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홍 필구 Jan 22. 2024

보통의 날들

수호는 평범한 삶을 살아가고 있다.

그의 삶이 평범한 삶이라고 생각한 건 시간이 꽤 지나서  세상에는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엄청난 일들이 시시때때로 벌어지고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게 되었을 때쯤이었다. 누구나 자신의 삶은 책으로 써도 권 이상은 나올 것이라고 말하지만 수호에게는 해당되지 않는 말들이었다. 그는 자신의 인생이 계곡의 거센물에 굴러다니는 작은 돌멩이와  같다고 생각했다. 내세울 만한 일을 해본 적도 그렇다고 누구에게 평생을 뉘우치며 살아갈 정도의 잘못을 한 적도 없었다. 가끔 문득 자신의 지난 인생을 의도치 않게 되새김질할 때가 찾아오는 날이 있었다. 원한 건 아니었지만 그 생각을 멈출 수는 없었기에 영화관의 아르바이트를 하는 학생이 손님이 다 떠나고 남은 영화관을 청소하면서 스크린 속의 엔딩크레딧이 흘러가게 두듯 그 생각이 무심히 지나가게 놔둘 뿐이었다. 인생의 엔딩크레딧이 가끔 멈출 때가 있었는데 그땐 고장 난 화면을 고치려고 고개를 가로저어보기도 했다. 하지만 그뿐이었다. 고장 난 티브이를 손바닥으로 치면 다시 화면 속의 주인공들이 말을 시작하는 것처럼 고갯짓 몇 번이면 다시 별문제 없이 일상을 시작할 수 있었다. 그에게 인생이란 거창한 것이 아닌 맞춰나가는 파트너 같은 것이었다. 하지만 나이가 들수록 조금씩 그의 인생이 파트너가 아니라 어쩌면 직장의 상급자 같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스스로의 생각으로 움직이는 시간이 생각보다 많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분명 힘들게 일해서 돈은 벌고 있는데 도무지 자유롭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하지만 깊게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 남들도 다 이렇게 살아가고 있을 테니까. 난 그냥 평범하게 살아가는 사람일 뿐이니까. 그저 하루하루 이렇게 살다 보면 살아질 거라는 생각이었다. 그래서 이젠 인생을 모시고 살기로 했다. 이제 알았다. 삶은 눈치라는 녀석을 항상 곁에 둬야 한다는 것을 말이다. 녀석은 감정기복이 심하기 때문에  언제나 그의 표정을 살피고 있어야 한다. 그래서 나를 들여다볼 시간을 내기란 참 어려운 것이었고. 그 진실을 마주하려면 큰 용기가 필요한 것이었다.

삶을 지혜롭게 살아가는 방법중의 하나는 나에게 일어난 일은 별거 아닌 일로 해야 한다. 기준은 없다. 그 기준을 판단하는 것은 오롯이 나의 몫이기에 내가 별 일이 아니면  별 일이 아닌 게 된다. 실제로 그러한지 아닌 지는 잘 모른다. 그걸 판단하면서 살아가고 싶진 않다. 하지만 어쩐지 모든 것에 크게 감정이 생기지 않는다는 것을 서서히 깨달았다. 그러하고 있다고 참말로 느끼고 있었다.

그런데 뜬금없이 마흔이 넘은 중년의 남자가 성냥팔이 소녀 동화책을 보고 눈물이 핑돌더니 급기야  화이트라는 노래를 듣다가 마침내 오열을 해버렸다. 왜 그런지 잘 모르겠다. 동화가 슬픈 내용이라는 것이 갑자기 와닿아서 그랬을 수는 있는 거 같은데 왜 '램프의 요정을 따라서'로 시작하는 신나는 노래를 듣다가 갑자기 눈물이 주르륵 흐르더니 결국에는 소리를 내며 울게 되었는지는 사실 지금도 잘 모르겠다. 황당한 경험이었다.

수호는 지금도 평범하게 살고 있다. 누구에게 힘들다고 말하면 비웃음을 살게 뻔하다고 생각한다. 진짜 힘듦을 모르기 때문이라는 핀잔을 들을게 뻔하다고. 그래서 그는 행복한 사람이 되기로 했다. 행복이라는 건 그러하다고 생각하면 그러한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어쩌면 이미 놓쳐버린 열차를 놓치지 않은 것처럼 행동하면 주변의 안쓰러운 시선이나 질문 따윈 받지 않아도 될 테니 말이다.



작가의 이전글 오랜만에 읽어 본 빨강머리 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