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빛

당신의 눈 속엔 한없이 고운 아지랑이가 일렁이네.

그 아련함은 아무 소리 없이 내게 다가와,

나를 감싸며 무겁고도 가벼운 파동을 남겼지.

나는 그 아스라한 안개에 발길을 적시며,

스스로를 비추는 투명한 얼굴을 보았네.

당신의 시선은 작은 가지가 흔들리는 속삭임과 같아,

말 없는 경치 속에서 나를 부드럽게 초대하네.

그 속에는 아무것도 강요하지 않는

따뜻한 정감이 머물고 있었지.

그 정감은 나를 단단하게 감싸면서도

내가 자유롭게 흘러가도록 허락했네.

그 시선과 마주하는 동안,

나는 오래된 들녘의 손짓을 들었네.

당신의 눈 속에 담긴 기억들은

내가 잊었던 세월의 파편들이었고,

그 파편들은 어둠 속에서도 나를 채워갔지.

그리하여 나는 당신 안에서

무언가를 잃는 대신 모든 것을 얻었네.

당신의 눈 속에는 한계가 없었네.

그 깊이를 헤아리려 할수록

나는 점점 더 작아지고,

작아진 나는 다시금 커져갔지.

그 속에서 나는,

내가 알지 못했던 내가 되었네.

당신의 시선이 내게 닿을 때,

그것은 낯선 언어로 전해지는 위로와 같았지.

당신은 아무것도 말하지 않았지만,

그 침묵 속에서 모든 것이 들렸네.

그리하여 나는

침묵이 가진 가장 아름다운 얼굴을 알게 되었네.

눈길이 닿는 그 순간,

나는 하나의 길 위에 서 있었네.

그 길은 시작도 가늠할 수 없이

그저 당신에게로 이어졌지.

그 길 위를 걸으며 나는 깨달았네.

당신의 시선 속에서

나는 나 자신을 내려놓을 수 있음을.

당신과 마주한 그 날,

모든 틀이 사라졌네.

눈빛 하나로 이루어진 세상에서

나는 처음으로 집이라는 것을 느꼈지.

그 집은 아늑하고도 단단했으며,

나를 기다린 시간들로 지어진 것이었네.

당신의 시선 속에서,

나는 내가 걸었던 모든 길을 이해하게 되었네.

그 길들은 결국

당신과 나를 만나게 하기 위해 있었지.

그리고 그 만남은 말 없이도 충분했네.

당신의 눈은 마치 오래된 샘과 같아,

그 안을 들여다볼수록

나는 더 많은 나를 꺼내게 되었지.

우리는 서로의 눈 속에

작고도 깊은 미로를 발견하며

그곳에서 손을 맞잡았네.

그리하여 당신의 눈길은

하나의 가만한 향기로 변하였고,

나는 그 잔동을 따라

나 자신으로 돌아갈 수 있었네.

당신의 시선이 머무는 그곳에서

우리는 이미 하나였음을,

나는 조용히 깨달았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