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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승철 Jul 27. 2024

<① 나를 찾는 과정>

책과 결혼했습니다

<책과 결혼했습니다 - ① 나를 찾는 과정>


초등학교 다닐 때 친한 사촌들이 있어 자주 들렀던 큰집에서부터 우연찮게 시작된 책 읽기의 여정에서 만난 수많은 책, 전 그 책들과 결혼했습니다. 한 40년 정도 사귀다가 결혼의 정확한 시기는 2014년 4월 경이었죠. 사귀던 시간을 포함해 50여 년 동안 책과 함께 살면서 점 하나에서 시작되어 점점 희미하게나마 형태가 갖추어지고, 그런 인상들이 하나씩 혹은 개체를 구별할 수 없게 살갗에 멍이 드는 것처럼 피어오르며 수없이 많은 관념 덩어리가 된 사실이 있습니다. 이제부터 그 결혼 생활을 고백하려 합니다. 결혼 당사자인 부부가 늘 그렇듯 책과의 결혼 생활에서도 다양한 이야기가 존재합니다. 사랑하고 미워하고 정을 붙였다 떼고 한동안 별거했다가 다시 보고, 그야말로 영화 한 편이나 소설 한 권은 거뜬히 나올 만한 내용입니다. 


삶에 정답이 없듯, 책과의 결혼 생활에도 정답은 없었습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전하는 상식 같은 이론도 각 개인에 따라 모두 달리 받아들일 수밖에 없죠. 그런 점을 고려한다면 총론은 비슷하되 각론은 전혀 다른 책과의 결혼 생활이 될 듯합니다. 요즘은 결혼이 삶의 의무로부터 벗어나는 과도기인 것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결혼을 해도 자녀를 낳지 않는 부부도 점점 늘어가는 현실이지요. 그만큼 시대와 세대에 따라 진리나 진실의 모습은 변해갑니다. 인공지능의 발달과 동영상의 대세 등극은 점점 책과 독서의 영역을 쪼그라들게 하면서 이제는 왜 책을 읽어야 하는지에 대한 의문을 품는 사람들도 많아졌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책 읽기는 정신적 유희를 비롯해 여러 가지 삶의 유익을 선사합니다. 


책을 가까이하는 시간이 늘어나면서 제일 두드러진 변화는 내가 누구인지에 대해 고민하고 숙고하는 과정이 생겼다는 것입니다. 내가 뭘 좋아하는지, 무엇을 할 때 가장 즐겁고 행복해하는지, 무엇을 잘 못하는지 등에 대한 감이 잡히고, 더불어 나의 한계는 어디까지인지 알겠지만 거기에서 멈추지 않고 꾸준히 한계를 확장하고자 하는 욕구도 생겨납니다. 나의 부족함을 솔직하게 인정하면서 실망과 함께 넘어졌다가, 그 한계를 이겨내려고 다시 일어나는 과정이 반복됩니다. 수많은 시행착오 속에서 나침반이 북극과 남극을 가리키기 전에 잠시 흔들리는 것처럼 내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잡습니다. 그 어떤 경우에도 최선은 아직 도달하지 못했다는 자각은 평생 나를 찾아가야만 하는 운명처럼 느껴집니다만, 한편으로는 그런 삶의 목적이 있다는 것이 오히려 동기부여가 되어 살아가는 데 힘을 얻습니다.  


책을 읽기 때문에 평생 나 스스로 공부와 학습을 멈추지 않겠다는 학구적 의지와 자세만큼은 확실하게  갖추어졌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습니다. 세상은 넓고 읽을 책은 너무너무 많아서 단지 그 이유 때문에 행복하다는 것도, 그것이 일종의 삶의 쾌락으로 여겨진다는 것도 사실입니다. 다른 종류의 유희가 찾아온다면 아마도 그것과 독서를 병행할지는 몰라도 그 유희 때문에 책 읽기를 버리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 이미 루비콘 강을 건넌 것처럼 이제는 책과 결혼하기 전으로 돌아갈 수 없습니다. 즉, 책과의 이혼은 없습니다. '두 집' 살림도 불가하지만, 세상 일은 또 모르니 장담할 수는 없겠지만, 책만큼 좋은 게 또 어디 있을지 상상하기 어렵습니다. 


책을 많이 읽어서 사고력이나 창의력이 놀라울 정도로 강해졌다는 생각은 들지 않습니다. 박학다식하다는 말 역시 더러 듣기는 했지만, 오히려 너무 여러 가지에 대해서 모르는 게 더 많아졌다는 느낌이 드는 게 사실입니다. 지식이 쌓이면 쌓일수록 지식의 질은 만족하지 못하겠고, 아는 것이 많으면 많아질수록 모르는 건 더 많아졌다는 게 솔직한 심정이고요. 그래서 더욱 독서에 빠져 지식 탐구의 끈을 놓을 수가 없습니다. A4 용지를 펴놓고 지면 전체가 세상이고 내가 아는 건 작은 동그라미로 그릴 수 있는데, 책을 많이 읽은 덕분에 아는 게 많아져 그 동그라미가 좀 커졌다면 원주는 늘어났고, 그 늘어난 원 둘레와 접하는 부분은 모르는 영역이니 오히려 모르는 건 더 많아진 셈이지요. 


아직도 내가 누구인지에 대해 아는 것보다는 모르는 게 훨씬 많습니다. 그러나, 조금씩 알아가고 있다는 사실 그 자체가 큰 기쁨이요 뿌듯함입니다. 독서에 대한 수많은 명언들에 대해서도 일단 수긍은 할 수 있지만, 그렇다고 누구에게나 독서가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책을 읽거나 읽지 않거나 그것의 차이는 종이 한 장 차이밖에는 안 된다고도 생각합니다. 그 차이가 결정적으로 작용할 때가 있을 수 있겠지만 독서가 아니라도 여행을 비롯해 삶을 유익하게 하는 도구는 많은 까닭입니다. 사회적 동물이고 종교적 동물인 인간에게 하나 더 추가한다면 호기심의 동물이라 생각합니다. 만물을 아는 것만큼이나 나 자신을 아는 데에도 엄청난 삶의 동기부여가 이루어집니다. 세상을 알아도 나 자신을 모른다면 뭔가 부족하지 않을까요?


가야 할 길은 아직 멀고 영원히 다다를 수 없는 목적지는 한참이나 남았지만, 제가 선택한 길을 제 스스로 가는 것이 무척이나 즐겁고 행복합니다. 언제나 내 곁에 있으면서 삶의 위로와 힘을 선물하는 책은 영원한 저의 동반자입니다. 돈을 제대로 벌지 못하고 명예도 얻는 것이 별로 없는데도 책은 묵묵히 저를 지켜봅니다. 세상이 내 뜻대로 돌아가지 않아 우울하고 짜증이 날 때도, 풍요롭고 여유 만만한 생활환경이 아니어도, 내 곁에는 언제나 책이 있다는 생각을 하면 만족한 삶이 됩니다. 나의 진정한 모습을 조금씩 찾아가는 과정인 덕분이지요. 잔소리, 질투, 편견, 돈벌이 능력 등과 별 관계가 없는 책과의 결혼 생활, 본격적으로 시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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