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학기가 되면 생각나는 음식, 샤부샤부 추억이 있다. 보글보글 끓는 냄비 안에서 감칠맛 나는 육수와 갖가지 채소, 고기가 어우러진 그 다채롭고 화기애애한 맛은 여전히 내 입에 남아, 함께한 이들과의 추억을 떠올리게 한다.
어느덧, 우리 동네로 이사 온 지 8년의 세월이 흘렀다. 결혼 후 장만한 첫 신혼집에서 아이들이 태어났고 두 아들은 대나무처럼 하루가 다르게 자랐다. 큰아이가 일곱 살 무렵, 새로운 주거 환경과 교육이 필요했던 나는 이사를 결정했다. 무엇보다 새집은 자연과 가까우면서도 도서관이 있으면 좋겠고, 편안한 사람들이 있는, 그러면서 학교가 집 가까이 있었으면 했다. 몇 날을 둘러보아도 어떤 아파트는 너무 비쌌고, 어떤 것은 너무 작았다. 그렇게 어렵게 발품을 팔아 찾아낸 곳이 대구 외곽의 어느 신도시에 있는 새 아파트였다. 한마디로 도심 속 시골 같은 분위기의 동네였다.
이제 막 개교한 초등학교는 전교생이 200명 남짓이었는데, 학교는 모든 것이 새로 시작하는 분위기였다. 첫 아이의 첫 학교, 첫 입학, 처음이라는 공통된 관심이 시너지를 낳았던 것인지, 그때 나는 첫 학부모 활동에도 꽤 열심이었다. 반 모임은 물론이고 도서관 봉사, 교내외 학교행사가 있으면 무조건 달려가서 참여했다. 나뿐 아니라 다른 학부모들도 그랬던 것 같았다. 그런 자리에서 느끼는 성취감과 동질감이 꽤 컸다.
아이가 입학하고 3월이 끝나갈 무렵, 한 번은 편하게 지내던 엄마들을 집에 초대했었다. ‘무슨 요리를 대접할까?’ 며칠을 고민한 끝에 생각해 낸 것이 샤부샤부였다. 나는 채소와 멸치, 다시마를 넣어 육수를 준비하고 배추, 청경채, 숙주, 버섯 등 갖가지 채소와 소고기, 생새우를 손질했다. 곁들이는 음식으로는 월남쌈과 게살 유부초밥, 샐러드를 준비했다. 모처럼 식탁 위에는 테이블 러너를 깔았고 새로 산 그릇이며 컵, 가스버너를 올려 세팅했다.
처음으로 우리 집에 모인 엄마들은 모두 잘 차려진 식탁을 보고 즐거워했다. 식탁에 앉아 보글보글 끓는 육수에 각자가 원하는 재료를 골라 넣으면서 분위기도 함께 달아올랐다. 모두가 젓가락을 들고 냄비 속으로 선홍빛 소고기를 넣어 살랑살랑 리듬을 탔다. 그러고는 각자의 취향에 맞게 땅콩소스나 피시소스, 칠리소스를 찍어 한입 가득 넣으면 탄성이 쏟아졌다. 그 맛있는 향기가 입 안 가득히 퍼져나갈 때마다 우리는 서로를 바라보며 웃었고, 시간 가는 줄 몰랐다.
큰아이 친구의 엄마이자 나의 벗이었던 우리 사이에는 서로 다른 삶의 배경과 나이 차이가 있었지만, 아이들과 함께한 시간을 통해 우리는 서로를 이해하고 소통하며 지냈다. 각각의 재료가 다른 속도로 익어가면서도 한 솥에서 조화로운 맛을 내는 샤부샤부처럼 ‘이것이 바로 인연이 아닐까’라는 생각을 하면서 순간들을 공유하며 지낸 것 같다.
그로부터 몇 년이 지난 지금, 이제 아이들은 자라서 중학교 2학년이 되었다. 사춘기를 지나가는 시점에 이르렀고, 엄마들도 각자의 길을 가고 있다. 지금은 서로의 사정으로 만남은 소원해졌지만, 샤부샤부를 함께 먹었던 그 당시를 생각하면 단순히 음식을 먹는 것 이상으로 서로를 공감할 수 있는 소중한 시간이었던 것 같다.
좋은 사람들과 순간을 나누며 함께한 그 시간이 있었기에, 오늘의 나는 삶에 더 많은 의미를 부여할 수 있지 않을까. 그날의 순간들이 요즘 같은 새 학기가 되면 아련히 떠오른다. 오늘도 자연스러운 흐름 속에서 모두가 행복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