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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이 May 17. 2023

에스프레소 세팅

유난히 에스프레소 세팅이 안 되는 날이 있다. 오늘이 그랬다. 


맛있는 커피의 기본은 에스프레소다. 그런데 이 에스프레소란 녀석이 꽤나 까다롭다. 추출 온도, 커피의 분쇄도, 커피 도징양, 추출량 등에 민감하다. 또 감정이 있는 것도 아닌데 날이 흐리거나 비가 내리면 추출 세팅이 달라진다. 게다가 커피를 분쇄하는 그라인더의 온도에 따라서도 맛이 달라진다. 이 녀석을 잘 달래서 가장 맛있는 에스프레소 한 잔을 내려야 한다.  


이렇게 말하고 나니 정답이 없는 것처럼 보인다. 맞다. 정답은 없다. 아니, 더 정확하게 이야기하면 정답은 있지만 정답을 알 수가 없다. 가장 정답에 가까운 답을 찾아 나설 뿐이다. 운이 좋다면 빠른 시간 내에 그 답 근처에 도달할 것이다. 바리스타는 그 운을 몸과 머리로 찾아내는 사람이다. 최대한 빠르게.  


최적의 맛을 찾기 위해 여러 잔에 에스프레소를 맛봤더니 머리가 띵하다. 그럼에도 만족스러운 맛이 아니다. 오픈 시간은 다가오는데 마음이 급하다. 이럴 때는 어느 정도 비슷한 답에 맞춰 놓고 조금씩 고쳐나가야 한다.  

오픈 때, 그리고 오전에 잠시 한가한 틈을 타서 세팅을 잡았는데, 오후가 되니 다시 뒤틀린다. 안 그래도 만족스럽지 않은데 계속 틀어지고 안 잡히니 답답하기만 하다. 뭐 이런 경우가 있냐, 뭐 이런 날이 있냐. 


뻔한 얘기는 하고 싶지 않지만, 이럴 땐 꼭 인생이 떠오른다. 정답이 없다는 것, 그래도 그 정답이라고 생각하는 비슷한 지점까지 이르러야 한다는 것, 맛보고 경험하지 않으면 그 정답을 알 수 없다는 것. 그래도 모르겠으면 답답하고, 답답함이 계속되면 무력해진다는 것. 이럴 때는 한 번에 다 하려고 하지 말아야 한다. 조금 숨 쉴 틈을 마련하고, 적정선에서 타협한 뒤에, 다시 해봐야 한다. 그래도 안되면 누군가의 도움을 받아도 좋다. 시간은 흐르고 환경은 바뀐다. 언제가 됐든 그 운에 가장 가까이 도달하는 타이밍 있다.  


그런데 어쨌든, 

오늘 에스프레소는, 

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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