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이면 스무 살이 되는 사촌 동생이 있다. 나랑은 정확히 18살 차이가 나는데, 가끔은 나보다 더 어른스러운 면모를 보인다. 그동안은 설날이나 추석 때 만나는 게 전부였다. 긴 시간이 흘러 올해부터 다시 경남으로 돌아온 나는 아주 가끔 동생과 늦은 밤 심야 데이트를 떠난다. 며칠 전에도 그런 날이었다.
경남 창원의 용지호수라는 곳을 한 시간이 넘도록 걸었다. 두 손을 꼭 잡고 데이트를 즐기는 연인들부터 밤 조깅을 즐기는 사람도 많았다. 우리는 같은 속도로 걸으면서 여러 이야기를 나눴다. 당장 코앞에 놓인 대학 입시에 대한 고민이나 진로, 부모님에 대한 걱정 외 다수였다. 내색하진 않았지만 잘 커줘서 기특한 마음이 들었다.
그의 고민들은 과거 내 열아홉 살 때보다 훨씬 깊었다. 그 말인즉슨 나보다 더 괜찮은 삶을 살아가고 있다는 증거라고 여겼다. 반면 외동으로 혼자 속앓이를 하면서 마음 편하게 털어놓을 수 없는 순간들이 얼마나 많았을까, 그런 생각도 들었다.
동생에게 해주고 싶은 이야기가 많았다. 만약 다시 스무 살로 돌아간다면 나는 어땠을까, 그런 상상을 하면서 찬찬히 말해줬다. 중간에 "스물다섯 살쯤엔 너만의 자서전 한 권 써봐. 재미있을 것 같다. 그거 쓰려고 더 흥미진진하게 살아가지 않을까"라고 슬쩍 던졌다. 지금은 연필을 놓았지만 글을 곧잘 쓰던 친구라 더 자극하고 싶은 마음도 있었다. 그는 고개를 끄덕였다.
중간에 기자는 어떤 일을 하는지 물었던 것 같다. 나는 "활자로 되어 있지 않은 현장을 활자로 만드는 일을 하는 사람"이라고 했다. 좀 거창해 보이지만 그 말이 맞으니까.
정확히 기억나진 않지만 이런 말을 해줬던 것 같다. 좋은 사람과 사랑에 빠져보면 좋겠다. 허름한 배낭을 메고 여행도 힘껏 다녀라. 책도 사람처럼 끌어당겨지는 게 있다. 누군가 추천이 아닌 본인이 찾아 빠져 읽으면 좋겠다. 아르바이트는 돈을 위해서가 아니라 경험에 포인트를 두면 더 배우는 바가 많다. 어렵다고 경제공부를 게을리하면 안 된다. 전공 서적이 어렵다면 신문 기사를 자주 읽어라. 흔한 말이지만, 듣는 동생 표정이 흔해 보이지 않아서 좋았다.
몇 달 전에는 그런 얘기를 해줬다. 다시는 돌아갈 수 없는 이십 대의 찬란한 시간을 잘 기록하라고. 동생은 그때 가슴에 남았던 문장을 내 기자 명함 뒤에 적어두고 부적(?)처럼 지갑에 넣고 다닌다고 했다. 조금 쑥스러웠지만 고마웠다.
동생과 우리 아들은 14살 차이가 난다. 언젠가 시간이 흘러서 내 아들이 동생과 걷는 그날이 다가왔을 때의 풍경을 그려봤다. 괜히 설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