날이 갈수록 학력편차가 심해졌다.
이러한 학력 불균형이 심화되다 못해 아이들의 전체적인 학력수준은 과거와 비교해 한참 떨어져 보인다.
(연구결과 아니고 지극히 주관적인 내 생각이다. 특히 어휘력. 아이 뿐만 아니라 어른조차 무식이 풍년일 때가 많다.)
이러한 현상의 중심에는 학습자, 즉 아이들의 인내심 부족이 있지 않을까 싶다.
조금만 어려우면 이해하길 포기하고 금세 흥미를 잃는 아이들을 가르치며 어른인 나의 인내심만 자라는 것 같다.
다시 이해시키기 위해 쉽게 설명하고 풀어서 말하는 내 속만 바짝바짝 타들어간다.
우리 아이들이 언제쯤 알아줄까.
노력이란 건 인내심이 만들어낸 습관이라는 걸.
하기 싫은 일은 해야할 때 하지 않으면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없게 된다는 걸.
지금 이 아이들이 자라 어른이 되면 당장 제 부모만큼이나 열심히 살까?
무능력과 무기력 사이에서 무책임해질 아이들의 미래가 걱정스럽다.
잔소리는 일단 귀부터 막고보는 아이들에게 소 귀에 경을 읽고 염불을 외워봐도 변하는 것이 없다.
남의 자식이 아니라 내 자식부터 그러하다.
아이들을 이렇게 키우지 않으려지만 결국 이렇게 키우고 있는 부모,
그리고 그런 부모가 중심이 되어 만들어낸 사회가 문제일까?
아니면 숏폼이나 릴스 등 짧은 영상에 익숙해져 생각하기가 어려워진 아이들이 문제일까.
생각보다 많은 아이들이 하나조차 제대로 노력하지 않는 현실이 슬프고 안타깝고 막막하다.
일깨우고 싶고 깨우쳐주고 싶어도 그들만의 세상에 갇힌 이 아이들이 만들어갈 미래가 두렵다.
내 자식이라고 다를 바 없다는 게 오늘은 그냥 속이 좀 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