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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로니의글적글적 Oct 28. 2024

떡볶이에 푹 빠지다

그 맛 알지? 맛있는 음식이야기: 떡볶이




  내가 처음 떡볶이를 사 먹어 본 것은 초등학교 4학년 무렵, 주산학원 옆에 있는 분식집에서였다. 우리 집은 학원이 있는 읍내에서 차로 약 20분 거리에 있어서, 수업이 끝난 후에는 학원 차를 기다리며 몇십 분을 보내야 했다. 그 시간 동안 철판 위에서 보글보글 끓어오르는 떡볶이의 향이 배고픈 나를 유혹하곤 했다. 

    

  군것질이라고 해봐야 가끔 학교 앞 문방구에서 50원짜리 ‘먹쇠바’나 ‘쌍쌍바’를 사 먹는 정도였으니, 읍내에만 있는 분식집의 떡볶이는 그야말로 그림의 떡이었다. 그래서인지 떡볶이에 대한 나의 갈망은 점점 커졌고, 주산학원에 갈 때마다 떡볶이에서 눈을 뗄 수 없었다. 언젠가 꼭 사 먹겠다는 다짐도 함께.    

 

  그러던 어느 날, 마침내 조금씩 모은 용돈으로 떡볶이를 사 먹을 기회가 왔다. 나는 학원 차가 떠나기 전에 먹어야 한다는 생각에 마음이 급했다. 두 살 터울인 언니와 함께 서둘러 분식집 문을 열고 들어가 주문을 했다. 우리는 설레는 마음으로 창가 쪽에 있는 긴 테이블에 나란히 앉아, 철판 위에서 끓어오르는 빨간 국물을 흘끔흘끔 지켜보며, 떡볶이가 빨리 나오기를 기다렸다. 


  조금 뒤, 양배추가 듬뿍 들어간 연주황색 떡볶이가 내 앞에 놓였다. 철판에서 갓 떠낸 떡볶이에서는 하얀 김이 모락모락 피어올랐고, 얇게 채 썬 양배추가 가득 들어 있었다. 양배추에서 퍼져 나오는 달큰하고 매콤한 고추장 향이 침샘을 자극했다. 나는 서둘러 포크를 집어 들고 떡을 찍었다.


  떡을 한 입 넣고 오물거리던 순간, 그런데 웬걸. 달콤하고 진할 거라는 내 예상과 전혀 달랐다. 떡은 쫄깃했지만, 국물은 지나치게 묽어서 밍밍했다. 고추장 양념이 제대로 배지 않아, 뭔가 빠진 듯 허전했다. 씹을수록 입안에 남는 건 아삭한 양배추와 혀끝을 얼얼하게 하는 매운맛뿐이었다. 그렇게 난생처음 사 먹어본 나의 첫 떡볶이는 기대와 달리 그저 배를 채우는 걸로 만족해야 했다. 그 후로 떡볶이는 나에게 더 이상 맛있는 음식이 아니었고, 일부러 찾아 먹는 일도 없었다.    

 



  오랜 시간이 흐르고 나는 대구에서 직장생활을 시작하게 되었다. 어느 날, 선후배들과 함께 휴게실에서 간식을 먹게 되었는데, 그날 간식 메뉴는 하필 내가 그다지 좋아하지 않던 떡볶이였다. 누군가 비닐봉지를 열자 순간 강렬한 매운 향이 코끝을 찔렀다. 나는 별다른 기대 없이 젓가락만 들고 있었는데, 어릴 적에 먹었던 밋밋한 떡볶이와는 뭔가 다른 느낌이었다.      


  투명 비닐봉지 속의 떡볶이는 짙은 붉은빛을 띠고 있었고, 듬성듬성 들어간 양배추 외에는 별 재료도 없었다. 겉보기엔 그다지 먹음직스러워 보이지 않았는데도 주변 사람들은 모두 열심히 젓가락을 움직이며 먹기 시작했다. 나는 한참 후에야 후배의 떡볶이 찬양에 못 이겨 마지못해 한입을 떼었다. 무심코 입에 넣은 떡 하나가 첫 입부터 입 안을 얼얼하게 만들었다. 단맛은 전혀 없고, 마치 후추 한 통을 모두 쏟아 넣은 듯한 맛이었다.    

 

  밀떡은 쫀득쫀득했다. 분명 내가 생각했던 떡볶이와는 완전히 다른 맛이었다. 한 입, 두 입 먹을수록 그 자극적인 양념 맛이 묘하게 젓가락을 당기는듯했다. 떡볶이를 먹은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콧등에 땀이 송골송골 맺히고, 두피가 미치도록 가려울 지경이었다. 그래도 희한하게 입은 계속해서 떡볶이를 찾고 있었다. 나는 쿨피스를 연신 들이켜며 매운맛과 한판 싸우듯 먹었지만, 고통조차도 묘하게 그 떡볶이의 매력처럼 느껴졌다.  

    

  그 후로 나는 떡볶이에 푹 빠졌다. 시장에서 먹는 소박한 떡볶이부터, 분식집의 전통적인 맛, 그리고 퓨전 스타일로 재탄생한 떡볶이까지. 신참떡볶이, 윤옥연할매떡볶이, 궁전떡볶이, 달고떡볶이, 신전떡볶이, 청년다방, 중앙떡볶이, 엽떡, 배떡, 이소떡, 빨간지붕, 응급실떡볶이 등등. 수많은 떡볶이를 맛보러 다니며 나의 떡볶이 여정은 끝날 줄 몰랐다.     




  돌이켜보면, 20년 전 처음 맛본 ‘할매떡볶이’는 단순히 새로운 맛 경험을 넘어, 생각을 전환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일깨워주었다. 어린 시절, ‘모든 떡볶이는 밋밋하다’라는 선입견 때문에 오랫동안 외면했던 음식이었지만, 덕분에 이제는 누구보다도 떡볶이를 즐기게 되었다. 떡볶이 하나에도 다양한 맛과 스타일이 존재한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이다. 

  한때는 별로라고 여겼던 것이, 어느 순간 전혀 다른 매력으로 다가오기도 하는 것처럼, 우리 삶의 많은 순간도 시선을 달리하면, 예상치 못한 기쁨을 찾을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오늘도 나는, 후추가 듬뿍 뿌려진 매콤한 떡볶이를 주문하며 다시 한번 그 매력에 흠뻑 빠져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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