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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로니의 글적글적 Jun 25. 2024

나의 글쓰기 모임은 비빔밥이다

그 맛 알지? 맛있는 음식이야기: 비빔밥




  비빔밥을 생각하면 그 안에 담긴 다양한 재료들이 떠오른다. 흰쌀밥 위에 놓인 시금치, 당근, 콩나물 같은 각양각색의 나물과 고기, 달걀, 거기에 매콤 달콤한 고추장까지. 이런 재료들은 제 각각 고유한 맛이 있지만, 조화롭게 섞이면 맛있는 요리가 된다. 우리 글쓰기 모임도 그렇다.     


  햇살이 따사로운 어느 수요일 오후, 나는 동아리방에 갔다. 구립 도서관 안에 있는 동아리방에서 일주일에 한 번 글쓰기 모임이 있기 때문이다. 우리 모임의 이름은 ‘글모꼬지’이다. ‘글 쓰는 사람들이 모인다’라는 뜻으로, 나는 6명의 회원과 함께 이 모임에서 2년째 글쓰기를 이어오고 있다.     


  나는 책상이 ㅁ자로 길게 놓여있는 동아리방에 들어서자 제일 먼저 불을 켜고 창문을 열었다. 수납장에서 믹스커피와 율무차, 옥수수수염차를 꺼내고, 커피포트에는 물을 가득 채워놓았다. 그러고 나서 작은 수첩과 볼펜을 책상 위에 올려놓고 의자에 앉아 회원들을 기다리고 있으면, ‘오늘은 어떤 이야기를 나눌까.’ 하는 생각에 가슴설렜다.     


  잠시 후, 모임의 막내인 드림님이 제일 먼저 동아리방으로 들어왔다. 그녀는 차분한 목소리로 인사한 뒤 자리에  앉아 노트북을 펼쳤다. 드림님은 요즘 말하는 MZ세대로, 어린이집과 초등학교에 다니는 두 자녀가 있다. 그녀는 우리 모임에서 계란프라이 같은 존재다. 겉은 노릇하게 익었지만 속은 반전 있는 반숙계란처럼, 겉모습은 어려 보여도 중요한 결정을 내릴 신중하고 생각이 깊은 편이다. 또 주위 사람에게 부드러운 어조로 칭찬과 격려의 말을 잘 건넨다. 그녀의 글 역시 타인의 감정에 대해 깊이 생각하게 했다.


  곧이어 핸즈님이 오셨다. 그는 우리 모임에서 최고 연장자로, 칠십 대 할아버지다. 사실 할아버지라는 단어가 어울리진 않는다. 드림님이 나이에 비해 성숙한 이미지라면, 핸즈님은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는 것을 증명하듯 젊게 사신다. 그는 180cm에 가까운 훤칠한 키에 준수한 외모를 지녔으며, 소싯적에는 많은 여성의 마음을 사로잡았다고 들었다. 그는 슬림핏 청바지를 즐겨 입고 요즘 유행하는 로퍼를 신으셨다. 오늘도 자신만의 독특한 스타일과 당당한 걸음으로 주변의 시선을 끌며 들어와 자리에 앉으셨다. 핸즈님의 글은 비빔밥에서 빠지지 않는 시금치나물 같다. 적당히 잘 삶아 푸릇푸릇하고 아삭한 식감으로 비빔밥에 포인트를 준 시금치나물처럼, 그의 글은 유쾌하며 자신만의 개성이 살아있다.   

 

  누군가 빼꼼히 문을 열었다. 이숲님이다.

그는 풍채가 좋은 육십 대 남성으로 대학에서 불문학을 전공하셨다고 다. 문학적 지식이 풍부할 뿐만 아니라 깊은 감성을 지녔다. 그래서인지 시, 수필, 희곡 등 장르를 불문하고 항상 독창적이고 감동적인 작품을 선보였다. 이숲님의 글은 비빔밥의 풍미 가득한 고기처럼 삶의 깊은 경험이 녹아있다. 그의 이야기를 들으면 마음에 오래 남았다.      


  그때,  휴대전화 벨이 울렸다. 이숲님이 전화를 받기 위해 밖으로 나가려고 문을 열자 진달래님과 동산님이 함께 동아리방으로 들어왔다. “모두 안녕하세요!” 활기찬 두 사람의 목소리가 방 안을 가득 채웠다. 여성 회원들께 실례가 될까 정확한 나이는 안 물어봤지만, 두 사람은 오십 대 후반이거나 육십 대 초반 정도인 듯했다. 자녀들이 모두 장성했다고 들었다.

 

  먼저, 진달래님은 비빔밥에서 쌀밥 같은 존재다. 밥은 모든 재료와 잘 어울리는 것처럼, 진달래님은 회원들의 이야기를 따뜻하게 들어주고 다양한 의견을 포용할 줄 안다. 그녀의 글은 사람의 마음을 어루만지며, 공감과 위로가 되었다.     


  동산님은 당근 볶음 같은 존재다. 그녀의 밝고 활기찬 분위기는 당근 볶음의 선명한 주황색과 닮았다. 동화를 즐겨 쓰는 동산님은 매번 기발한 상상력으로 우리를 놀라게 한다. 미국에서 오래 거주하셨기에 가끔 국어문법이 어색할 때도 있지만, 모르는 점에 대해 자신 있게 질문하고 배우는 모습은 그녀를 더욱 매력 있게 만드는 것 같다.     


  끝으로, 나는 사십대로 우리 모임을 이끌고 있다. 비빔밥의 고추장이라고 할까? 고추장은 다양한 재료들과 조화를 이루어 비빔밥에 감칠맛을 더하는 것처럼, 나는 사람들이  잘 어울리도록 노력하고 있다. 회원들과의 소통은 단톡방과 회의를 통해 개방적으로 이뤄지며, 중요한 결정이나 변화가 있을 때는 자연스러운 논의 끝에 합의한다. 아울러 톡 쏘는 매운맛처럼 예상치 못한 갈등이 생기면 균형 있는 중재자 역할까지.     




   이렇게 우리 글쓰기 모임에는 다양한 세대가 함께 모여 있다. 각자가 살아온 시대와 배경은 다르지만, 글쓰기에 대한 열정과 서로에게 힘이 되어주는 마음은 하나로 이어져 있다. 마치 비빔밥 속 각양각색의 재료들처럼 말이다.


  서로 다른 세대가 함께 모여 글을 쓰고, 서로의 글을 읽으며 의견을 나누는 과정은 비빔밥을 비비는 과정과도 같다. 다채로운 재료들이 모여 조화를 이루는 비빔밥처럼, 젊은 세대의 활기와 노년 세대의 깊이가 만난 우리 글쓰기 모임은, 단순한 취미 활동을 넘어 세대를 아우르는 연결고리를 만들어가고 있다.

  이 모임이 계속되는 한, 한 그릇의 맛있는 비빔밥이 완성되어 가듯 우리는 서로에게 배우며 더욱 성장해 갈 것이다.



  

  조금 전, 전화벨이 울려 밖으로 나가셨던 이숲님이  통화를 끝내고 다시 동아리방으로 들어오셨다. 이리하여 6명의 모든 회원이 한자리에 다 모였다. 이제, 각자가 써온 글을 낭독할 시간이 되었다.     



© nikolay_smeh, 출처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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