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어보진 않았지만 당신이 궁금할 로컬 브랜드들의 이야기 vol.1
끝이 나면 시작되는 일이 있다. 커튼콜(curtain call)이 그렇다. 커튼콜은 연극의 막이 내려가야 비로소 막이 열리는 또 하나의 이벤트다. 이때가 되면, 역할을 마친 배우들은 무대에 올라 청중에게 인사를 건넨다. 미디어 아트를 전공한 이강호는 바로 이들이 발 디딘 무대, 누군가의 배경지, 상연(上演)이 벌어지는 장소를 다듬으며 살았다. 그런데 어딘가 아쉬웠다.
연극이 끝나면 펼쳐지는 커튼콜과 달리, 무대는 막이 내리는 즉시 해체됐다. 팝업(pop-up) 전시는 말 그대로 팝업창처럼 순식간에 사라졌다. 작업물에 대한 고민과 생산의 과정은 지난했지만, 그것이 무색할 정도로 결과물은 금세 휘발됐다. 보다 오랜 기간 사람들 곁에 머무는 무언갈 남기고 싶었다. 스크린과 무대를 다듬던 그가 공간 디자인으로 선회하게 된 배경이다.
무언가 끝나는 순간, 새로운 시작의 가능성이 열리기도 한다. 새 출발을 앞둔 이강호의 입가에 미세한 틈이 생겼다. 설렘의 미소였다. 물론 미디어 아트와 공간 설계는 전혀 다른 영역이었다. 그렇기에 악착같이 일했다. 현장의 감각을 키우기 위해 무보수로 감리를 보는가 하면, 거기서 본 도면이나 디자인 파일들을 하나씩 뜯어보며 나머지 공부도 서슴지 않았다. 하지만 업무 전반을 단박에 파악하긴 쉽지 않았다. 그 무렵 강민아를 만났다.
때론 희미한 이유보다 명징한 끌림이 동기가 되기도 한다. 강민아는 어릴 적부터 미술과 음악에 마음이 쏠렸다. 컴퓨터와 거리가 멀었지만 자신만의 공간을 꾸미는 시뮬레이션 게임은 곧잘 즐겼다. 실내 디자이너가 되겠다는 분명한 꿈이 있던 건 아니다. 다만, 어떤 방향성 하나가 스케치처럼 그려졌다. 그렇게 미대에 진학 후 실내 디자인을 전공했다. 5년 정도 실무 감각을 익히며 다양한 공간들을 만들었다.
그러던 어느 날, 어딘가 조금 엇나간 느낌이 들었다. 개체를 만드는 느낌보다는 기성품을 양산하는 쪽에 가까웠다. 회의감에 빠진 그의 눈에, 이강호의 작업물과 그의 모습은 매력적으로 보였다. 그런 사람이 협업의 손길을 내밀었다. 마다할 이유가 없었다. “강호랑 함께 하는 프로젝트 하나하나가 너무 재밌었어요. 이게 없었으면 이 일을 오랫동안 이어 오진 못 했을 거예요.” 정형화된 디자인을 양산하는 일에 지치던 때, 이강호와 함께하는 프로젝트는 디자인에 대한 갈증을 해갈하는 자양분이 됐다.
반대로 이강호는 강민아가 가진 실무 경험과 지식에 상당부문 도움을 받았다. “민아의 경우 실내 디자인 전반에 관한 정보, 업무 프로그램, 디자인 트렌드 등을 접할 기회가 많았는데요. 그것들을 제게 아낌없이 공유해 줬어요. 실무자로서 할 수 있는 조언도 서슴지 않았고요”. 한 사람은 실무에 대한 지식과 이해가 필요했고, 또 다른 사람은 보다 주체적인 디자인 언어를 쓸 수 있는 장(場)이 긴요했다. 둘은 서로에게 기대었다. 강민아와 이강호는 각자의 장점을 돋보이게 만드는 서로의 수식어가 되기로 결심했다.
때론 무언가가 허물어져야만, 새로운 걸 채울 수 있는 가능성의 여백이 펼쳐지기도 한다. 자기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던 두 사람은 각자의 1막을 마무리했다. 한 사람은 작가로서의 여정을, 또 다른 사람은 기나긴 직장인 생활에 마침표를 찍었다. 막이 내려가니 팀 커튼콜(team curtain call, tctc)의 시간이 도래했다. 그날 이후, 두 사람은 27개의 공간, 27명이 삶을 꾸려갈 기틀을 만들어왔다. 그중 하나가 코트사이드(Courtside)다.
시간이 지나면 풍경 또한 바뀌기 마련이다. 테니스도 그렇다. 한때 코트에는 서브 후, 네트로 달려가 상대의 리턴볼을 끊어내는 서브 앤 발리가 재방송처럼 반복됐다. 하지만 라켓이 점점 더 경량화되고, 잔디에도 기술력이 적용되며 우아한 몸짓이던 서브 앤 발리의 모습은 보기 어려워졌다. 대신, 강서브를 근간으로 하는 베이스라인(baseline) 플레이가 코트 위 공식처럼 여겨졌다.
세계 테니스의 흐름이 달라지듯, 서울의 성수동도 변화했다. 한때 수제화 장인과 원단 가게, 철공소가 즐비하던 장소는 언제부터인가 젠트리피케이션(gentrification)이란 파고에 밀린 예술가들의 터전이 됐다. 그들이 차곡차곡 쌓아 올린 문화에 대중들의 이목이 쏠렸고, 사람들의 발걸음과 시선이 몰려드는 곳에는 어김없이 자본이 흘러왔다. 이제 성수동은 감각적인 브랜드가 자신을 뽐내는 도시로 변모했다. 화려한 플레이와 끝없는 랠리로 가득한 경기장. 성수동은 바로 그 뜨거운 코트와 다를 바 없었다.
시속 200km로 날아오는 강서브만큼 순식간에 옷을 갈아입는 성수동의 입면. 그것들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이강호는 거기서 한 발 뒤로 물러나고 싶었다. 데이터와 해시태그, 사람들의 발자국이 반복적으로 찍힌 성수동 카페거리에서 몸을 돌린 그는 서울 성동구 아차산로13길로 향했다. 성수동이라는 거대한 코트의 가장자리(side), 그곳에 코트사이드(courtside)를 마련했다.
코트사이드는 말 그대로 ‘경기장의 경계선에 인접한 장소’를 뜻한다. 그런데 한 가지 뜻이 더 있다. ‘순수했던 어린 시절 함께 모여 놀던 장소’라는 의미다. 이강호는 긴장으로 범벅된 사회라는 경기장, 그곳에서 물러나 여유를 갖고 상황을 볼 수 있는 장소를 원했다. 코트사이드의 숨은 의미는 이를 설명하기에 더할 나위 없이 좋은 단어였다.
누구나 한 번쯤은 자기만의 공간을 꿈꾼다. 이강호에게도 그런 소망이 있었다. 숨 돌릴 수 있는 쉼표 같은 장소를 입버릇처럼 말했다. 한동안 품었던 염원은 우연한 계기로 구체화됐다. 언젠가 학교 선배와 이른 아침 서울숲의 한 카페를 찾은 날이었다. 출근 시간 전인데도 인산인해를 이룬 풍경, 여러 번 본 친구처럼 안부를 묻고 대화를 이어가는 바리스타의 모습은 생경했다. 그런데 음료는 더더욱 생소했다. 그동안 마시던 커피 맛과 어딘가 달라도 달랐다. “코트사이드에 대해 이야기할 때 늘 언급하는 순간인데요. 지금도 여전히 생생하게 기억나요.” 그날 후로 카페 이곳저곳을 쏘다녔다.
많은 커피를 마시며 단련한 기민한 미각과 공간 디자이너로서 가진 미감. 이는 카페 설계를 위해 tctc를 찾는 클라이언트에게도 도움이 됐다. “지금도 프로젝트 관련 미팅을 하면 업무 이야기는 1시간 정도, 커피에 대해서는 3~4시간 정도 얘기하는 거 같아요.” 이렇게 다진 기반은 코트사이드를 위한 단단한 골조가 됐다. “이런 시간들을 지나오면서 우리만의 공간을, 우리의 색을 선명히 전할 수 있는 브랜드를 만들어야겠다고 결심하게 됐어요. 지금 와서 생각하면 코트사이드를 만들기 위해 tctc를 설립한 게 아닌가 싶어요.” 한 사람의 순수했던 소망을 바깥세상에 고스란히 펼쳐진 곳. 그렇게 2022년 6월 1일, 코트사이드가 문을 열었다.
공간 디자인은 클라이언트 잡이다. 타인의 요구사항을 타인의 비용으로 구현하는 게 tctc가 그간 해온 일이다. 이번엔 달랐다. 코트사이드를 기획하고 만들 때는 본인들이 클라이언트면서 동시에 디자이너였다. 스스로가 원하는 바를 즉각적으로 공간에 구현할 수 있게 됐다. 자유롭지만 동시에 부담스럽기도 했다.
그럴수록 중심을 잃지 않으려 노력했다. tctc는 디자인 작업에 앞서 세 가지 기둥을 세웠다. “브랜드 이름과 콘셉트가 직관적으로 드러나는 재료를 사용하는 게 첫 번째, 코트사이드와 tctc의 공간을 완벽히 분리하는 게 두 번째, 타이트한 좌석 배치를 지양하면서도 나름의 다채로움을 보여주는 게 세 번째였죠.”
브랜드의 이름을 쉽게 전하고자 tctc가 떠올린 건 테니스 코트 바닥이다. 두 디자이너가 떠올린 바닥은 윔블던의 초록 코트보다는, 뜨거운 태양빛을 머금은 프랑스 오픈의 클레이코트(clay court) 가까웠다. “코트의 질감과 컬러를 표현하기 위해 바닥재에 관심을 기울이기 시작했죠. 그렇게 선택한 게 바로 이 붉은색 바닥이었어요. 사용감이 생기면 보다 더 코트 같은 질감을 보여줄 수 있겠다는 확신이 있었거든요.” 보통의 프로젝트에서는 쉽게 사용하지 못했던 특수 컬러를 과감히 썼다. 스스로가 클라이언트였기에 가능한 시도였다.
다음은 레이아웃. tctc는 음료와 디저트를 준비하는 바 테이블을 확보한 다음, tctc가 사용할 작업 공간을 숍인숍(shop-in-shop) 형태로 넣었다. 그리고 남은 여백에 좌석을 하나 둘 채워갔다. “좌석을 배치를 할 때는 최소 두 가지에서 네 가지 정도의 베리에이션(variation)을 주려고 하는 편인데요. 코트사이드에는 크게 네 가지 변주를 주었어요.”
우선 카페의 기본이라 할 수 있는 1인석과 2인석을 마련하고, 다음으로 최대 8인까지 수용이 가능한 단체석을 배치했다. 여기에 음료와 디저트 제조 과정을 보면서, 바리스타와 소통이 가능한 바 좌석도 디자인했다. 입구에 쪽에는 하이 체어와 하이 테이블 좌석을 구성해 단조로운 시선에 다채로움을 부여했다. “창문의 위치가 높다 보니까 특정 좌석은 바깥을 좀 더 쉽게 볼 수 있도록 좌석 높이를 조절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의자와 테이블의 높이를 올렸어요.”
테니스 코트에 그려진 라인을 연상케 하는 곧은 선, 직선은 코트사이드에서 빼놓을 수 없는 요소 중 하나다. 이는 tctc가 작업한 대부분의 공간에서도 쉽게 발견할 수 있는 지점이다. “평소 디자인 할 때 둘 모두 복잡한 걸 싫어하는 성격이에요. 서로가 미니멀한 것에서 미감을 느끼는 타입이거든요.” 그런데 코트사이드에는 또 한 가지가 곁들여져 있다. 곡선이다. “최근에는 곡선들도 사용해 보려고 시도하고 있어요. 정돈된 공간에 큰 곡면 하나가 끼어들면 그게 묘한 균형감을 만들어주면서 디자인 포인트가 되기도 하거든요.” 코트사이드라는 공간에 담긴 디자인 이야기다.
빠른 발과 파워풀한 백핸드로 한때 클레이 코트의 황태자로 불렸던 라파엘 나달(Rafael Nadal). 그의 테니스 이력에는 삼촌 토니 나달(Tony Nadal)의 역할이 숨어 있다. 라파엘이 명성을 얻은 후에도 연습 후 코트를 직접 정리하는 습관도, 협찬받은 브랜드의 신발은 절대로 꺾어 신지 않는 모습 뒤에는 삼촌의 디렉팅이 있었다.
테니스코트의 바깥, 코트사이드에도 선수와 코치가 존재한다. 비유하자면 공간을 운영하는 이강호는 코치에 가깝다. 다만, 상황은 전자와 조금 다르다. 커피 문화에 대한 해박한 지식과 경험을 있지만, 카페를 운영하는 건 그것만으로 할 수 있는 차원의 것이 아니었다. 머릿속 플레이를 구현해 줄 선수가 긴요했다. 코트사이드의 총괄 매니저 니나(Nina)는 이에 적합한 인물이었다.
“강호는 추상적인 이야기를 많이 하는 편이에요. 저는 구체적인 규칙이나 계획이 정해져야 업무를 편하게 할 수 있는 사람이고요.” 그는 본인을 ‘행위자(doer)’로, 이강호를 ‘몽상가(dreamer)’라고 표현한다. 음료 제조, 디저트 기획부터 생산, 코트사이드라는 그릇에 담는 실질적인 내용들을 사실상 담당한다. 경기장을 종횡무진하는, 그야말로 필드 플레이어에 가깝다.
매니저가 고용인을 이름으로 부르는 데에는 그럴만한 사연이 있다. 둘은 고등학교 동창이다. 동창과 일을 하다니, 꽤나 막역한 사이라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생각보다 접점이 많지는 않다. 한 사람이 미적분 문제로 머리를 싸매고 있을 무렵, 다른 한 사람은 비문학 지문을 속독하려 골몰했다. 당면한 문제도, 이를 처리하는 사고의 프로세스도 달랐다. 이후 삶의 동선도 마찬가지다. 한 사람은 미디어 아트를 전공했다. 다른 한쪽은 다양한 페르소나를 기반으로 여러 형태의 삶의 궤적을 그려왔다.
수평선 같던 두 사람의 동선이 하나의 접점으로 모인 건 단순했다. 언젠가 본인만의 공간을 갖고 싶었던 이강호의 눈에, 8년이란 시간 동안 한 길을 꾸준히 걸어온 니나의 삶이 들어왔다. 공간도, 공간 디자인도, 브랜딩도 모든 게 준비돼 있었다. 테니스에 비유하자면 질 좋은 라켓과 백색 테니스화, 그리고 연습할 수 있는 경기장까지 마련된 상태였다. 단 하나. 선수가 없었다. 이강호에게 니나는 최적의 선수였다.
코트사이드는 디저트를 전문으로 한다. 왜 하필 디저트일까. 이곳은 흔히 성수동 하면 떠오르는 메인 거리와는 다소 떨어진 곳에 위치해 있다. 게다가 3층이다. 걷거나 오르내리는 걸 활동량 증가로 여기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모든 소비자가 초연한 태도를 가진 건 아니다. 3층까지 올라왔으면 뭔가 좀 특별해야 하지 않나,라고 생각하는 소비자도 존재한다. 코트사이드는 후자의 경우에 주목했다.
‘몽상가와 행위자’라는 니나의 표현처럼, 코트사이드의 코치와 선수는 성향이 달랐다. 다만, 한 가지는 일치했다. 누군가의 귀중한 시간과 비용을 허투루 날리게 만들고 싶지 않은 마음이었다. 번거로움을 감내하면 그만큼 얻는 게 있길 바랐다. 디저트의 기본이라 할 수 있는 맛을 중시하는 니나. 비주얼에도 심혈을 기울여야 한다는 이강호. 전혀 다른 두 사람의 의견이 하나 둘 켜켜이 쌓여갔다. 그렇게 나온 게 코트사이드의 시즌 디저트 메뉴다.
코트사이드는 제철 과일을 활용한 디저트를 전면에 내세웠다. 1월부터 3월에는 딸기를 활용한 ‘해피 베리 뉴이어(happy berry new year)’라는 시그니처 디저트를 만들었다. “딸기를 이용해 뭘 할까 고민하다가 문득 ‘돼지바’를 떠올렸어요. 그 아이스크림 맛은 사람들에게 꽤나 익숙하니까 쉽게 다가갈 수 있을 거라 생각했거든요.”
익숙한 맛은 친근하다는 장점이 있다. 반대로 진부할 가능성도 있다. 이를 상쇄하려고 시도한 게 비주얼이다. 디저트를 담는 그릇, 이곳 또한 디자인의 역량이 펼쳐질 수 있는 장소성을 지닌다는 걸 tctc의 두 디자이너와 매니저 모두 알고 있었다. “성수라는 지역성, 건물의 위치성을 고려했을 때 이목을 집중시킬 만한 요소도 필요하다고 생각했거든요.” 3월부터 5월까지 선보였던 금귤 푸딩의 경우, '정과'라는 한국식 디저트에 착안해 제작했다. 약과를 만드는 것처럼 꿀과 설탕을 계속 졸여 달짝지근하게 만들었다.
메뉴 개발에 대한 아이디어는 코트사이드 팀원들이 함께 논의한다. 이를 통해 나온 테스트 메뉴는 코트사이드를 방문하는 손님들에게 권한 뒤 피드백을 받는다. 맛이라는 주관의 영역을, 대중의 취향에 가깝게 만들기 위한 작업이다. 아직 정확한 일정은 정해지지 않았지만 또 다른 메뉴도 준비하고 있다. “시즌에 맞춰 다양한 메뉴를 선보이는 것도 좋지만, 뭐랄까. 시간이나 계절의 흐름을 타지 않는 메뉴도 필요하다고 생각하고 있어요. 그래서 작업하는 메뉴가 바로 푸딩 크림 케이크예요. 이름은 푸딩 케이크지만 푸딩이라기보다는 크리미한 커스터드를 베이스로 하는 형태로 고안하고 있어요.”코트사이드에게 특별한 6월에는 복숭아 라임에이드가 손님들을 맞이할 예정이다. 많은 사랑을 받는 메뉴 중 하나라고, 니나는 말한다.
코트사이드 팀원들은 공간을 찾아주는 손님들을 위해, 어김없이 디저트의 맛과 디자인 테스트에 열중하고 있었다. “이곳까지 와준 손님들에게 정성을 쏟고 있다는 모습을 직관적으로 전하고 싶어요.” 보기 좋은 떡이 먹기도 좋다. 코트사이드 시그니처 디저트를 서술하기 위해서는 한 문장 더 곁들여야 한다. 보기 좋은 디저트가 맛도 좋고, 찍기도 좋다.
글, 사진 김승훈
부로컬리(@boolocally)가 진행하는 <TMI: THE MOST IMPORTANT>는 각자만의 소신을 바탕으로 꿋꿋이 살아가는 로컬 브랜드들의 가치와 이야기를 공유하고자 기획된 캠페인입니다. 첫 번째로 선정된 지역은 바로 서울 성수동. 부로컬리는 남다른 콘셉트와 정체성으로 선명한 존재감을 가진 4개의 브랜드를 엄선했습니다. '물어보진 않았지만 당신이 궁금할 로컬 브랜드들의 이야기', ‘TMI’ 캠페인을 통해 이들의 이야기가 잘 전달되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