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대중들은 '범죄'스릴러 창작물에 열광하는가
1. 문제제기
영화 '살인마 잭의 집(2019)'을 보았다. 상당히 잔혹한 스릴러 영화였다. 평을 보아하니, 해외에서도 상당한 문제작으로 꼽힌 영화더라. 내가 느꼈던 대로, <살인마 잭의 집>은 잔혹도와 아동 살인 묘사 등으로 큰 비판을 받은 작품이었다.
범죄 스릴러 장르의 '선넘는 장면 묘사'논쟁은 이뿐만이 아니다. 국내 영화인 'VIP(2017)'은 개봉 당시, 불필요하게 긴 범죄 묘사로 인해 온갖 갑론을박과 논란이 거세었다. 리뷰칸에는 소위 말하는 '1점 테러'로 도배가 되기도 했다.
위에서 극단적 예시로 든 두 영화가 아니더라도, 사실 보통의 범죄물은 그리 건전하지 않은 것이 정석이자 필연적인 현상이다. 원론적으로 생각하면 흥미를 유발하는 창작물의 소재로 범죄를 사용한다는 자체가 사회적으로든 인간적으로든 긍정적인 발상은 아니기 때문이다.
나는 그러한 논리로 볼 때 범죄물, 특히 범죄스릴러 장르의 영화가 관람객을 이끌 수 있는 이유는 대체 무엇인지, 흥행 요인에는 무엇이 있는지 알아보고 싶어졌다.
그래서 이번 글을 통해 영화 <나우유씨미:마술사기단(이하 약칭 '나우유씨미')>을 통해 1) 범죄스릴러 장르의 특성을 알아보고 2) 그 장르의 영화가 사람들의 흥미를 유발할 수 있는 이유를 분석해보고자 한다.
2. 영화 <나우유씨미>
영화 '나우유씨미' 는 어느 무명 마술사 4명에게 익명 초대장이 도착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초대를 받고 어느새 한자리에 모이게 된 4명의 마술사들. 그들은 그렇게 베일에 싸여진 마술사 집단 '디 아이'에 들어가기 위해 ‘포 호스맨’이라는 마술팀을 결성한다.
몇년 후, 이들은 어느새 라스베이거스 대형 마술쇼에서 파리 은행의 비자금을 모두 터는 쇼를 성공하고 유명해진 인물이다. 하지만 그와 동시에 첫번째 위기를 맞기도 하는데, 바로 사기와 절도 혐의로 체포된 것. 만만치 않은 사건에 일단 잡아들이긴 했지만, FBI 요원 딜런은 마술로 은행을 털었다는 소식을 듣고 황당해한다. 하지만 이들이 은행을 직접 털었다는 증거가 없기에 이들을 증거불충분으로 풀어주는 딜런. 그리고는 마술 비판가 ‘테디어스 브래들리’를 섭외한다. 하지만 그를 비웃는 것인지 포호스맨은 점점 더 대담한 마술을 하기 시작하고, 그와 같이 FBI 또한 이들을 잡기 위해 더욱 더 혈안이 되어간다.
끝까지 잡힐듯 잡히지 않으며 포 호스맨은 아슬아슬하게 결말까지 자신들의 '마술사기'를 이어나간다. 그렇게 마지막 결말부, 그들은 '디 아이'의 마지막 지시대로 센트럴 파크 나무를 찾아가 '디 아이'에게 받은 트럼프 카드를 갖다 대는데, 난대없이 그 앞의 회전목마가 천천히 작동하기 시작한다. 이게 무슨 상황인지, 지금까지 대체 뭐였는지, 우리를 조종해온 것은 무엇이었는지 혼란해하는 포호스맨. 그때 모든 일의 흑막으로서 딜런이 등장한다. 이 장면에서 딜런은 '디아이'의 일원이자 포호스맨의 모든 사기행각을 지시해온 인물로 드러난다.
사실 마술 비판가 브래들리가 지목했다가 마술사로서 피해자가 되버린 한 마술사의 아들이었던 딜런. 그래서 그는 유명마술사가 되고 싶은 4명의 인물을 직접 골라 조종해왔던 것이다. 지금까지 그저 스케일 큰 쇼인줄만 알았던 포호스맨의 대형 마술 사기행각들은, 모두 브래들리와 관련있는 주변 환경을 무너뜨리기 위한 장치들... 결국 브래들리는 포호스맨이 저지른 대형 마술속임수를 통해 누명을 쓰며 감옥에 갇히고, 딜런과 포호스맨은 유유히 사라진다.
나름대로 흥행에 성공한 작품이지만, 이러한 내용을 전개해가며 감독은 '화려하고 스케일 좋은 마술 연출'이라는 기술에 치중해 장르면에서 몇가지 단점들을 만들어낸다. 억지 설정과 억지 반전이라는 몇몇 스토리적의 문제가 그 예시이다. 작 중 비밀스런 마술 조직 '디 아이'는 오프닝에서 역사서 같은 도서로 잠깐 언급된다. 고대 이집트에서 이어져 오고 있다는 게 바로 그 '디 아이'의 설정이다. 별다른 이유도 없이 뜬금없는 이집트, 그것도 고대 이집트에서 마술사들의 비밀 결사 점조직이 내려오고 있다는 황당한 설정부터 시작해 몇가지 억지 스토리는 계속해서 튀어나온다. 갑자기 결말에서 후루룩 설명되버린 억지스러운 반전과, 범죄장르에서 굳이 필요가 없는 딜런 그리고 여성 동료와의 뜬금없는 러브라인이 장르의 산통을 기가 막히게 깨버린 것이다. 딜런이 이 모든 사기극의 흑막인 걸 알아챘음에도 사랑했기 때문에 눈감아 줬었다는 내용은 너무 개연성 없이 튀어나와 납득하기 힘든 부분이다.
이러한 억지 설정의 제일 큰 문제는 장르 특유의 분위기를 흐리고 희석되게 하는 것이다. 이 영화는 범죄물이고 동시에 그 범죄에서 느껴지는 스릴러를 지향하고 있지만 마술의 스케일과 그 트릭을 설명하는데 급급한 나머지 영화의 장르를 미처 잡지 못하고 있다. 마술을 화려하게 보여주는 데 너무 큰 힘을 써버린 것이 탈이라면 탈이다. 덕분에 이 영화는 오락인지, 액션인지, 범죄인지, 주 소재와 분위기가 분명치 않아졌다.
마술사들(포호스맨)과 마술 기술 그 자체에 너무 많은 역할을 몰아줬다는 느낌도 든다. 그래서 사실 1편 전체의 포호스맨 행적이 거의 전부가 '딜런' 의 복수극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복수극이라는 느낌이 잘 들지 않는다. 극 내내 마술 소재의 블록버스터 같은 기분으로 흥미진진하게 봐왔는데, 사실 이 모든 건 딜런이 죽은 아버지를 위한 복수극이었다고 결말이 보여지면 너무 반전만을 위한 반전 같다는 평도 있다. 반전을 포기하더라도 플롯을 바꿔서 딜런이 복수극을 꾸미고 있다는 장면부터 시작해 어두운 복수극 분위기를 처음부터 끝까지 끌고 갔다면 마술, 사기, 범죄, 스릴러가 적절히 꾸며져 범죄스릴러라는 장르가 더 확실해졌을 것 같다는 생각도 든다.
하지만 이 영화가 범죄물, 특히범죄스릴러 장르로서 장점이 없는 것은 아니다.
애초에 제작사로부터 이 영화에게 요구된 것은 꽤나 많은 편이다. 스케일 큰 마술쇼도 있어야 되고, 그 마술의 트릭도 설명해야 하고, 관객들도 속여야 되고, 추격씬도 있어야 되고, 액션씬도 있어야 하며, 그 와중에 반전, 복수극, 캐릭터 서사도 갖추려 하고 있다.
하지만 많은 얘기가 있는 것 치곤 영화 구조는 그리 복잡하지 않다. 빠르고 속시원한 전개로 끌고, 화려한 연출과 멋진 음악으로 덮어 어떻게든 상기된 단점을 가린다.
영화는 마술=고도의 속임수라는 식의 늬앙스를 강하게 풍기면서도 작 중 포호스맨의 행적을 그저 막연한 사기로만 뭉뚱그려 표현하지는 않는다. 예를 들어 상식적으로 볼땐 주인공이 사회질서를 어지럽히는 인물이라면 관객은 그(들)에게 이입하기 쉽지 않을 것 같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런 인물에게도 흥미를 느낄 수 만드는 것이 스릴러 영화의 특징이다. 주인공 일당도 분명 사기단이지만 보험 사기 후원자를 털어먹거나 은행의 돈을 훔쳐간다는 설정은 꽤나 많은 이들의 선망이기 때문이다.
범죄 스릴러 영화는 이렇게 범죄 행각을 흥미롭게 표현한다. 그럴려면 범죄자 인물의 캐릭터성이 매우 중요하다. <나우유씨미>는 상술한대로 주인공 일당의 마술을 그저 사기로만 뭉뚱그리지 않고 각각의 캐릭터성이 확실하게 보이게 표현했다. 다니엘은 바꿔치기, 매릿은 최면과 독심술, 헨리는 탈출마술, 잭은 카드 마술 등.
여기까지만 보면 스릴러라기 보다는 오락 영화가 아니냐는 질문도 생길 법 하지만, 의외로 스릴러적인 면모에도 충실하다. 물론 마술이란 오락을 접목시켜 다른 범죄물과는 다르게 어두운 분위기는 아니다. 그러나 극전체에서 마술이라는 속임수가 들킬 듯 말 듯 한 위태로운 줄타기, 스케일 큰 사기행각, 아슬아슬한 추격씬, 잘 만든 액션씬과 나름의 반전, 내막을 지닌 캐릭터의 서사 등이 스릴러라는 장르를 잘 채워준다.
그런 맥락에서 이 영화가 일반적인 범죄스릴러물에서 나오는 피와 폭력 없이 새로운 느낌의 스릴을 선사함으로써 범죄물 쪽에서의 장르를 재정립할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마지막으로 이 영화의 가장 큰 장점을 꼽자면 역시 범죄스릴러라는 장르에 마술이라는 소재를 결합했다는 점과 스케일 좋은 마술 연출이다.
영화 '나우유씨미'에는 지루해질만 하면 스케일 큰 대형 마술사기쇼가 한번씩 등장한다. 사실 소소한 몇몇 기술은 현실성이 없다고 지적 받기도 했는데, 사실 스크린을 통해 보는 매체 특성 상 대다수의 관객들은 굳이 실제 기술따윈 크게 신경쓰지 않는다. 중요한 건 영상미와 장면 연출이다. 그리고 극의 중심이 되는 대다수의 굵직한 마술쇼는 영화 내에서 (주로 모건프리먼의 입을 통해) 트릭이 차근차근 설명되기도 해 더욱 설득력있고 흥미롭게 다가온다.
스릴러 장르의 또 다른 요소라고도 볼 수 있는 액션과 추격씬에도 마술이 가미되어 있는 것도 영화의 중요점이다. 예를들어 딜런과 잭의 1대1 매칭 액션씬에서도 카드 손기술과 목소리 성대모사로 FBI를 따돌리는 장면이 있다. 중반부 자동차 추격씬에서도 탑승자(잭) 바꿔치기로 탈출한 잭을 죽은 것처럼 연출하는 장면도 그 예시이다.
3. 결론, 왜 사람들은 이런 범죄물을 소비하는가.
그렇다면, 사람들은 왜 이런 '범죄' 창작물을 즐기는가. 이 영화만의 표면적인 영상미와 소재 이야기는 잠시 뒤로 하고, 다시 원론적인 주제로 돌아가보자. 내가 나름대로 도출해낸 이유는
1) 분명 이 사회에 존재하지만 평범한 일상 속에는 보기 흔치 않은 대상에 대한 호기심.
2) 범죄는 나쁜 행위이지만 또 다른 부조리와 악행위를 처단하는 도구로 쓰여진다면, 거기에서 오는 대리만족감.
이 두가지이다.
영화 '나우유씨미'의 마술사기단 또한 어떻게보면 사회질서를 흐트러뜨리는 범죄집단이다. 하지만 보험 사기 후원자의 은행잔고를 털거나, 한 직업을 무너뜨리는 사람에게 복수한다는 서사는 사람들에게 범죄를 납득시키기에 충분하다. 그렇기에 영화 '나우유씨미'는 내가 도출한 1, 2번 이유에 모두 해당한다고 볼 수 있다.
지금까지 몇몇 마술장면의 현실성이나 스토리 개연성 면에서 비판을 받기도 했었지만, 범죄스릴러 장르를 크게 벗어나지 않는 선에서 지루할 틈없는 화려한 스케일과 빠른 전개가 돋보인다는 것이 장점으로 꼽힌다.
보통 마술같은 오락 느낌이 나는 소재는 범죄스릴러에 적합하지 않다고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마술은 사람이 할 수 있는 '기술'의 영역이므로 허무맹랑한 '마법'같이 현실성 없는 판타지 요소과는 구분된다. 그렇기에 충분히 범죄 스릴러와 엮을 수 있고 그러한 조합이 대중들에겐 신선한 조합으로 다가왔을거라 생각한다.
범죄스릴러 영화가 마술과 같이 생소하면서 오히려 상반된 것 같아 보일정도로 독특하기도 한 소재를 택한다면, 그 소재와 스릴러의 연결점을 잘 연결짓는 것이 중요하다. 그 점의 선례가 바로 '나우유씨미'이기도 하다. '나우유씨미' 영화처럼 범죄와 소재의 연결점을 찾는다면 충분히 범죄스릴러로서의 장르를 잘 살리면서 대중들의 관심을 이끄는 데에도 성공할 수 있을 것이다. 영화 나우유씨미를 선례로 삼아 범죄스릴러 장르가 좀 더 대중들의 흥미를 더 이끌 수 있길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