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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승철 Nov 18. 2024

<28. 늘어만 가는 나만의 '필독서' 목록!>

책과 결혼했습니다!

<28. 늘어만 가는 나만의 '필독서' 목록!>


책을 많이 읽으면 읽을수록 읽어야 할 책 목록은 줄지 않고 오히려 늘어납니다. 왜 그럴까요? 아는 것이 많으면 그만큼 모르는 것이 많아지는 것과 같은 논리입니다. 정신적 창고에는 많은 내용이 쌓이는데 그러면 그럴수록 더 많은 것을 원하게 되니, 고대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에리식톤을 닮았네요. 아무리 먹어도 허기를 느끼는 에리식톤은 자신의 몸까지 뜯어 먹은 후 이빨만 남아서 딱딱거릴 정도입니다. 심해지는 지적 허기는 약간의 고통을 수반하기는 하지만 그것이 '나쁜' 고통은 아니고, 지적 유희나 허세를 위한 '좋은' 고통입니다. 견뎌내야 하는 일이 아니라 기꺼이 맞아들이며 누릴 수 있는 것입니다. 


오만하고 불경스러운 부자인 에리식톤과 달리, 지적 허세는 겸손이라는 개념을 탑재하고 있습니다. 독서의 깊이가 깊어지고 폭이 넓어질수록 자신의 부족함을 느끼기 때문에, 아무리 책을 많이 읽어도 자신의 한계는 분명하게 다가오기 때문에 마냥 허세를 부릴 수는 없는 노릇이지요. 제가 읽기 위해 고르는 책은 주로 고전으로 인정받는 책을 필두로 공공 도서관이나 학술단체 및 대학교 같은 곳에서 추천하는 책과 함께 중고등학교 교과서에 실린 연계 도서와 언론사에서 서평 전문기자들이 추천하는 책입니다만, 더욱 읽기를 유혹하는 책은 바로 책을 읽으면서 발견되는 저자가 거론하거나 인용하는 또는 추천하는 책입니다. 


책 내용 중에서 발견한 책을 선택해서 읽는 '꼬리에 꼬리를 무는' 독서로 인한 가장 큰 즐거움은 좋은 책을 새롭게 발견했다는 기쁨이지만, 약간의 슬픔은 너무 많은 책이 독서 목록에 올라 감당하는 데에 따른 고통입니다. 경우에 따라서는 '배부른 고통'도 있을 수 있겠죠? 세상에는 좋은 책이 정말 많습니다. 읽어도 읽어도 끝이 없음은 물론, 평생 좋은 책 더미에 깔려(?) 살아야 한다니 이보다 더 행복한 고민은 없을 것 같습니다만, 시간은 부족하고 읽어야 할 책 목록이 빚더미의 이자처럼 늘어난다는 건 쾌락을 동반한 고통임은 분명합니다. '거룩한 고통'이라고 좀 순화해서 표현하면 고통의 본래 모습이 좀 사라질까요? 

너무나 무거워져 부담스러운 필독서 목록을 보다가 안 되겠다 싶은 마음에 추리고 빼는 정리를 시도한 적도 많습니다. 이 책은 이래서 빼고 저 책은 저래서 빼고, 그렇게 정리를 하면 목록의 무게가 조금은 가벼워집니다. 하지만 그런 상태는 오래가지 않습니다. 고전이나 명저 같은 훌륭한 책을 만나면 어쩔 수 없이 호박이 넝쿨째 굴러 들어오는 것처럼 도서 목록에 새로운 책들이 마구 달려버립니다. '해 아래 새것은 없다'라는 말이 있듯이, 좋은 책은 그냥 하늘에서 떨어지지 않습니다. 명저의 저자들 역시 자신이 읽은 좋은 책 속에서 영감을 받아 글을 쓰기 때문입니다. 목록에 책을 추가할 때에는 나중을 생각하지 않죠. 땅을 파다가 보석을 발견한 것처럼 책을 읽을 때 새롭게 발견한 책은 무조건 추가하고 보는데, 나중에야 후회를 하니 사람 마음의 간사함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미처 다 읽을 수 없는 게 분명한데도 일단은 목록에 올리고 봅니다. 오늘까지 먹고 내일부터 다이어트하는 것과 비슷한가요?


독서를 통해 이전에는 알지 못했던 좋은 책을 발견하는 일은 마치 어릴 적에 땅을 파서 얻은 '신주'(일본 말, 우리 말로는 황동)를 찾는 일과 비슷합니다. 저의 초등학교 시절(10970년대)에 잠깐 유행이었습니다만, 한나절 혹은 하루 종일 땅을 한 10~20센티미터 정도 파다 보면 신주 조각이 발견되고, 그것들을 모아서 엿장수에게 주면 돈을 받거나 엿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심봤다' 정도까지는 아니지만, 그만큼 좋은 책을 새롭게 발견하는 일은 흙 속에서 신주를 발견하는 일과 다름없습니다.


필독서 목록을 줄이는 방법은 저의 지적 욕망이나 허세를 줄이면 간단히 해결될 문제입니다만, 그게 그렇게 쉽지 않네요. 읽지도 못할 책을 잔뜩 쌓아놓고 있는 형편이니, 제가 생각해도 참 미련하고 어리석은 짓을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지금보다 독서 내공 또는 지적인 능력이 성장한다면 아마도 필독서 목록은 좀 가벼워지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글 읽는 능력은 물론 허세도 시간을 이길 수는 없으니까요. '마음 챙김'에 의한 욕망과 지적 허영까지 다스릴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짐이라면 짐일 수 있는 필독서 목록의 감소를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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