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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부로컬리 Dec 31. 2022

꼴 좀 보세요

[부로컬리] 크리에이터 인터뷰 vol.8 꼴 스튜디오

자리를 바꿔야 비로소 보이는 장면이 있다. 산 하나도 그렇다. 어느 각도에서, 어떤 고도에서 보느냐에 따라 같은 사물도 첨예하게 달라진다. 본다는 것은 보는 위치와 밀접한 관련을 맺는다. 공간 설계도 마찬가지다. 공간을 만들려면, 공간을 이용하는 사람의 입장(立場) 속으로 입장(入場) 해야 한다. 


꼴 스튜디오(KKOL STUDIO)는 시좌(視座)를 옮기는 걸 중시한다. 건물 내부(interior)만 들여다보는 게 아니라, 현장 답사하듯 사용자의 내면(interior)을 세심히 살핀다. 이용자의 몸속으로 들어가, 그들에게 필요한 요소가 무엇인지 궁구한다. 역지사지(易地思之)는 영토(地)를 옮겨야만 가능한 일이다.


사람들로 하여금 무엇을 보게 만들지 고민하고, 이를 어떻게 보여줄지 골몰하는 행위는 대부분의 디자이너들이 하는 일이다. 하지만 자신의 인식 세계에서 타인의 세계로 이주하는 스튜디오는 많지 않다. 꼴 스튜디오는 그런 일을 한다. 


시선의 걸림 하나 없는 매끄러운 선. 분절된 섬이 아닌 하나의 대륙 같은 공간감. 꼴 스튜디오가 작업한 공간에서 볼 수 있는 특징들이다. 이들의 속을 들여다보기 위해 효창공원에 자리한 꼴 스튜디오를 찾아가 이야기를 나눴다.




함수빈, 윤의선, 배혜지


녹음에 동의하시나요?

네 


핸드폰 여기 놓겠습니다. 너무 의식하지 마세요. 처음 뵙겠습니다. 자기소개 부탁드릴게요.

함수빈: 꼴 스튜디오의 함수빈이라고 합니다. (이하 함)

배혜지: 꼴 스튜디오의 배혜지고요. (이하 배)

윤의선: 꼴 스튜디오의 윤의선입니다. (이하 윤)


감사합니다. 본격적으로 이야기를 나눠보죠. 스튜디오의 사무실은 어찌 보면 스튜디오의 첫인상이라고도 할 수 있잖아요. 
함:
 그렇죠. 


뭐랄까. 약간 SF 영화 속에 들어온 기분이 들어요. 입주는 언제 하셨나요? 

함: 올해 8월이요.


얼마 안 됐네요.
함: 그렇죠.


마음에 맞는 공간 찾기 쉽지 않으셨을 거 같은데요. 여기가 꼴 스튜디오의 첫 단독 사무실인가요?
함: 네. 원래는 군자역 근처에 있는 공유 오피스에 있었어요. 아무래도 클라이언트와 미팅하는데 어려움이 있었죠. 주로 외부 카페나 클라이언트의 사무실에서 이야기를 나눌 수밖에 없었는데요. 그럴 때마다 뭔가 초라해지는 기분이 드는 거예요. 맨날 노트북 들고 다니며 여기저기 쏘다니는 게. (웃음) 


어떤 말씀인 지 알 것 같아요. 

함: 아이디어를 표현하는 데 있어서 한계도 컸어요. 이래서 우리만의 공간이 필요하구나, 그런 생각을 하게 된 후 여기저기 다녔어요. 성수도 가보고 한남도 가보고 했는데. 뭐랄까. 꼴 스튜디오의 감도와는 거리가 멀었어요. 그러다 신용산의 한 공간을 보러 갔는데. 그때 좀 좌절했어요.


왜요?

함: 거의 다 허물어져 가는 건물이더라고요.

배: 재개발 지역이었어요. 계약한다 해도 1년밖에 머물 수 없는 상황이었죠. 그 건물 보고 셋 모두 고개가 무거워졌어요. 우리가 이것밖에 안되나 싶은 생각이 들었거든요. 심지어 그냥 공유 오피스에서 조금 더 있어야 되나 우리가 원하는 공간이 나올 때까지 좀 더 기다려야 하나 싶은 생각까지 했어요. 울며 겨자 먹기로 온 김에 효창공원이나 한번 가보자, 근처니까, 그래 좋아, 하고 이 길에 들어섰는데.


그때 이곳을 발견하신 거군요.

배: 맞아요. 느낌이 왔죠. 차를 타고 진입을 하는 그 순간부터요. 고요한 풍경과 낮은 주택들이 늘어서있고, 옆에는 공원도 있고. 길 따라 쭉 도는데 그냥 너무 좋더라고요. 그렇게 이곳에 다다르게 됐죠.
 

사진: 김동규


다행이네요.
배: 세 사람 모두 정신없는 분위기를 별로 좋아하지 않아요. 그런 곳 가면 다들 힘들어하거든요. (웃음) 여긴 참 좋아요. 지역 주민 분들이랑 소소하게 인사도 나누고, 대화도 주고받거든요. 김밥 사러 가면 김밥집 사장님께서 여기(꼴)에서 온 거 아시고 인사도 해주세요.

함: 그리고 은근히 주변에 맛집이 많아요. 여기저기 먹으러 다니는 재미도 쏠쏠하고, 바로 앞에 공원이 있어 바람 쐐기도 좋고요. 





이 꼴, 저 꼴 


스튜디오의 첫인상이라 할 수 있는 사무실. 이 공간에 대해서도 소개해주실 수 있을까요?

함: 네. 처음 디자인 잡을 때 가장 먼저 한 건 ‘우리가 여기서 뭘 하지?’ 였어요. 미감도 중요하지만 공간 안에서 벌어지는 행위 자체가 본질이기도 하고요. 


일종의 시나리오를 그리시는 거네요. 이곳에서 주로 무엇을 하실 생각이셨죠?

함: 클라이언트와의 미팅, 디자인 작업, 샘플 및 서적 수납, 식사 그리고 지인들과의 소소한 파티였어요. (웃음)

사진: 김동규


뭐가 많네요.

함: 그러게요. (웃음) 정말 다양한 일들을 한곳에서 해야 되다 보니, 기성 가구를 배치하기에도 한계가 있었어요. 다양한 기능을 축약한 형태, 그러면서도 꼴 스튜디오의 색을 보여줄 수 있는 가구가 긴요했죠. 그게 지금 앞에 보이는 테이블의 탄생 배경입니다. 


테이블 밑에서 모니터가 올라오네요. 내한공연 무대에 오르는 아티스트처럼.

함: 미팅이나 식사할 때는 테이블을 좀 더 넓게 사용하고자 모니터를 매입할 수 있게 제작했어요. 또, 클라이언트와의 미팅시 같이 볼 수 있는 화면이 필요해서 대형 TV를 비치했죠. 이걸 짜 맞춰 넣기 위해 디귿자 모양의 수납장을 설치를 했고. 그 뒤에는 각종 샘플 및 서적들을 넣을 수 있게 수납공간을 마련했고요. 이곳에서 벌어지는 일련의 행위에 주목하는 일. 공간 구성은 그런 식으로 계속 이어져요.

윤: 조명의 경우도 마찬가지예요. 조명도 어떤 행위를 하느냐에 맞춰 변화할 수 있게 했어요. 상황에 따라서 유연하게 빛의 세기를 조절할 수 있도록 말이죠. 


그렇군요. 테이블 끝에 있는 조명이 유독 눈에 들어와요.
함:
 파트리시아 우르퀴올라(Patricia Urquiola)의 세레나(Serena) 조명인데요. 그냥 놓은 건 아니고요. 여기가 통창이다 보니 일을 하다 보면 모니터 화면이 밖으로 다 노출되거든요. 그걸 방지하려고 이 조명을 비치했어요. 시각적으로나 조도나 이런 것들을 걸러주고 잡아주기 위해서 말이죠. 



이곳이 꼴 스튜디오의 첫인상이자 여러분만을 위한 첫 단독 공간이잖아요. 작업하시면서 부담감 같은 건 없으셨나요? 아무래도 뭔가를 더 보여줘야 될 것만 같은 압박감 같은 게 드셨을 것 같기도 한데요. 

배: 어렵지는 않았어요. 함 실장이 말한 대로 행위에 초점을 맞추고 시나리오를 짰으니까요. 근데 각자가 원하는 요소라고 해야 할까요? 그런 게 좀 달랐어요.
 

어떻게요?

: 그때 뭐였지. 저는 책상 서랍이었고요. 함 실장은 카우치 소파를 고집했어요. (웃음)

함: 이유가 있어요. 뭔가 커피를 마시면서 쉴 수 있는 게 필요하다고 생각했거든요. 근데 그것까지 두기에는 공간이 협소해서 포기했습니다.


아쉬우셨겠어요.

함: 그러고 나니 작업이 빠르게 진행됐죠. 

: 요즘 그런 얘기 자주 해요. 소파가 있으면 좋겠다고. 업무 특성상 철야 작업도 하고, 현장 업무 보고 오면 피곤한 경우가 잦거든요. 몸 하나 뉘일 곳 있어야 한다고, 요즘 절실히 생각하고 있습니다. (웃음)
 

의선 님이 원하는 요소는 무엇이었나요?

윤: 천장에 있는 바리솔(조명)이요. 여기가 폭이 좁고 긴 형태의 공간이다 보니, 중심을 하나 크게 잡아줬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거든요. 근데 벽이나 천장에 국부 조명을 작게 매입하면 업무와 미팅 등을 아우를 수 있는 빛의 감도를 잡기 어렵다고 판단했어요. 그래서 바리솔을 달고, 조광기를 연결해서 디밍(dimming, 조명 기기의 밝기를 조절한다는 의미)을 가능하게 했죠. 
 

오, 원하는 걸 반영하셨네요. 

윤: 반영은 됐죠.
 

반영'은' 됐다는 말씀은.

윤: 반영이 됐죠. (웃음)
 

뭔가 여지가 있는 느낌인데요.
윤: 모든 게 그렇지만 이것보다 더 잘 될 수 있는 부분들이 있었다고 생각은 해요. 좀 더 디테일하게 풀어갈 수 있었던 여지가 없지는 않았거든요.

: 사실 바리솔 조명 옆에도 수납공간을 만들 생각이었어요. 스튜디오 특성상, 수납공간은 많으면 많을수록 좋거든요. 조금이라도 여지가 보이면 최대한 수납공간을 넣으려고 했는데. 여러 제약으로 구현하지 못했어요.

윤: 그런데 또 재밌는 건, 조명 옆에 수납공간을 만들지 않았기 때문에 도리어 공간이 선과 면으로 깔끔하게 떨어지게 된 것도 있는 것 같아요. 


확실히 덜어냈을 때 분명해지는 게 있네요.

KKOL: 그렇죠. 
 




꼴을 갖추다


공간의 꼴에 대한 이야기는 이 정도면 됐고. 이번엔 꼴 스튜디오 여러분의 삶에 대해 얘기해보면 좋겠어요. 
함:
 저는 원래 전시 기획 쪽에서 일을 하려고 했었어요. 학부가 전시 디자인이었거든요. 그렇게 한동안 일을 하다가 문득 옛 생각이 났어요. 제가 원래 고등학교 때부터 공간 디자인 관련 일을 꼭 하고 싶어했거든요. 그 꿈을 포기 못하겠더라고요.



그 후에는요?

함: 학부를 졸업하고 이탈리아 유학 준비를 했어요. 거기서 공간 디자인을 공부했죠. 옆에 있는 배 실장도 거기서 만났고요. (웃음) 그러다 2020년 2월 코로나가 창궐해 한국으로 귀국했죠. 돌아온 다음, 한 공간 설계 스튜디오에서 일했어요. 윤 실장과 그 회사에서 연이 닿게 됐고요.


그다음은?

함: 이후 브리콜랩(@brcl_official)에 입사해서 일했는데요. 이곳에서 일하며 다양한 것들을 습득할 수 있었어요. 그전까진 시공하는 방법도 전혀 몰랐거든요. 그러다 퇴사를 했고 지금의 꼴 스튜디오를 설립했죠. 스물세 살, 막연하게나마 생각했던 스튜디오의 꼴이 갖춰지기까지 10년 정도 걸렸네요. (웃음)


스물세 살 때부터요?

함: 네. 제가 본래 20살 때부터 공간 디자인 관련 일을 하고 싶어 했는데요. 아버지께서 반대하셨어요. 본인 사업을 이어가길 원하셨거든요. 결국 일을 배울 수밖에 없었죠. 그런데  자꾸 아른 거리는 거예요. 결국 스물셋이 되던 해에 건축 관련 공부를 하고 싶다고 재차 말씀드렸어요. 근데 시기가 좀 애매해서 일단 군대를 먼저 다녀오기로 했죠. 막상 전역하니 또 애매한 것 같아 일단 국내에서 공부를 하기로 했죠. 스물여섯에 전시 디자인 학부에 입학했어요. 


스물셋에 건축을 하겠다고 말했을 때. 그때는 아버님께서 반대 안 하셨나요?
함:
 반신반의하신 것 같아요. ‘그래 어디 한번 해봐' 약간 이런 생각이셨던 거 같아요. 진지하게 말한 건 대학원 진학을 앞둔 시기였어요. 그땐 조금 더 구체적으로 설득했어요. 제가 목표로 하는 대학원 출신의 디자이너는 누가 있고, 그들은 어떤 활동을 하는지, 학위를 마친 뒤 몇 년 안에 스튜디오를 설립하겠다는 식으로 말이죠.


결국 허락해주실 거였다면, 스무 살 때부터 지지해 주셨으면 좋았을 텐데.
함:
그래도 좋았겠지만, 그랬다면 배 실장이나 윤 실장을 만나지 못했겠죠. (웃음)


혜지 님은?

: 저는 영국에서 학사를 취득했어요. 공간 디자인을 전공했어요.


그렇군요. 그러면 학사를 마치고 한국에서 디자인 일을 하신 건가요?

: 네. 근데 좀 혼란스러웠어요. 제가 작가인지, 실용적인 디자인을 하는 사람인지에 대해서 말이죠. 



왜요? 

: 단편적으로 얘기하면 영국에서 한 프로젝트를 만들기 위해 작업하는 포트폴리오가 한 40~50장 정도는 되는데요. 비주얼이나 이미지 외에도, 프로젝트를 위해 도출한 접근 방식과 과정들을 담는 게 중요하거든요. 관련 서적 목록, 실험 프로세스 등. 아무리 만듦새 좋은 결과물이 나온다 한들 앞서 말한 내용이 없으면 결과물에도 결코 좋은 평가가 따라오지 않는 식이에요.  


한국은 좀 다른가요?

: 네. 제가 영국에서 한 작업 과정과 결과물을 보면 ‘그래서 뭐 했는데’ 이런 반응들이 많았어요. 과정보다는 결과 위주다 보니까. 결국 내가 무엇을 얼마나 했느냐라는 횟수가 중요하더라고요. 그러다 보니 보고서 같은 보여주기 위한 자료들을 만들어내는 걸 반복하는 구조였어요. 이런 방식은 뭔가 공허한데,라고 말하면 개중에는 그런 제 태도가 순수 미술하는 사람들이나 가지는 태도라는 식으로 되받아쳤어요. 나는 이렇게 배워왔는데, 여기서는 아예 발상 자체를 다르게 해야 하나라는 것에 대해 고민을 많이 했어요. 


아, 이분법적인 사고방식 좀 그렇네요. 예술과 예술 아닌 것의 구분.
: 저는 그저 어떤 문제에 접근할 때 좀 더 치열하게 고민하고, 이걸 어떻게 해결할 지에 대한 방법론에 시간을 할애하는 방식으로 배워왔을 뿐인 건데. 한국에서 디자인이란 상업적인 요소를 고려하고 동시에 결괏값을 빠르게 뽑아야 하니까. 그것들 속에서 계속 혼란스러워했던 거 같아요. 일단은 선명한 콘셉트를 기반으로 작업하는 공간 기획사에서 일을 했죠.


그랬는데요?
그렇게 한참 일을 하며 적응하고 있는데 또 한 번 괴리가 왔어요. 아무래도 기획이다 보니까 기본 설계까지만 할 수밖에 없는 구조였거든요. 실시나 시공 같은 걸 못 봤어요. 내 손으로 끝내는 게 없다는 게 허무했죠. 결국 퇴사를 했고요. 


그 후에 이직하셨나요? 

아뇨. 좀 더 공부를 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대학원을 가려는 마음은 계속 있었거든요. 영국으로 갈까 이탈리아로 갈까 고민했는데 아무래도 영국은 너무 익숙한 곳이니까. 교육의 방향성도 크게 다르지 않을 것 같고. 그래서 택한 게 이탈리아였어요. 거기서 함 실장을 만났고요. 그리고 얼마 후에 코로나가.


도시가 봉쇄됐었죠. 이탈리아.

맞아요. 이게 도시 봉쇄를 한다고 생각을 하니까 속이 복잡해지더라고요. 바이러스에 대한 걱정도 그렇고, 수업을 안 하는 것도 큰 문제였지만, 유학이라는 게 많은 걸 내포한 시간이기도 하잖아요.


네.
: 타지에서 거주하는 것 자체도 하나의 배움의 과정인데. 이런 걸 다 배제하고 집에 갇혀 기약 없이 머물러야 하는 상황이 오니 이게 맞나 싶은 생각이 커졌죠. 결국 수빈이랑 다른 한국인 친구랑 셋이 귀국했어요. 한국에서도 온라인으로 수업을 들었고요. 상황이 조금 나아졌을 때 저는 다시 밀란으로 돌아가 인턴 생활을 하고 학위를 마무리했죠. 그리고 한 1년 정도가 지나 한국에 왔어요. 


의선 님은요?

윤: 꿈, 목표라는 단어의 해상도가 높지 않았던 시절, 영화와 드라마를 좋아한다는 막연한 낙관에 기대 연극영화학과 연출전공에 지원했어요. 당시 저는 대한민국의 전형적인 교육 시스템에서 양성된 꽤 나쁘지 않은 학생이었는데요. 20살 이후로는 소위 말하는 ‘취업 잘되는 과’를 선택하고 싶지가 않았어요. '시스템이란 경로에서 조금 이탈해 보자’라는 생각이 자리하던 시절 같기도 해요. 굉장히 치기 어린 결정이었죠(웃음). 누구나 그렇겠지만 그 선택이 제 운명의 방향을 어느 정도 결정하게 되지 않았나 생각해요. 


어떤 의미죠?

윤: 1년 간 영화과 생활을 하다 보니 저도 모르게 연극과에서 배우를 꿈꾸는 친구들과 가까워졌고, 자연스레 연극과 수업을 듣게 됐거든요. 무대라는 공간, 그 공간을 채우는 배우에게서 느껴지는 에너지가 참 좋았어요. 자연스레 무대 예술이라는 분야를 접했고, 알아가기 시작했죠. 그러다 교수님 추천으로 공연 프로덕션에 참가하게 되었어요. 조명 디자이너라는 직책으로 말이죠. 조명과 제가 만난 순간이에요.


그때 처음 조명을 디자인하신 거군요?

윤: 네. 첫 조명 디자인은 엉망진창이었어요. (웃음) 당시만 해도 조명 디자인 교육 체계가 정립돼 있던 시절이 아니었거든요. 누구에게, 무엇을 물어봐야 하는지 알려주는 사람이 없다시피 했으니까요. 실패 아닌 실패를 겪고 나서 어떤 문장을 계속 되뇌었어요. 


그게 뭔가요.

윤: ‘잘하고 싶다’였어요. 졸업할 때까지 조명을 설계하며 저란 사람의 형태를 주조해 가는 시간을 보냈어요. 


졸업 후는 어떻게 지내셨나요?

윤: 스테이지웍스(STAGEWORKS)라는 무대조명팀의 크루로 참여해 일을 시작했어요. 1세대 공연 조명 유학파였던 김창기 선생님을 필두로 만들어진 집단으로, 공연계에서 말하는 소위 ‘좋은' 조명 디자인을 하시는 분들이 즐비한 곳이었죠. 제가 제 입으로 디자이너라고 이야기할 수 있을만한 자양분을 쌓게 해 주었던 최고의 팀이었어요. 단순 화려함으로 사람들을 매료시키는 빛의 역할을 넘어, 빛이 인간의 감정을 움직이고, 일련의 반응을 이끌어내는 힘이 있다는 사실을 일깨워주신 분들이거든요. 제 첫 조명 스승님이신 최보윤 선생님도 이곳에서 만나게 됐고요. 약 4년 간의 크루 생활 동안 나름 많은 극장 경험들을 쌓고 미국 유학길에 오르게 되었어요. 


어쩌다 유학길에?

윤: 결국에는 조금 다른 경험을 지닌 디자이너가 되고 싶은 욕구였던 것 같아요. 칼아츠(CALARTS, California Institute of the Arts)에서의 시간들은 단순히 공연에서 활용하기 위한 조명을 배운다기보다는 인간의 눈과 뇌가 어떤 빛에 어떻게 반응하는지, 조명기의 빛은 어떤 느낌을 유발하는지 등 좀 더 원론적인 질문들은 던지는 과정들이 많았어요. 세계 여러 나라에서 다양한 경험들을 가지고 오는 학생들이 많았었기 때문에 받는 영향도 많았고요. 


그런데 어쩌다 공간 디자인을 하시게 된 거죠?

윤:  수업 중에 건축 조명과 관련한 수업이 있었어요. 저에게는 조금 딱딱하게 받아들여졌던 분야였는데, 벽을 서서히 허물수록 알아가는 재미가 있더라고요. 특히 많은 사람들이 이용하고 오고 가는 공간에 적용될 수 있는 ‘가까운 디자인’이라는 점이 좋았고요. 제작자의 사고가 사용자에게 가닿아 실현되는 모습을 지켜볼 수 있는 게 공연 예술과는 첨예하게 대비되는 부분이었어요. 비싼 돈 주고 티켓을 예매하고 시간을 내어 극장에 가지 않아도 되고, 공들인 무대가 일주일 만에 해체되는 모습을 보지 않아도 되고요. 특별하지 않게 특별할 수 있는 분야라는 생각이 들어 이쪽으로 활동하고 싶었어요. 그러다 한 기회가 왔어요.


기회라면 어떤.

윤: 당시 멘토였던 앤 밀리텔로(Anne Militello)의 설득으로 IES 조명기구에서 주최하는 건축 조명 디자인 공모전(Russell Cole Memorial Lighting Design Competition)에 참가한 것이요. 대학원생 이상을 대상으로 캘리포니아 주에서 진행하는 공모전인 만큼 규모가 꽤 큰 공모전이었죠. 규모만큼 저명한 디자이너들이 심사위원으로 참여하기도 했고요. 여기서 수상을 하고 인생의 흐름이 한 번 더 변했어요. 당시 학교에서 진행 중이던 공연들은 코로나 때문에 줄줄이 취소되고, 무대는 빛을 쬐지 못하는 상황이었거든요. 자연스럽게 공연과는 멀어졌고, 건축 쪽으로 에너지가 옮겨 갔던 것 같아요. 팬데믹 상황이 심화되며 저 역시 한국으로 돌아왔고요. 이후 원격으로 수업을 하며 졸업을 했어요. 입학 당시만 해도 여전히 저는 공연 무대 조명을 계속해 나갈 생각이었어요. 공간 설계를 하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죠. (웃음)



그렇게 공연계를 떠나시게 된 거군요.

윤: 공연계를 떠났다고 표현을 하고 싶지는 않아요. 빛을 활용하는 분야는 다 하나로 연결되어 있다고 믿거든요. 우리 삶이 연극이고, 연극이 곧 삶이라는 생각처럼요.




꼴이 박히다

개체로 존재하던 각각의 꼴들이 하나로 뭉치게 된 배경이 궁금해요.  

배: 수빈이의 큰 그림 때문이었죠. (웃음)


큰 그림?

배: 네. 앞서 말씀드렸듯, 저는 여러모로 지친 상태였어요. 돌아볼 시간이 필요해 양양에 가서 한 달 살기 비슷한 걸 하고 있었는데요. 그런데 자꾸 연락이 오는 거예요. 


누구한테요?

배: 함 실장이요. 양양에서 쉬고 있다고 했더니 계속 안부를 묻더라고요. 양양에는 어디가 맛있다, 뭐 이런 얘기를 계속. 그러다 돌아오면 얼굴 좀 보자고 해서 알겠다 하고 만났죠. 그랬더니 이제 스튜디오 얘기를 하더라고요. 같이 하자고. 사부작사부작 거리며 여유 있게, 재밌는 거 해보자길래 했죠. 근데 바쁘더라고요. (웃음) 

함: 배 실장이랑 처음 같이 작업한 공간이 모어딥 도넛 탄방점(@moredeepdonut)이었는데요. 원래는 그 프로젝트 하나만 혜지랑 같이 하려고 했던 건데. 작업이 다 끝나갈 무렵, 제가 슬쩍 다른 프로젝트를 물어왔거든요. 

배: 정신 못 차리게 계속. (웃음) 그러다 보니까 지금까지 계속 같이 하고 있네요.
 

혜지 님도 본인 스튜디오를 운영하겠다는 생각을 하고 계셨나요?
배: 저는 스스로는 스튜디오를 차려야겠다는 생각을 해본 적은 없어요.

함: 이 얘기는 저한테도 진짜 단호하게 말했어요. 


그런데 왜 같이 하신 거죠? 
배:수빈이랑 이탈리아에서 정말 많은 시간을 보냈어요. 겹치는 수업도 많았고, 그러다 보니 서로 진행하는 작업 과정이라던지, 디자인에 대한 의식 같은 걸 공유할 기회도 잦았고요. 유학 생활의 한 페이지에 상당한 지분을 차지하는 친구였어요. 그런 친구가 같이 일하자고, 우리 그때 얘기했었던 것처럼 재밌게 하면 될 것 같아 했는데 저도 재밌을 것 같더라고요. 

함: 사실 저는 유학 시절부터 이미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나중에 같이 일하자고 말할 생각을. 혜지랑 여러모로 참 잘 맞았거든요. 


정말 큰 그림을 보고 계셨네요. 마치 영화 속 닥터 스트레인지처럼. 의선 님은 어떻게 합류하신 거죠?

함: 의선이랑은 제가 처음 몸담았던 스튜디오가 인연이 됐죠. 

윤: 당시 저는 일과 학교 생활을 병행하고 있었어요. 코로나 때문에 미국이 아닌 한국에서 말이죠. 그러다 석사과정 마무리를 위해 미국으로 돌아갔고요. 이후 다시 귀국해서 한 1년 정도 일을 했어요. 그러다 수빈이를 만났어요. 합류해도 되냐고, 제가 먼저 제안을 했죠. 

함: 혜지는 의선이랑 일면식도 없었어요. 그런데도 합류에 동의해 줬어요.


와, 어떻게요?

배: 얼굴은 본 적은 없지만, 수빈이에게 의선이 얘기를 엄청 많이 들었거든요. 의선이 얘기할 때마다 수빈이 눈이 초롱초롱 빛났어요. 정말 진심이라는 게 느껴질 정도로요. 오래 봐서 알거든요. 얘가 이렇게까지 말할 정도면 보지 않아도 믿을 수 있겠다,라는 신뢰가 있었어요.

윤: 엄청 고마웠어요. 제가 합류를 제안한 거였는데 흔쾌히 응해줘서 말이죠. 

함: 제가 고마웠죠. 당시 의선이 씬 안에서 정말 잘 나가는 친구였거든요. 우리가 품기엔 여러모로 부족한 게 많았는데. 그런 상황인 걸 감안하고도 먼저 제안해주니까 저는 미안하면서도 고맙고 그랬죠. 






단어로 지은 집


이름이 꼴이에요.
함:
 한글로 짓고 싶었어요. 대부분의 스튜디오 이름 보면 영어가 많은 편이라고 생각했거든요. 제 자신의 개성, 각자만의 고유한 정체성을 설명할 수 있는 말이 뭐가 있을까 하다가 '꼴'이라는 단어를 알게 됐어요. 


"꼴 좀 봐라" 할 때 그 꼴인가요?

함: 네. 그 단어가 맞긴 해요. 보통 꼴이라고 하면 외형적인 느낌을 떠올리시기 쉬운데요. 디자인하면서 저희끼리 쓰는 조금 다양한 의미로 쓰는 말이기도 해요. 가령 “이거는 디자인 꼴이 좀 아닌 것 같은데”라던지, “여기 디자인은 꼴에 맞춰서 가야 될 것 같은데”처럼 쓰여요.


어려운데요.

함: 캐릭터나 아이덴티티라는 의미 정도로 생각해주시면 이해가 편하실 거예요. 처음 지었던 이름은 ‘함꼴’이었어요. 


한꼴이요?

함: '함'꼴이요. 꼴이라는 단어에 제 성을 붙인 거였죠. 내가 가진 고유한 특성을 공간이란 형태로 풀어내겠다,라는 포부를 담아서. 그러다 배 실장과 윤 실장과 함께 공동 대표로 일하게 된 후로 '함'을 지웠어요. 

꼴이라는 이름 어떠셨어요? 혜지 님이나 의선 님은 작명에 참여하신 건 아니었잖아요. 
배: 모니터에 보이는 로고는 제가 만든 건데. (웃음) 나쁘지 않았어요. 근데 함 실장한테 처음 이름 들었을 때 되묻긴 했어요. 저뿐만이 아니에요. 함꼴이란 이름 들으면 꼭 한 번 더 물어보시더라고요. 


저도 아까 "한꼴?" 하고 되물었죠.

배: 꼴이라는 단어 자체는 적확하다고 생각했어요. 함 실장이 말한 것처럼 아이덴티티일 수도 있고 그게 우리의 목표(goal)를 칭할 수도 있다고 봤거든요. 다양한 뜻을 내포하고 있고, 해석의 여지도 다양하다는 판단에 동의했어요. 그리고 디자인이라는 말을 한국어로 번역하면 뭐가 있을까,라는 함 실장의 의견에 설득되기도 했었고요. 

 

그러네요. 디자인이라는 말을 대체할 수 있는 단어가 떠오르지 않네요. 
배: 누군가는 '공예'라고 말할 수도 있겠지만, 공예가 지닌 의미도 제한적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함: 꼴이라는 단어가 가장 유사하지 않을까, 적어도 팀원들끼리는 그런 합의가 있었어요. 단어가 주는 어감도 나쁘지 않았고요. 




꼴에 담긴 진정한 의미 


어쨌든 저마다의 꼴이 모여 형성된 꼴 스튜디오. 공간 설계하실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부분들은 무엇인가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요. 
KKOL: 끊김 없는 흐름이요. 시선이 돌부리에 걸려 넘어지지 않도록 연결성을 가져가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해요. 이는 선으로도, 형태로도, 질감으로도 구현할 수 있죠. 실제로 저희가 작업하는 공간을 잘 보시면 이런 부분들을 쉽게 확인하실 수 있어요. 


스튜디오의 사무실 스튜디오의 첫인상이라고 말씀드렸잖아요답변해주신 내용 듣고 보니 제가  스튜디오에 방문했을 때 느낀 단상들이 하나의 정갈한 문장으로 정리되는 느낌이 들어요. 
KKOL: 이곳을 작업할 때도 그런 고민들은 똑같이 했죠. 또 한 가지는 클라이언트의 입장이나 직원의 입장 그리고 사용자의 입장에 서보는 것이에요. 셋이서 머리를 맞대고 사용자가 마주할 법한 다양한 시나리오를 그리고 정리하죠. 누군가 여기서 요리를 하면, 동선은 어떻게 될까, 이동하기에 좁지는 않을까, 하면서 엄청난 시나리오들을 계속 그리죠. 


뭔가 다양한 가설을 세워놓고 검증하는 느낌이 드네요.
KKOL::그렇죠. 이렇게 하면 클라이언트와 이야기 나눌 때도 좋아요. 이미 너무 많은 시나리오를 세워놓은 상황이라, 어떤 이야기가 나와도 대응책이 마련돼 있거든요. 혼자였으면 쉽지 않았을 텐데 셋이기에 이런 부분이 더 탄탄해지는 거 같아요. 마지막으로 조명에도 신경을 많이 쓰죠. 


윤 실장님이 있기 때문이겠네요. 

KKOL:: 조명이 갖고 있는 외형적인 것들이나 아니면 정말 필요한 데서 그러니까 밝기 이런 것들에 대해서 많이 생각을 하게 되는데. 저희는 빛이 줄 수 있는 효과와 역할을 보다 심층적으로 들여다 보려고 노력해요. 조명은 공간의 리듬을 만들어주는 요소거든요.
 

 스튜디오가 설계한 공간들에 대해서는 부로컬리   발행되는  큐레이션 콘텐츠에서   심도 깊게 다뤄볼게요

KKOL:  감사합니다.




꼴을 묻다 


부로컬리 공식 질문 같은 건데요. 여러분들은 작업을 하실 때.

함: 아, 영감이요.
 
맞아요. 단골 질문. 영감을 어디서 얻으시나요?
윤: 공간 보고. 클라이언트와의 미팅을 하며 대화를 나누면 어느 정도 나오는 것 같아요. 공간의 목적이 있으면, 그에 따라 용도가 정해지고, 거기에 맞춰 필요한 설비나 동선이 결정되니까요. 그다음 공간이 가진 잠재성에 대해 고민해요. 어떤 부분을 강조하고 살리는 게 중요할지에 대해. 

배: 현장에 가면 정말 자유롭게 대화를 나눠요. 느끼는 것들을 허심탄회하게 얘기하거든요. 맞다, 틀리다, 가능하다, 터무니없다 같은 가치판단을 안 해요. '여기를 좌석으로 만들면 좋을 거 같은데, 커피 마시기 딱 좋은 자리 같아'와 같은 말들을 '이게 조금 헛소리라는 거 아는데 말이야'라는 전제를 깔지 않고 자유롭게 아이디어를 던져볼 수 있어요. 그리고 무엇보다 함께 모은 아이디어를 어떻게든 구현할 수 있도록 함께 고민하고요. 이런 과정 자체가 영감의 상당지분을 차지하는 거 같아요.
 

결국 한 사람과, 한 사람이 꾸려 갈 어떤 공간의 조건 속에서 영감을 길어 올리시는. 

함: 맞아요. 마주 앉은 사람이 하는 말이나 단어들은 결코 허투루 나오는 게 아니거든요. 또, 언어는 그 사람의 배경과 환경에 따라 조금씩 의미가 다르게 사용되기도 하잖아요. 제가 쓰는 단어의 의미와 상대가 쓰는 단어의 의미가 다른 경우도 많으니까. 대화 속에서 이런 의미들을 세밀히 이해하는 작업들을 중요하게 여겨요. 상대방에게 윽박지르는 디자인을 원하지 않거든요. 

배: 그래서 정말 생각 그 이상으로 대화를 정말로 많이 해요. 함 실장 윤 실장하고도 그렇고. 또 클라이언트 분들에게 먼저 말씀드리기도 해요. 우리가 좀 많이 괴롭힐 수 있다고 말이죠. (웃음) 계속 연락드리거든요. 이게 다 대화를 위해서예요. 글도 그렇잖아요. 소재가 얼마나 쌓이냐에 따라 풀어갈 수 있는 이야기가 많아지는 것처럼. 디자인도 다르지 않아요. 서로의 의견을 교류할 장이 많아져야 모두가 충족할만한 꼴이 갖춰지거든요. 누군가는 공간에 놓여 있는 의자, 바 테이블, 조명을 그냥 사물로 볼 수 있죠. 하지만 그 사물 하나가 그 자리에 그런 형태로 놓인 건 절대 허투루 놓인 게 아니에요. 

윤: 저희들의 개성이나 이런 것들은 최대한 놓지 않으며 디자인을 하되, 클라이언트가 원하는 이미지를 정확히 시각화하도록 있도록 대화에 에너지를 많이 할애해요. 듣는 것도 중요해요. 그래야 클라이언트가 원하는 방향을 파악할 수 있거든요. 소통하며 얻은 재료들을 보따리에 넣고, 이것들을 하나 둘 평면 위에 올리다 보면 틀이 잡혀요. 

함: 사무실이 생긴 게 그래서 참 좋아요. 클라이언트를 초대해서 공정을 다 보여드릴 수 있거든요. 디자인 방향을 잡는 과정부터, 캐드 작업하는 모습까지 설명드리거든요. 시각 정보를 통해 전달하는 거지만 이 또한 결국 소통이죠. 그들이 요구하는 게 어떤 의미에서 실현이 불가능한지, 대안은 무엇인지를 구체적으로 보여드리기 위해서 하는 방식이에요. 


작업 공간이 비단 디자인'만'하는 곳은 아니군요. 디자인 언어를 모르는 이들에게는 일종의 번역기 같은 역할을 하는 장소네요. 뒤 이은 공식 질문입니다. 요즘 시대가 공간의 미감이 중시되는 시대 같다는 생각을 저는 하고 있어요. 우리가 쓰고 있는 수단들 자체가 시각 정보에 특화되어 있고, 그러다 보니 이미지 정보가 중요해진 상황이라고 여겨지는데요.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배: 중요하죠. 하지만 그게 전부가 아니잖아요. 저는 특정 SNS를 잘 이용하지 않는 편인데요. 그래서 주변 지인들이 어떤 장소를 추천하면, 이유를 조금 집요하게 물어요. 단순히 보기 좋다는 거 말고 다른 이유를.


그럼 혜지 님도 누군가에게 공간을 추천할 때는?

배: 네. 저 역시 마찬가지로 누군가에게 공간을 추천할 때는 보다 명확한 이유를 제시해요. 제가 과거 서촌에 있는 궤도라는 카페를 우연히 가게 된 적이 있는데요. 


아, 궤도 알아요. 

배: 디자인도 좋았지만 궤도라는 공간의 브랜딩이 잘 된 인상을 받았어요. 궤도라는 꼴을 잘 갖췄구나,라는 느낌. 그런 이유로 함 실장에게도 추천했죠. 공간의 미감이 추천의 이유가 되는 건 분명 리스크가 있다고 생각해요. 개개인마다 취향이 다르니까. 한편으로는 좀 아쉬워요. 이미지가 공간의 전부인 것처럼 다뤄지는 어떤 현상에 대해서는 말이죠.


긍정적인 부분도 있을 것 같은데요.
배: 대중들이 보다 다양한 디자인에 열려 있는 듯한 느낌도 받아요. 예를 들면, 의자라는 게 기능에만 초점이 맞춰졌던 때가 있었거든요. 물론 그건 여전히 중요하지만, 지금은 편의성만 고려하는 공간만 있는 건 아니잖아요. 조금 불편해도 생경한 경험이나 장면을 만들어주는 요소들에 대해 예전보다 개방된 느낌이 있어요. 
 

맞아요. 저는 이런 걸 상향 평준화라고도 볼 수 있다고 생각해요. 

배: 디자이너 입장에서는 좋아요. 뭔가 도전해 볼 수 있는 여지가 많아지니까요. 그 말은 곧 새로운 경험들을 만들어 줄 수 있는 공간으로 이어지니까요.  

함: 미감도 미감이지만. 디자인 콘셉트가 공간에 잘 표현 되는 게 중요한 것 같아요. 어떤 공간을 들어가게 됐을 때 그 흐름들을 읽히는 공간들이 되게 좋은 공간이라고 생각을 하게 되더라고요. 거기에 미감이 잘 갖춰지면 더 좋은 거죠.

윤: 상향 평준화를 저는 조금 다른 시각에서 생각해 봤어요. 요즘은 정말 다양한 플랫폼들이 활성화된 시대죠. 핀터레스트가 대표적이고요. 이미지에 대한 접근성이 높아지다 보니, 저를 포함한 디자이너들이 참고와 모방 그 사이를 오가기가 더 수월해졌다는 생각을 하거든요.


네. 

윤: 그러다 보니 개개인의 특성에 대한 탐구나 스튜디오만의 색을 찾는 성찰의 과정이 생략되기 쉽다고도 생각해요. 각각의 개체, 스튜디오라는 꼴들의 색감이 점점 흐릿해지는 느낌이 드는 거죠. 특히나 꼴 스튜디오 같은 '후발 주자 스튜디오'의 경우, 그런 시도들에 움츠러들 수밖에 없는 구조기도 해요. 결과물은 만들어야 하는 상황에서 시도할 수 있는 여건은 한정적이다 보니 말이죠. 그러니 부유하는 이미지들을 재탕하는 상황이 반복되는 것 같기도 해요. 분명 미감적인 감도가 높아진 게 상향 평준화라면 상향 평준화할 수 있을 것 같지만, 디자이너의 관점에서 보면 상향 평준화라고 말할 수 있을지에 대해서는 조금 회의적이에요. 

함: 도처에 이미지들이 널려있죠. 디자이너도 그렇고, 일반 소비자들도 그렇고 하루의 시작과 끝을 이미지로 마무리하는 시대잖아요. 중요한 건 이미지를 읽는 방법이라고 생각해요. 어떤 이미지를 보고, 그 이미지가 누구에게 무엇을 전하려고 하는지 보는 거. 그리고 특정 이미지를 발췌할 때 디자이너는 그것이 가진 있는 맥락(context)을 파악해야죠. 이미지가 보여주는 장면(view)만을 흉내 내면 분명 디테일 적으로 무너질 수 있어요. 성찰 없이 추출하기만 하면 개성이 함몰된 공간들이 우후죽순 늘어나지 않을까 싶어요. 이 부분에 대해 저희도 계속 고민하고 노력해야 하고요. 

윤: 과거에는 핀터레스트 많이 찾아봤어요. 이미지 리서치를 할 목적으로 말이죠. 근데 어느 순간 찾다 보면 나오는 이미지들이 거의 대동소이해요. 어느 순간 알고리즘이 그렇게 갖춰져 버린 거예요. 결국 다양한 래퍼런스를 찾기 위해 살펴보던 툴이, 비슷한 이미지만 보게 만드는 느낌을 받았죠. 


일종의 반향실 효과 같은 거네요. 

윤: 네. 그래서 계속 의식하려고 노력했어요. 디자인할 때 내 눈에 조금 어긋나 보이는 게 있더라도 뚫어지게 쳐다보고, 그 안에서 발췌할 수 있는 아이디어들을 발굴하기 위해서 말이죠. 렌더링 할 때도 마찬가지예요. 제 눈에 익숙한 비율을 잡으려고 할 때면, 친숙하지 않더라도 다른 치수로 잡아보려고 의식해요. 익숙한 것에서 조금 비껴 나는 것들을 진행해 보면서, 새로운 지지점들을 찾아가 보고 있어요. 이런 게 조금의 다름을 만드는 지점이 되는 게 아닐까 하고.

 





made by KKOL


꼴 스튜디오의 목표가 있을지 궁금해요. 

함: 아무래도 이탈리아에서 공부했던 얘기를 잠시 해야 할 것 같네요.


네.

함: 유학 생활에서 얻은 게 정말 많아요. 디자인을 하는 방법론부터 이를 풀어내는 프로세스, 그리고 기술적인 부분까지. 하지만 진짜 배웠다고 느낀 부분 중 하나는 저명한 건축가들의 작업 방식들을 엿볼 수 있었다는 점이에요. 예를 들어, 밀라노에는 한 100년은 넘은 건물들이 즐비해 있는데요. 그 말인 즉, 당시 건축가들의 의도가 고스란히 남아있다는 얘기거든요. 놀라웠어요. 이들은 건물 하나 디자인하고 끝나는 게 아니고 거기에 들어가는 조명도 디자인하고 가구도 디자인하더라고요.

 

전부 다요?

함: 네. 손잡이부터 시작해서 심지어 타일 패턴까지. 공간에 있는 거의 모든 걸 직접 디자인하는 장인 정신이 깃들어 있었죠. 1900년대 초였기 때문에 가능한 일도 맞지만. 거시와 미시를 넘나들며 하나의 일관된 흐름을 갖춰나가는 건축 속에서 많이 배웠어요. 그리고 무엇보다 그런 건축의 이름을 말하는 대신, '누구누구의 작품'이라고 칭하는 걸 보며 충격을 받았고요. 
 

예를 들어, 꼴 스튜디오가 설계한 '스몰 에스프레소 바'를 '꼴 스튜디오의 작품 중 하나'라고 서술한다는 말씀이시죠? 
함: 네. 당시 답사를 함께했던 지도 교수에게 그런 태도가 신기하고 놀랍다고 말했더니 "이탈리아에서는 흔한 일이야. 이건 당연한 거야"라고 답을 하더라고요. 그 후로 명확한 소망 하나가 생겼어요. 나도 내가 디자인하는 공간에 모든 요소들을 디자인해보고 싶다고 말이죠. 


쉽지 않은 걸로 알고 있어요.

함: 네. 가구는 공간과 어울려야 해요. 디자인 콘셉트와 일관성이 있어야 하고, 동시에 기능이라는 본질에도 충실해야 하거든요. 


제작 가구의 경우 어떤 방식으로 작업하시나요? 

함: 공간이라는 큰 맥락을 보고, 서서히 좁혀가면서 가구의 디자인을 도출하는 방식으로 해요. 중요한 건 디자인 콘셉트와의 연결성이에요. 

 

확실히 집기부터 가구까지 직접 제작한 공간의 일관성이 선명해져 완성도가 높아 보이더라고요. 문제는 이게 시간이 많이 드는 부분이잖아요. 예산을 쓰는 일이니 설득의 문제이기도 하고요. 
함: 그렇죠.


그런 부분은 어떻게 타개하시나요?
: 말씀해주신 그런 환경 때문에 이동식 가구를 제작하지 못한 공간도 하나 있긴 있어요. 아픈 손가락처럼 남아 있네요. 아무튼 본론으로 돌아오면, 가구의 베리에이션을 여러 개를 작업해서 보여드려요. 


그런 거 보면 클라이언트 입장에서도 제작하고 싶은 마음이 들 거 같아요. 

함: 만일 비용의 문제라면 비용을 최대한 줄여드린다고 말씀드리죠. 형태도 텍스쳐도 간소화해서 제안드리는 형태로요. 정 안될 때는 최대한 공간에 맞는 기성 가구를 제안드리기도 해요. 그럴 때도 어떻게든 디자인 요소를 공간에 집어넣으려고 해요. 손잡이 디테일을 잡는다든가, 아니면 벽면 쪽에 디테일에 더 몰입한다던지.  

배: 누군가 우리 공간을 말할 때 "처음부터 끝까지 메이드 바이 꼴이잖아"라는 말이 나올 수 있는 스튜디오가 되는 게 목표예요. 



꼴 좀 보세요


인터뷰 내내 느낀 게 정말 좋은 친구이자 동료. 그니까 친구랑 동료가 동음이의어 같다는 느낌을 여러분 덕에 느낄 수 있었어요. 부럽네요.

함: 어떤 느낌을 받을 때가 있어요. 이탈리아에서는 혜지가, 한국에서는 의선이가 그걸 느끼게 해 줬어요. 같이 일을 하면 분명 재밌게 할 수 있겠다는 근거 없지만 분명한 낙관.

윤: 세 명이 모였을 때 확실히 시너지가 난다는 게 뭔지 피부르 느꼈던 것 같아요. 누군가는 '정말 말도 안 되는 이야기'라고 여길 법한 것조차 들어주는 동료가 있고, 그것들이 머릿속에만 맴돌다 증발하는 게 아니라, 현실세계에 구현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친구가 있거든요. 

배: 셋 중에 어느 한 명이라도 조금 이견을 갖고 있다거나 혹시 이거는 안 될 것 같아 라는 이야기들을 하게 되면 할 수 없어요. 다들 각자가 가진 디자인에 대한 아이디어를 끝까지 끌고 가는 것에 대한 갈망들이 있고, 그것들을 하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모여 만든 집단이다 보니 정말 행복하게 하고 있다고 생각해요.

함: 스튜디오 운영이란 현실적인 문제도 존재는 하죠. 하지만 지금은 주어진 상황 속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디자인들을 해내려고 애쓰고 있어요. 지금은 이게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모양이에요. 

윤: 제가 리스크 관리를 담당하는 역할을 하고 있는데요. (웃음) 저들이 최선을 생각하면 저는 최악의 상황을 고려하고 있어요. 분명 오르기 힘든 언덕을 마주하겠지만, 셋이기에 결국 올라갈 수 있을 거라 믿어요. 서로 밀고 당겨주면 되니까요.

배: 뭔가를 같이 하고 싶은 사람이 있다는 것도 복인데, 그걸 실제로 할 수 있다는 것도 엄청난 행운이지 않나 생각해요. 어쩌다 보니 운명 공동체가 됐네요. (웃음) 


평소에도 이렇게 표현 자주 하세요?

KKOL: 그렇지는 않아요. 


제가 와서 이렇게 말하시는?

KKOL:그렇죠 (웃음). 그런데 말은 안 해도 서로가 이미 다 느끼고 있어요. 


시간이 남으실지 모르겠는데. 작업이 없는 때는 뭐 하면서 보내세요?
함: 음 저는 저는 그냥 쉴 때도 여기 와요.
 
예? 와서 뭐 하시나요.
함: 주로 책을 읽으면서 머물러요. 제가 I 중에서도 진짜 I거든요. 


아, MBTI. 엠제트 세대시군요. mbti로 본인을 설명하시다니. 젊으시네요.
함:
(웃음)

 
최근에는 무슨 책 읽고 계신가요? 
: <내 작은 회사 시작하기>라고.
 


지금 상황을 뭔가 여실히 보여주는 제목인데요. (웃음)
배:
 그러네. (웃음)

함: 그러게요. (웃음) 최근에는 디자인 외적인 부분에 대해 살펴보고 있어요. 세금이라던지, 개인 사업 운영 관련해서 좀 공부가 필요하더라고요. 디자인만 할 줄 알았지, 정작 이런 운영에 필요한 내용들을 어디서 배우지 않았더라고요. 
 
그러네요.
배: 셋 모두 10년 넘게 디자인 공부만 하고 일만 하다 보니 이거 외에는 할 줄 아는 게 없어요. 


그러네요. 건축이나 실내 디자인도 결국 본인들의 사무소를 운영한다는 건 '사업'인데. 학부 시절에 관련 수업 같은 게 있어야 할 텐데. 

배: 그렇죠.

 

그런 길을 먼저 지나온 분들이 관련 내용을 나눠주거나 논의할 수 있는 장이 마련되면 좋겠는데요.  
함: 동의해요. 업계 전반에도 되게 건전한 문화가 생기는 거니까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요즘 정말 다양한 스튜디오들을 볼 수 있게 된 거 같기도 해요. 
함:
 확실히 시장 규모는 커지는 것 같아요. 이름 있는 스튜디오들도 보면 인원이 점점 늘고 있는 걸로 알고 있거든요. 얘기 들어보면 과거에는 해외에서 기본 설계안을 가져오면, 한국 시공업체나 시행사들이 디자인을 푸는 경우가 많았는데. 이제는 국내에 있는 스튜디오 중에 프로젝트를 맡길 수 있는 상황까지 됐으니까. 


혜지 님은 쉬는 날에 주로 뭐 하세요?

배: 저는 의선이랑 반대예요. 나가야 해요. 짧게라도 개인 시간이 생기면 친구들을 만나서 시간을 보내요. 디자이너라고 막 그럴듯한 공간만 가는 건 아니에요. 노포도 자주 가요. (웃음)


의선 님은 뭐 하면서 시간 보내시나요? 

윤: 저는 주로 조깅을 해요. 적당히 뛸 때는 한 4~6km 정도를 걷고 뛰기를 반복하죠. 에디터님은 뭐 하세요? 


저는 아쉬탕가 요가를 하고 있고요. 최근에는 달리기를 하고 있습니다. 아쉬탕가 요가 정말 좋습니다. 

윤: 저 안 그래도 요즘 요가랑 필라테스 중 뭐 하나 해볼까 생각했는데요.

배: 저는 필라테스하는데. 수빈이한테도 추천했거든요.

함: 몸 건강 좀 챙겨야 하긴 하는데.

배: 요가하면 뭐가 좋으세요 에디터님은?


할 얘기가 정말 많아지는데요. 아, 일단 녹음 여기까지 하고 본격적으로 얘기하시죠.

윤: 좋아요. 

배: 샴페인 가져와야겠다.

함: 못 드시는 음식 있으신가요? 








부로컬리(Boolocally)는 크리에이터들에게 영감이 되는 공간을 소개하는 플랫폼입니다. 인터부(INTERBOO)는 매주 다양한 크리에이터들과 마주(inter) 앉아 공간을 보는(view) 그들만의 태도를 부로디(BOOlody)에게 소개하는 인터뷰 콘텐츠입니다.







에디터 김승훈

인터뷰 꼴 스튜디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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