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로사회의 한병철 교수를 통해 그의 최애 철학자 '발터 벤야민'을 접하게 되었다.
그의 저서를 읽으려다 권용선 작가가 정리한 ‘발터 벤야민의 공부법’을 골랐는데
나이가 들수록, 일을 할수록 생각의 고갈을 뼈저리게 느끼고
앎을 채우는 시간이 부족하다는 것이 나를 초조하게 만들어
무겁게 철학 자체를 이해하는 것보단
정규교육이 끝난 어른이 되어서도 어떤 식으로 평생 공부를 할 수 있는 지 현실적 방법이 궁금했기 때문.
“ 삶의 전 과정을 공부의 과정으로 이해했고,
자신의 시대와 지식 사회 문제에 맞서 싸우는 방식으로
공부했던 발터 벤야민.
세계를 향해 끊임없이 질문하고 저항하는 공부법이란 무엇일까”
권용선 작가가 던지는 질문에
마케터로서, 자본주의 세계의 비즈니스 디벨롭과 관련 업무를 해 온 사람으로서
발터 벤야민의 철학을 이해하는 것이 쉽지 않겠지만,
그럼에도 나의 일에, 삶에 적용할 수 있는 실마리를 찾았으면 좋겠다는 기대와 함께 책을 읽었다.
발터 벤야민의 사유와 지식 습득은 사소한 것들에 대한 사유의 방법으로
크게 3가지로 나뉜다.
첫째, 배움의 장소인 도시를 통해
둘째, 자신이 관련 있던 작가들을 통해 다른 사람이 된다는 것
셋째, 수집, 정리, 글쓰기라는 매일의 루틴을 통해
배움의 장소인 도시를 통해
그는 매일 접하는 일상 속에서 발견하는 풍경, 사람들, 사물을 통해 사유하고 솔루션을찾아가는 면모를 보였고 이 방식은
도시를 배회하며 어린아이의 눈으로 낯선 도시의 풍경들을 주의 깊게 세심하게 살펴보고
보통의 여행자의 눈에는 보이지 않았을 것들을 하나씩 발견하며 자신만의 새로운 시각을 얻게 되는 일련의 프로세스를 만들었다. 길을 잃는 방식으로 길을 발견했던 장소로 베를린과 모스크바, 파리가 있었고
그가 도시를 헤매는 시선에서 나온 미완의 걸작이 ‘아케이드 프로젝트’이다.
자신이 관련 있던 작가들을 통해 다른 사람이 된다는 것
본인이 관심 있는 학자의 책들을 읽거나 번역하며 그의 지식을 습득하여 일체화시키는 것이 아닌 스스로의 스타일로 개념을 차용하기 위해, 방법론을 통해 각자의 문제 해결의 방법론의 힌트를 얻기 위해, 우리는 학자나 작가의 글을 읽는다. 벤야민 역시 프루스트, 보를레르, 카프카 속으로 들어가 그들이 되어봄으로써 다른 자신을 체험하고, 벤야민도 그들도 아닌 새로운 무엇인가를 창안하는 공부법을 갖고 있었다.
수집, 정리, 글쓰기
아웃풋으로서 쓸모없는 것들에서 쓸모를 만들기 위해 수집하고, 인용하고, 배치하는 루틴을 만들었으며
지식인의 무기로서 성실한 글쓰기를 매일 실천했다.
요즘 우리가 필사를 하고, 문장을 수집하고, 블로그 일기를 쓰거나 브런치에 글을 쓰는 것이 이미 100여 년 전부터 발터 벤야민이 하던 공부법이다.
1940년에 자살한 그가 지금 주목받고 있는 이유가 이런 동시대적인 사유와 방법론 때문이지 않을까.
내가 발터 벤야민에 공명을 느끼는 특별한 이유는
길을 잃는 방식으로 길을 발견했던 그 도시 베를린과 모스크바, 파리가 나에게도 그러한 곳들이기 때문이다.
파리와 베를린, 모스크바에서 살았고, 인연이 있는 도시이기에 그의 도시 이야기를 몰두하여 읽었다.
역시 사람은 자기와 관련이 되면 없던 관심도 생기고 몰입도도 남달라 진다.
나의 모스크바에서의 일상이 떠올랐다.
어린아이처럼 낯선 시각으로 도시를 본다는 그의 태도와 비슷하게 나 역시 러시아어를 전혀 알지 못한 상태에서 모스크바란 도시에 대한 정보가 공산주의 시절의 붉은 광장 외엔 잘 알지 못한 채 그곳에 도착했고 여행자가 아닌 일상인으로 살았다.
톨스토이와 차이코프스키 등의 러시아 예술가들에 오랜 동경을 갖고 있었다는 것이 그나마 그 도시를 살아갈 수 있게 하는 동력이었지만 여전히 동양인 여성에게 보내는 시선들은 낯설고 무서웠다.
(잠깐 이 글을 읽으시는 분들이 오해하실 것 같아 러시아인들의 미소와 관련된 정보를 드리자면,
러시아인은 기본이 무표정이고 웃는다는 것은 웃어야 할 이유가 분명해야 할 때다. 그렇기에 나를 쳐다보던 그 시선들은 내가 그들을 잘 몰랐을 때 나의 오해일 뿐... 나의 러시아인 친구들은 잘 웃고 재밌는 친구들이다.
ㅎㅎㅎ 보고 싶다 친구들아 ㅠㅠ)
공항에서 내려 모스크바 시내로 들어가며 느꼈던 낯섦과 두려움은
내 삶에 쌓여온 풍경과는 다른 생경함들의 연속들로 호기심이 덩어리 되어
두려움도 없이 사는 동안 매일을 모스크바 이곳저곳을 헤매고 다녔다.
지금도 눈을 감으면 모스크바 센터 내 골목골목 풍경이 구글맵처럼 떠오른다.
아마 발터 벤야민도 나와 같지 않았을까?
발터 벤야민을 모스크바 가기 전에 알았으면 시간 낭비 없이 시간을 더 가치 있게 보냈을까 싶었지만,
발터 벤야민식으로 다시 생각해 보면 지금의 나의 러시아 & 모스크바에 대한 정보와 지식은 아무것도 모른 채 매일 일상의 과정에서 배웠기 때문에 오롯이 나만의 생생한 자산이 된 것 아닐까.
모스크바 시절은 나의 선입견과 인생관을 철저히 무너뜨리고 새로운 시각이 만들어진 때이기도 하고
어른으로서 오랜만에 느껴보는 순수한 시간이었다.
지금은 여느 대도시처럼 소비가 너무 편해진 곳이 되었지만 내가 살던 시기만 해도 소비가 쉽지 않은 때였기에 그때는 공원에서 피크닉을 하고, 수많은 미술관투어를 하고 콘서트를 다니곤 했다. 내가 살던 당시 피아니스트 조성진이 차이코스프키 콩쿠르에 와서 운 좋게도 그의 연주를 현장에서 들을 수 있었다.
그들의 삶에 소비가 예외가 되니 예술적 풍경이 나에게도 일상이 되었다.
러시아어를 잘하지 못해 이성적이고 지적인 커뮤니케이션이 불가하였지만, 반면
감각은 더 본능적이게 되어 일상에서 오히려 호기심과 궁금증은 더 많아졌고 이들을 해결하기 위한 다양한 솔루션을 총출동했다.
어린아이가 세상에 눈을 뜨며 어른들에게 이건 왜 그래요? 하는 모습과 똑같았다.
그리고 그런 호기심들이 정보들로 쌓여 나만의 지식이 되었고,
체류하는 동안 한국의 대기업의 모스크바 진출을 위한 몇 개의 프로젝트들을 진행했고, 책도 한 권 냈다.
아이의 시선과 마케터의 업무적 스킬이 합해져 나만의 모스크바 풍경이 만들어진 그때의 나의 모습처럼,
운명 같은 연인과 함께한 그의 모스크바의 몇 달이 궁금해진다.
그래서 ‘모스크바의 일기’를 주문했다.
시간의 차이로 변한 삶의 풍경과 사람들,
사물들의 차이가 분명 있겠지만,
그의 삶 속에서 경험한 모스크바를 체험하고 싶다.
권태로운 일상에 신선한 바람이 불어오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