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 아들이지만 엄마 아들.
토요일은 사랑하는 동생의 생일이었다. 동생의 생일을 축하하기 위해서 온 가족이 한 자리에 모였다. 동생은 이번에 이직을 했다. 기존에 다니던 회사는 공기업 계열이었는데 상사가 안하무인으로 말도 안 되는 지시를 내리는 통에 동생이 고생을 많이 했던 모양이다. 그 당시 동생은 늘 분노에 차 있어서 말 한마디 쉽게 건네기 어려운 상태였다. 올해 이직한 곳은 증권회사인데 합리적인 사람들만 모여있다고, 옮기고 나니 자신이 얼마나 불합리한 상황에 처해있었는지 더더욱 알게 되었다고 이야기했다. 다행이다. 내 생각에는 공기업이 더 편할 것 같았는데 '목표'가 없어서 이상한 사람들이 더 많다는 모양이다. 인센티브나 상여가 많지 않으니까 내 할 일에 집중하지 않는다는 식으로 이야기했다. 그럴 수도 있겠다. 어쨌거나 누나는 동생의 삶이 더 나아졌다니 마음이 놓인다. 이야기를 들어보니 회사에서 어떻게 해서 무엇이 되겠다는 식의 목표도 생긴 것 같다. 기쁜 소식이었다.
동생의 목표에 관한 이야기를 하다가 동생과 나의 성향이 다르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동생은 현재 하고 있는 일보다는 영업을 뛰고 싶다고 이야기했다. 그 이야기를 듣고 매우 놀랐다. 나는 절대 영업은 하고 싶지 않다. 사람을 만나는 것 자체를 꺼려하는 편이며 회사에서 많은 사람들과 대화하는 것만으로도 이미 지쳐있는 상태다.
어렸을 때는 내가 외향적이고 동생이 내향적이었다. 그러나 그건 표면적인 것일 뿐으로 나는 외향적으로 보였지만 주변의 눈치를 굉장히 많이 봐서 혼자 많이 힘들어했던 것 같다. 계기는 예비 중1 때 만났던 성당 언니들이었다. 초등학교 때만 해도 동네 언니들과 반말로 웃고 떠들었는데 그 언니들은 존대를 하라고 윽박질렀다. 그 이후로 친하게 지내던 동네 언니들과도 소원해지고 주변의 눈치를 보게 되었다. 너무 어렸을 때의 트라우마지만 아직 극복하지 못하고 영향하에 있는 것 같다.
각자의 성향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엄마는 굉장히 외향적이었다. 사람들을 만나면서 기를 받는다고 말했다. 아빠는 에너지 충전 여부는 모르겠으나 사람들과 친해지는 것이 어렵다고 이야기했다. 그러고 보니 나는 엄마의 외모, 동생은 아빠의 외모를 물려받았으나 성격은 반대라서 재미있었다. 엄마는 말했다. 너는 사람들을 만나서 그들의 비위를 맞춰주려고 하다 보니 힘든 것이라고. 엄마처럼 하고 싶은 대로 행동하면 사람들을 만났을 때 신이 난다고. 실제로 엄마는 (경제적으로 부족해서 못 한 것을 제외하면) 정말 원하는 대로 행동하면서 살아가고 있다. 마음은 여리면서도 어떻게 그럴 수 있는지 신기하다.
내가 하고 싶은 대로 하면 어떨까 생각해 본다. 그렇게 하더라도 회사에서 잘리지는 않을 테고 오히려 이 동네의 미친년 취급을 할 테니 일적인 면에서는 크게 달라질 것이 없겠지만 아.. 생각만 해도 주변 눈치에 속이 쓰리다. 나는 안 되겠어 엄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