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신과 함께>를 통해
우리나라의 장애인 비율은 약 5%이다. 장애인 비율이 절대 작은 수치가 아닌 현대 사회에서 비장애인과 장애인은 어떻게 한 사회 안에서 살아가고 있을까?
자폐아의 엄마인 ‘동주씨’ 작가님이 말씀하셨다. “왜 동화책의 악당들은 장애인일까?” 이 말을 듣고 많은 생각이 들었다. 21세기 사회는 장애인과 함께 더불어 살아가고 평등하게 살아간다고 주장하지만, 정작 우리는 어렸을 때부터 악당은 <피터팬>의 후크선장처럼 장애가 있고, 악한 행동이나 하지 말라는 행동을 하는 인물은 인어공주처럼 장애를 갖게 된다는 동화를 접해왔다. 올바른 인식을 심어줘도 장애에 대한 시선을 바꾸기에 역부족인데 동화로 처음 세상을 접하는 아이들에게 장애에 대해 부정적인 인식부터 심어준다. 그리고 우리는 그 부분에 대해 특별히 문제라 생각한 적도 없다.
일반적으로 미디어에 등장하는 장애 캐릭터는 많은 고난과 시련을 마주하지만, 결국 극복하고 해피엔딩으로 끝나는 클리셰를 보여준다. 이걸 볼 때 어렸을 때부터 장애를 결점이라고 들어온 우리는 가난하고 가진 거 없는 여자 주인공이 고난을 겪다가 마지막에 가난이라는 결점을 극복하는 그런 클리셰와 다를 게 없이 다가온다. 장애가 결점이 아니라 주장하는 사회에서 가난과 장애가 비슷한 루트를 보여주는 설정이라니, 아이러니한 상황이다.
동화, 영화, 드라마 등에 나오는 장애 캐릭터의 큰 문제점은 대부분 장애가 없는 감독, 작가, 배우, 대중들의 시선으로 그 캐릭터를 만든다는 것이다. 나날이 발전하는 콘텐츠 산업 내 다양한 작품에서 등장하는 장애는 마냥 특별하지 않은 요소가 되었고 항상 이슈와 문제를 불러일으킨다. 그중 나는 천만 관객을 돌파한 흥행 영화 <신과 함께>에서도 원 일병(도경수)이란 관심병사 캐릭터에 대해 생각해보았다. ‘원 일병’ 캐릭터가 원작인 웹툰에서는 송구현과 김희승라는 비장애인 캐릭터로 등장한다. 원래는 비장애인으로 등장해야 하는 원 일병에게 영화 <신과 함께>에서는 관심병사라는 장애 설정까지 넣었다
<신과 함께>, <7번 방의 선물>과 같이 장애인 등장인물이 등장하는 천만 관객을 돌파한 영화들,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 <우리들의 블루스>처럼 최근 이슈화된 드라마 등 장애 캐릭터는 미디어 콘텐츠 산업에서 흔하게 찾아볼 수 있다. 장애인의 ‘특수성’은 미디어 내에서 창의성을 키워주는 데에 한몫한다. 또 장애가 주는 ‘다름’에 대해 비장애인들이 쉽게 접근할 수 있게 되고 장애에 대해 나쁘게 여겼던 고정관념을 친근한 미디어를 통해 없애준다는 긍정적인 점이 있다.
하지만 무언가 이상하다. 미디어 내에 등장하는 장애 캐릭터에 대한 판단이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이런 기준은 오롯이 장애가 없는 사람들이 만들었다. 영화 <신과함께2>에서 나타난 주요 사건은 원 일병의 실수로 총이 발사돼 일어난다. 하지만 후에 책임은 박 중위에게 있는 것처럼 보여준다. 이 부분에서 의아함을 던진 사람은 그리 많지 않았다. 우리는 아무렇지 않게 장애가 있는 사람은 자신이 저지른 일에 책임지기 힘든, ‘결점’있는 사람이라 생각한 것이다. 실제 영화 내에서 원 일병은 저승 재판장에서 자신이 잘못한 사실을 모두 알고 있었으며 김수홍에게 계속해서 사과하다가 극도의 긴장과 불안감으로 결국 쇼크사한다. 이 장면은 장애인인 원 일병도 책임감을 느끼고 반성한다는 걸 충분히 보여준다. 그러면서도 영화의 스토리는 원 일병에게 손을 들어주었다.
‘장애가 있다면 잘못을 반성했다고 죄를 묻지 않거나 심신미약이라는 이유로 죄를 줄여주는 게 맞을까’하는 생각도 들게 한다. 평등한 사회에서 책임을 물을 수 있는 사람에게도 장애를 핑계로 죄를 면해주는 것은 엄연히 과보호이다. 원작에 등장하지 않는 ‘원 일병’이란 캐릭터는 결국 영화를 보는 사람들에게 장애를 ‘결점’으로 만들어줬다.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로 인해 큰 화제가 된 ‘크리핑 업’도 생각해볼 만한 문제이다. ‘크리핑 업’이란 장애가 없는 사람이 장애가 있는 것처럼 행동하는 걸 의미한다. 몇 년 전, 틱 장애가 있어 많은 응원과 박수를 받던 한 유튜버가 사실은 모두 연기였다는 논란이 있었다. 이 유튜버가 심한 비난을 받은 이유는 단순히 거짓말을 해서가 아니라, 장애인을 따라 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를 보며 사람들은 비장애인인 박은빈 배우의 장애인 연기에 극찬을 날렸다. 장애인의 입장에서 바라봤을 때, 비장애인 배우가 하는 장애인 연기와 장애인을 연기한 논란의 유튜버는 무슨 차이일까.
이제 우리는 콘텐츠 속 장애 캐릭터가 그저 장애가 없는 사람의 시나리오에서 나온 장면에 불과하다는 걸 알아야 한다. <우리들의 블루스>에서 실제로 장애가 있는 분을 직접 등장시킨 것은 그런 문제점을 없애기 위해서이다. 만약 영화 <신과 함께>에 등장 한 원 일병도 실제 장애인 배우가 등장했다면 영화의 스토리는 지금과 같지 못했을 것이다. 물론 현실이든, 콘텐츠 내에서든 장애로 인해 우리와는 다른, 불편한 점은 도와주는 게 당연하다. 하지만 그분들이 책임질 수 있는 것, 생각할 수 있는 것까지 돕는 것은 비장애인이 장애인에 대해 ‘결점’이라 생각에서 연결되는 잘못된 행동이라는 점을 항상 생각하고 판단할 줄 알아야 한다.
어렸을 때는 동화에서, 나이가 들어서는 콘텐츠로 계속해서 장애에 대해 잘못된 인식을 키우면 비장애인도, 장애인도 평등하다고 생각하는 사회는 절대로 오지 않을 것이다. 미디어 내에서 백인에게 유색인종의 연기를 시키거나 남성에게 여성 연기를 시키지 않는 것처럼 비장애인에게 장애의 연기를 시키는 것에 대해서도 한 번쯤은 생각해보아야 한다. 실제로 어떤 생각을 하는지, 어떤 판단을 하는지는 배우도, 보호자도, 관객들도 아닌 장애가 있는 본인만이 알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