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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멀똑 Jun 30. 2024

누군가를 기억하게 만드는 문장들

김멀똑의눈치코칭

나는 누군가와 대화를 나눌 때 한 문장 정도의 말을 기억하려 애쓰는 버릇이 있다. "뜨거운 물 좀 떠와라"는 외할아버지가 내게 남긴 마지막 말이었고, "그때 만났던 청요릿집에서 곧 보세"는 평소 좋아하던 원로 소설가 선생님의 마지막 말이었다. 나는 죄송스럽게도 두 분의 임종을 보지 못했으므로 이 말들은 두 분이 내게 남긴 유언이 되었다.


먼저 죽은 이들의 말이 아니더라도 나는 기억해두고 있는 말이 많다. "다음 만날 때에는 네가 좋아하는 종로에서 보자" 라는 말은 분당의 어느 거리에서 헤어진 오래전 애인의 말이었고 "요즘 충무로에는 영화가 없어"는 이제는 연이 다해 자연스레 멀어진 전 직장 동료의 마지막 말이었다. 


이제 나는 그들을 만나지 않을 것이고 혹 거리에서 스친다고 하더라도 아마 짧은 눈빛으로 인사 정도를 하며 멀어질 것이다. 그러니 이 말들 역시 그들의 유언이 된 셈이다. 역으로 나는 타인에게 별 생각 없이 건넨 말이 내가 그들에게 남긴 유언이 될 수 있다고 믿는다. 그래서 같은 말이라도 조금 따뜻하고 예쁘게 하려 노력하는 편이다. 


말은 사람의 입에서 태어났다가 사람의 귀에서 죽는다. 하지만 어떤 말들은 죽지 않고 사람의 마음 속으로 들어가 살아 남는다. 꼭 나처럼 습관적으로 타인의 말을 기억해두는 버릇이 없다 하더라도 대부분의 사람들은 저마다의 마음에 꽤나 많은 말을 쌓아두고 지낸다. 어떤 말은 두렵고 어떤 말은 반갑고 어떤 말은 여전히 아플 것이며 또 어떤 말은 설렘으로 남아 있을 것이다. 검은 글자가 빼곡하게 적힌 유서처럼 그 수많은 유언들을 가득 담고 있을 당신의 마음을 생각하는 밤이다 


-박준 시인<운다고 달라지는 일은 아무것도 없겠지만>중에서-



지난주에는 큰아버지의 장례식장에 다녀왔습니다. 제 부친과도 나이 차이가 20년 가까이 나는 어른이셨기에 어린 시절 그분과 나눈 대화는 그리 많이 생각나진 않습니다만, 명절마다 찾아뵙고 인사드리면 늘 하시던 "어서오거라" 라는 말씀은 언제나 따뜻함으로 기억됩니다. 


유언까지는 아니겠지만, 코치가 되고서 내가 누군가에게 남긴 말이 마지막이 되어 그 사람에게 어떤 영향을 준다고 하면, 내가 던지는 질문에 혹은 그 문장안에 함께 담긴 단어들 하나하나에 신경을 쓰게 되지 않을까 생각해봅니다. 


마지막 회자에 만나서 코칭을 마무리하는 순간, 고객은 나의 말중에 어떤 것들을 마음에 두고 살아가게 될까? 아무런 울림이 없는 대화로 끝날 수도 있겠지만, 어쩌면 몇개의 단어, 몇개의 질문들이 그 귀에 남아 마음속에 기억으로 남게 된다면, 나는 코치로서 어떤 것을 묻고 어떤 말을 들려주어야 할까요 


구조적 대화의 단계에 준비되어 있는 질문의 꾸러미들을 던지고, 그 질문들에 대한 고객의 답변을 되돌려주고, 때로는 도전하고, 때로는 지지하면서 고객의 성공을 응원하게 되는 셈인데요. 박준 시인의 글을 통해 이러한 대화들이 충만한 장면을 떠올리며, 새삼 코칭 관계의 강력함을 느끼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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