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친구하고 헤어진 후 많이 외로운 시기였다. 친구들에게 물어봤다.
외로울 때 어떻게 해?
한 친구는 외로움에 관련된 책을 읽어보라고 했다. 다른 친구는 너는 지금 또 연애할 때가 아니라고, 혼자 있는 시간을 소중하게 여겨야 할 줄 알아야 한다고 했다. 또 다른 친구에게 '나 이제 평생 연애 못하면 어떻게'라고 걱정했을 때 자기 친언니의 친구들을 언급하면서 40대여도 재미있게 싱글라이프를 즐길 수 있다고 했다.
다 너무 도움이 안 되고 생각할수록 짜증만 더 나게 만드는 조언들이었다.
나는 혼자 있는 시간이 지나치게 많았다. 회사를 무작정 퇴사하고 두 달 후에 이별을 겪고 나서 두 달 동안 폐인처럼 지냈다. 그 두 달 동안 브리저튼이라는 미드에 빠져서 옛날 영국시대의 로맨스로 뇌를 마비시키려고 노력했다.
브리저튼을 완주하고 여행을 가게 되었다. 여행지에서 만난 친구가 친한 친구가 틴더에서 남편을 만났다고 여러 번 언급을 했다. 미국에 지내면서 한 번도 고려해 본 조차 없는 틴더를 한국에 돌아와서 깔았다.
어느 한 남자의 프로필이 눈에 띄었다. 웻슈트를 반만 입고 서핑보드를 오른손에 앉고 있는 뒷모습 사진이었다. 탄 피부와 등근육을 보고 하트를 눌렀다.
앱 안에서 대화를 잠깐 나누다가 카톡을 넘어갔다. 친구처럼 편하게 일상얘기를 주고받았고 거의 2주 후에 카페에서 만났다. 막상 만나니까 왠지 조금 부끄럽기도 했고 카톡 할 때처럼 말이 술술 안 나왔다. 뒷모습은 멋있었으나 앞모습은 내가 기대했던 것보다 달랐다. 하지만 친구 같은 느낌은 동일했다. 우리는 만나서 연애하자는 느낌보다 편한 사이로 만났던 것이었다. 연애 경험, 일얘기, 친구 얘기, 여행얘기를 하며 두 시간을 보냈다. '다음에 또 봐요'하고 나는 지하철역으로 걸어갔다. 다음에 볼지는 모르겠긴 했지만.
그 후로 계속 카톡으로 매일 연락을 했다. '뭐 하고 계세요?'라고 물었을 때 나는 밖에 있다고 답할 때가 많았다. 외로움을 잊기 위해 여기저기 돌아다니고 모임도 나가고 약속도 많이 잡았다. 집보다 밖에 자주 나가는 것을 알게 되었을 때 그 남자의 질문이 '오늘은 어디 가세요?'로 바뀌었다. 이 질문을 받을 때마다 은근히 반가웠다. 나를 잘 알지 못하는 사람일지라도 신경 써주는 느낌이 조금은 덜 외롭게 만들었다.
'저희 만났을 때 저 어떤 느낌이었어요?'
갑자기 그 남자가 생각했던 나의 첫인상이 궁금했다.
'음..좀 딱딱한 인상이었어요. 만났을 때랑 카톡 할 때랑 조금 매칭이 안 되는 느낌이랄까'
틀린 말은 아니었다. 그 시기에 유난히 그런 말을 많이 들었다. 벽이 있어 보인다. 다가가기 어렵게 생겼다. 같이 일하면 무서울 것 같다. 나도 내가 항상 긴장하고 차가워 보인다는 것을 알았다. 하지만 그 긴장감을 어떻게 풀지 몰랐다. 한국에 와서 힘겨운 회사생활을 하고 적응하는 과정을 거치면서 지내다 보니까 그 태도가 몸에 뱄다.
'스스로 통제하는 것보다 즐기는 게 어때요? 놀러도 다니고 클럽도 가고. 진짜 놓고 놀아보세요. 재지 말고. 흘러가는 대로' 그 남자가 조언해 줬다. 생각해 보니 맞는 말이었다. 난 놀아도 매번 재면서 놀았던 거 같았다. 모임을 나가도 편하게 마음 놓고 대화하는 게 아니라 항상 조심스럽게 대화에 끼려고 노력하고 클럽을 가도 마음 놓고 놀지를 않았다. 친한 친구들보다 타인에게 나한테 알 맞는 조언받을 줄 몰랐고 고마웠다.
재지 않고 노는 게 어떻게 이뤄질지 아직 몰랐지만 앞으로 나의 모습이 조금은 기대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