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사의 말들) 칼 세이건 『코스모스』
“코스모스 COSMOS는 과거에도 있었고 현재에도 있으며 미래에도 있을 그 모든 것이다. 인류는 영원 무한의 시공간에 파묻힌 하나의 점, 지구를 보금자리 삼아 살아가고 있다. 모든 인간사는, 우주적 입장과 관점에서 바라볼 때 중요하기는커녕 지극히 하찮고 자질구레하기까지 하다. 인류라는 존재는 코스모스라는 찬란한 아침 하늘에 떠다니는 한 점 티끌에 불과하다.”(P.36-37)
‘우리는 어디서 왔는가, 우리는 무엇인가, 우리는 어디로 가는가’라는 폴 고갱의 작품 앞에서 한참을 서 있었던 기억이 있다. 책꽂이 한편에 있는 도록을 찾아보니 2013년 서울 시립미술관에서다. 이 그림을 그릴 당시 고갱은 개인적인 이유로 절망의 시간을 보내고 있었고, 머릿속에는 근원적인 이 세 가지 물음이 떠나질 않았다고 한다. 그는 자신의 종교적이면서도 철학적인 주제를 이 그림에서 색채와 형태를 이용해 회화적인 방법으로 표현했다고 하는데 나는 그가 무슨 이야기를 하고 있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내가 할 수 있는 건 그저 어떻게든 이해해 보려고 그가 그려놓은 인물들과 동물, 새를 뚫어져라 쳐다보는 것뿐이었다. 과연 그는 이 세 가지 질문에 대한 만족스러운 답을 찾았을까? 그가 찾고자 했던 그 질문이 어느 날 불현듯 내게도 찾아왔다.
궁금한 게 이렇게 많은 인간인지 몰랐다. 필사라는 행위를 통해 이 책 저 책 다양한 장르의 책을 여행하면서부터였는지 아니면 책 속 문장들을 글감 삼아 글을 쓰기 시작하면서부터였는지 잘 모르겠다. 하지만 한 가지 분명한 건 이러한 과정을 통해 궁금한 게 해소되는 날도 있지만, 어찌 된 일인지 꼬리에 꼬리를 무는 질문들이 점점 늘어나 쌓여가고 있다는 사실이다. 질문은 또 다른 질문을 낳는다더니 기어이 이 질문에 답해야 할 때가 왔다. 아니 곰곰이 생각해 봐야 할 때가 왔다고 하는 게 맞겠다. 어쩌면 세상의 모든 질문은 기승전 이 질문으로 끝나는 게 아닐까 싶은 가장 근원적이고 본질적인 질문. “우리는 어디서 왔는가, 우리는 무엇인가, 우리는 어디로 가는가’ 나이가 들어서인지 아니면 질문의 끝에는 결국 이 질문이 기다리고 있다는 걸 아는지 이 질문에 대해 생각할 충분한 시간을 내어주기로 했다.
『코스모스』를 읽어야 할 때가 왔다는 걸 알았다. 어떤 책은 마음 한편에 수년간 자리 잡고 있다 ”바로 지금이야 “라고 말하며 내게로 온다. 왜 이 질문에 『코스모스』라는 책이 떠올랐을까? 아마도 인생 책인 유발 하라리의 『사피엔스』를 통해 인류사라는 큰 관점에서 보면 나라는 사피엔스는 지금의 시대를 살다 사라지는 그저 작디작은 존재라는 생각을 가지게 된 게 자연스럽게 『코스모스』라는 책으로 이어진 게 아닐까 싶다. 인류사의 관점이 아닌 우주적 관점에서 나라는 사피엔스를 바라보기로 했다. 『코스모스』라는 책을 통해 과학자들은 이 질문에 대해 어떤 대답을 할지도 궁금했다. 두 번째 질문인 ‘우리는 무엇인가’에 대한 답부터 구해보기로 했다.
“우리가 살고 있는 곳을 우주라 한다.
이 안에 은하라고 하는 존재가 2조 개 정도가 있다.
이 중 하나가 우리 은하다.
우리 은하 내에는 태양계 같은 별들이 1000억 개 정도가 있다.
우리 은하의 중심에서부터 빛의 속도로 2만 6천 년을 오면 태양계가 있다.
그러니까 우리는 변두리에 사는 거다.
이 태양계의 중심에 태양이 있고, 여기서 1억 6천만 킬로미터 떨어진 곳에 지구가 있다.”
책만으로는 이해하기 어려워 보고 또 보면서 필사를 병행하고 있는 한 유튜브 방송에서 이명현 천문학자는 우리 행성의 정확한 주소지를 이렇게 이야기한다. 학창 시절 분명 배웠겠지만, 과학에는 전혀 관심이 없는 학생이었기에 과학에 대한 이해보다는 냅다 외워 시험을 위한 공부만 억지로 했던 기억이 있다. 내게 과학은 생각만 해도 머리 아프고 지루하고 왜 배워야 하는지 모르는 과목이었다. 우주라고 달랐겠는가? 나와는 전혀 무관한 세계였다. 그렇게 반백살을 우주는 우주, 나는 나라는 생각을 하며 살아왔다. 이랬던 내가 이제는 자발적으로 우주라는 세계를 내 안에 들이려 한다. 그의 이야기를 따라 우주에서 은하를, 은하에서 우리 은하를, 우리 은하에서의 태양계를, 태양계 안에서의 지구를, 지구 안에서의 나를 상상해 본다. 이 광활한 우주 속 나라는 존재를 상상해 본다. 정말 먼지 같은 존재구나! 정말 보잘것없는 존재구나! 우주적 관점에서 나라는 사피엔스의 위치를 인식하는 것만으로도 ‘우리는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답이 되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이제 우리는 우주의 나이가 약 약 150억-200년 되었다는 사실을 안다. 이것은 '대폭발' 또는 '빅뱅'이라는 시점에서부터 계산한 우주의 나이다.
지구는 대략 46억 년 전에 성간 기체와 티끌이 응축된 구름 속에서 만들어졌다.
최초의 생명이 대략 40억 년 전 원시 지구의 바다나 연못에서 태어났다고 알고 있다. 원시 지구 대기의 주성분은 수소 원자를 여러 개 가진 간단한 구조의 분자들이었다. 이 분자들은 태양에서 복사된 자외선과 번개의 전기 방전을 통해서 쉽게 해리되었다. 분자에서 떨어져 나온 작은 원자와 분자들이 우연히 재결합하면서 더 복잡한 물질로 만들어졌다. 이렇게 생성된 화학반응의 부산물들은 바다나 연못에 용해됐으며, 거기에서 점진적으로 더 복잡한 일종의 '유기물 수프'와 같은 물질로 서서히 변해갔다. 마침내 수프에 들어있던 다른 종류의 분자들을 바탕으로 하여 스스로를 비슷하게 복제할 수 있는 새로운 분자가 아주 우연하게 만들어졌다. 이렇게 해서 앞으로 모든 지상 생명 현상의 주인공 구실을 하게 될 디옥시리보핵산 분자, 다시 말해 DNA의 원형이 탄생하게 된 것이다.
마침내 특정 기능을 수행할 수 있는 분자들이 한데 모여서 일종의 분자 집합체인 최초의 세포가 만들어졌다.
약 30억 년 전 단세포 생물이 세포 분열 후 두 개의 독립된 세포로 되지 못하고 그대로 붙어 있는 것들이 생기기 시작했다. 이것이 최초의 다세포 생물이 태어나는 과정이었다. 대략 20억 년 전부터 성이 생긴 듯하다. 성의 출현과 함께 두 개의 생물은 자신들이 가진 유전 설계도를 문단씩, 혹은 여러 쪽씩, 심지어는 몇 권씩 통째로 서로 교환할 수 있게 되었다.
10억 년 전쯤부터 식물들이 협동 작업을 통해 지구 환경을 엄청나게 변화시키기 시작했다. 그 시절 바다를 가득 메운 단순한 녹색 식물들이 산소 분자를 생산하자마자 자연히 산소가 지구 대기의 가장 흔한 구성 물질 중 하나가 되었다.
대략 6억 년 전부터 새로운 형태의 생물들이 폭발적으로 지구에 나타났다. 이것이 캄브리아 대폭발이라고 불리는 사건이다. 캄브리아 대폭발이 시작되자마자 다양한 형태의 생물들이 바다에 우글거리기 시작했다.
5 억년 전쯤 지구에는 삼엽충이 엄청나게 많이 살고 있었다. 2억 년 전에 모두 멸종한 것 같다.
캄브리아기 대폭발 이후에는 환경에 놀랍도록 잘 적응하는 새로운 형태의 생물들이 숨 막힐 정도로 급하게 속속 나타났다. 최초의 어류에서 최초의 척추동물로 빠르게 이어졌다. 바다에서만 살던 식물 중에 차츰 서식지를 육지로 옮기는 식물 나타나기 시작, 최초의 곤충이 태어났고, 뒤이어 날개 가진 곤충이 양서류와 함께 나타났다. 폐어를 닮은 양서류는 바다와 육지 양쪽에서 살 수 있었다. 그리고 지구에 최초의 나무가 등장했고 최초의 파충류가 출현해 공룡으로 진화해 갔다. 그리고 포유류가 지상에 출현, 그 후 최초의 새와 최초의 꽃이 생겨났다. 공룡이 멸종하고 돌고래와 고래의 조상인 가장 초기의 고래류가 나타났다. 같은 시기에 원숭이, 유인원, 인간의 공동 조상인 영장류가 지상에 그 모습을 드러냈다.
1000만 년 전에 인간과 아주 비슷한 생물이 처음으로 나타났으며 그들이 그 후, 그러니까 지금으로부터 겨우 수백만 년 전에 최초의 인간이 나타났다.”(P.80-86)
'우리는 어디서 왔는가’에 대한 답을 2장 ‘우주 생명의 푸가’에서 찾았다. 137억 년 전 우주의 탄생에서부터 지금까지의 영겁의 시간을 생각한다면 이 짧은 문장으론 턱없이 부족하다. 하지만 이 정도 분량이 내게 딱 맞는 길이가 아닐까 싶다. ‘우리는 어디서 왔는가’를 곰곰이 생각해 볼 수 있는 문장들. 이 같은 사실 역시 학창 시절 배웠겠지만, 지금처럼 선명하게 다가온 적은 없었다. 제대로 된 답을 찾았는지도 모르겠고 무슨 말인지 아무리 읽어도 이해되지 않는 부분들이 많아 건너뛰어가며 읽고 있다. 하지만 이런 감각을 가지게 되었다. 어느 날 갑자기 내가 지구에 뚝 떨어진 건 아니구나! 이런 과정을 통해 지금의 나라는 생명체가 있는 거구나! 결국 나라는 생명체는 이 우주, 코스모스와 연결되어 있는 존재구나! 설령 내가 찾는 답이 제대로 된 답이 아닐지언정 이런 생각을 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는 생각이 든다. 어찌 되었든 질문은 던져졌고 답은 언제든 수정하고 보완하면서 살아가면 된다.
매주 일요일 친구와 저녁 산책을 한 지 6개월쯤 되었다. 주로 나지막한 산을 통과해 논과 밭이 펼쳐진 동네 길을 걷곤 하는데 이 책 때문일까? 전부터 보아왔던 달이 예사로 보이질 않는다. 별들도 새롭게 보이기 시작했다. 저게 초저녁에 달 옆에서 크게 빛난다는 금성인가? 저녁에서 밤으로 넘어가는 시간을 걷고 있노라면 원자에서 출발해 지금의 인간이 된 두 인간이, 정말 먼지 같은 인간 둘이 점이 되어 이 광활한 우주를 걷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우주적 관점에서 나를 바라보기 시작했다. 이것이 바로 세 번째 질문인 ‘우리는 어디로 가는가’에 대한 답을 하기 위한 과정이 아닐런지 가만히 생각해 본다. 세 번째 질문에 대한 답이야말로 쉽게 찾아질 리 없다. 고갱에게는 고갱만의 답이 있었을 것이고, 내게는 나만의 답이 있을 것이다. 다만 나는 그 시작점을 “인류라는 존재는 코스모스라는 찬란한 아침 하늘에 떠다니는 한 점 티끌에 불과하다.”라는 문장에서 출발하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