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어깨를 감싸주는 누구도 없다.
#5 아이는 아빠가 키우는 게 좋지 않을까요?
이혼 후 지루한 일상에 용기를 내서 모임에 나가보았다.
아이를 혼자 키우는 엄마 모임이었다. 사람은 자신과 비슷한 상황에 놓여 공감대가 비슷한 곳에서 이상하게도 위안을 얻는다.
나 또한 그럴 거라 생각하고 다섯 남짓 되는 오픈 카톡방에 들어가 이야기를 풀어놓고, "같은 지역이니 한 번 모여보자".라는 모임장의 말에 한참 고민하다가 나가보았다.
온라인으로 사람을 알게 된 후 실제로 내 모습을 보인다는 건, 처음 본 사람에게 민 낯을 보여주는 것보다 더 부끄럽다. 어떠한 사람이 나올 지도 미지수인데, 내 모습을 그대로 보여준다는 것은 누구나 힘든 일이겠지만, 나는 더욱더 그랬다.
그래도 아이의 친구도 만들어 줄 겸, 용기 내 찾아간 곳은 집 근처 카페였다.
아이를 데려온 엄마들도 있었고, 혼자 나온 엄마도 있었다.
만나기 전, ‘저, 사실 휠체어를 타요.’라는 말은 했어야 했지만 용기가 1g 부족해하지 못하고 자리에 나가게 되었다.
한 엄마는 날 보자마자, “아이 혼자 케어하기 힘드시겠어요.”라고 했고,
나는 사람 좋은 표정을 지으며 “엄마들은 다 힘들죠.”라고 말하며 뒷면의 표정을 숨기려 쓴 커피의 잔을 들어본다.
그리고 일상적인 대화, 짐짓 짧은 시간 후에 오는 나에 대한 질문,
“정말 너무하네요.”
이 말이 기억이 난다. 그녀는 눈썹을 찌푸리며 나에게 말했다.
“어떻게 휠체어 탄 엄마에게 아이를 떠맡기고.. 면접교섭은 하나요?”
속으로 한숨을 크게 쉬어낸다.
‘괜히 왔다’라는 생각을 열 번쯤 하지만, 자리를 박차고 나갈 순 없었다. 그 정도의 패기가 있었다면 나는 이혼하러 간 날, 전 남편 뺨을 때렸을 것이다.
“아뇨. 단 한 번도요." 짐짓 아무렇지 않게 대답한다.
안타깝다는 반응들,
그리고 또 다른 질문, 이 말은 나는 평생 잊지 못할 거 같다.
“아이는 아빠가 키우는 게 좋지 않을까요?”
개중 말이 가장 많은 엄마가 이 말을 내뱉는 순간, 보이지 않는 공기의 색이 흐리게 변하는 것 같았다.
그 말이 나에게 정곡으로 꽂혀버린 건, 나도 생각했던 말이었을까?
같이 나온 아이들의 재잘거림이 내 귓가에 거슬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나는 전동 휠체어 전원을 켜곤 예의 웃음을 지었다.
“이만 가볼게요. 아이를 친정엄마한테 맡기고 와서요.”
두 번은 보지 않을 사람들이었다. 대답을 들을 필요도 동의를 구할 필요도 없었다.
이런 일로 상처받고 도망가는 게 ‘어른스럽지 못하다.’라며 손가락질한다 해도 나는 다른 방법을 알 수 없었다.
아니다.
아무렇지 않게 대답을 할 수도 있었다. "애 아빠가 애를 원하지 않아요."라는 말을 해서 동정표를 더 구할 수도 있겠지. 하지만 내 이야기를 다과 삼아 한두 시간을 이들과 보내고 씁쓸하게 돌아서고 싶진 않았다.
끊었던 담배가 생각이 났다. 이혼하고도 피지 않았던 담배.
카페를 나오자마자 핸드폰 잠금화면을 열었다.
그리고 속해 있던 단체 카톡방에서 나가기를 눌렀다. 망설임은 없었다.
내가 속해야 하는 곳, 어딘지 모르겠으나 여긴 아니라는 확신이 들었다.
드라마나 영화를 보면 이혼한 여주인공 옆에 꼭 세 명의 등장인물이 있다.
하나는 절친한 동성친구, 같은 동네나 혹은 여주인공과 아이와 같이 살기도 한다.
아이는 그 친구를 잘 따르고 여주인공이 힘들 때면 까만 봉지에 안주를 담아 맥주를 흔들어 여주인공을 위로해주는 역할.
그리고 씩씩한 여주인공을 흠모하는 미혼의 잘생긴 남자 주인공, 여주인공이 불합리한 일을 당할 때는 어김없이 나타나 어깨를 감싸준다.
마지막 한 명은 악역이다. 악역이 있어야 영화가 된다. 고난과 역경이 있어야 사랑이 더 두터워지는 법.
진부한 스토리는 여주인공과 남주인공이 결혼을 하는 결말로 매듭지어지는데, 요즘은 다르다.
남주인공은 여주인공 곁을 지키고 같이 살고 싶어 하나, 여주인공은 자기만의 사업을 한다던가, 아이와 같이 유학을 간다던가, 자기만의 인생을 개척해나가는 씩씩한 결말이 많다.
현실에 내 어깨를 감싸줄 사람은 없다. 내 인생에 남자 주인공 따위 , 힘들 때 맥주를 사 오는 친구도 없었다.
나는 그저 집으로 돌아와 밀린 설거지를 하며, 고양이 밥을 주며, 시간을 견딜 뿐이었다.
. 돌아오는 길 쓸쓸함에 동네를 둘러보다가 해 질 무렵을 찍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