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리 바빠도 나를 위한 시간이 필요하다
곧 죽어도 서울에서 살아야겠다고 생각했다. 모로 가도 한양으로 가라고, 어떻게 올라온 서울인데 이렇게 다시 내려갈 수는 없었다. 그러나 우울이 반복될수록 도시의 빛나는 낮과 밤, 어딜가나 화려한 길거리가 더 이상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그즈음의 나는 만나는 사람마다 자연 속에서 고립되고 싶다고 얘기했다. 산속에 들어가 나무도 보고, 글도 쓰고, 사진도 찍고, 등산도 하고, 산책도 하고, 뜨끈한 온돌방에 누워 자는 상상을 했다. 그때만 해도 내 거주지가 시골이 된다는 건 상상도 하지 못했다.
시골로 내려온 이후 하루하루가 지나치게 빨리 흘러갔다. 내 일과는 대충 이랬다. 오전 8시쯤 일어나 농사하고, 점심을 먹고 밖에서 햇빛을 쬐거나 조금 쉰 다음, 다시 저녁 먹기 전까지 농사를 했다. 고될 때도 있고, 아닐 때도 있었으나 그동안 하루 종일 사무실에 앉아만 있다가 갑자기 몸 쓰는 일을 하려니 당연하게도 몸이 아팠다. 마을의 할머니들도 꼿꼿하게 허리를 펴고 걷는데 서른 살은 더 어린 내가 "아이고, 허리야~"를 외치는 게 부끄러웠다. 그뿐이냐, 저녁 먹고 회의까지 하고 나면 그대로 곯아떨어져 잠들었고, 아침에도 겨우 눈을 떠 일어났다. 체력 탓인가 싶어 팔굽혀펴기도 시도했으나 의지박약으로 얼마 있다 관뒀다. 농사 자체가 몸을 쓰는 일이니 괜찮다고 합리화하기도 했다.
막상 자연 속에 고립되자 내가 하고 싶었던 것이 무엇인지, 원했던 게 무엇인지 기억이 나지 않았다. 새로운 환경과 새로운 관계, 새로운 직업을 한꺼번에 받아들이다 보니 뇌에 과부하가 걸렸던 걸까? 가끔은 꿈인지 생시인지 헷갈려 자다 눈을 떴을 때 '여기가 어디지?'라고 생각할 때도 있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적응하는 기간이었던 것 같다.
봄의 바쁜 시기가 한 꺼풀 지난 후에야 서서히 도시에 휩쓸려 놓쳐온 것들을 떠올렸다. 가장 먼저 해보고 싶었던 것은 사진이었다. 찰나의 순간을 카메라에 담아 사진의 형태로 보는 건 결과물이 어떻게 되든 재미있었다. 도시에서는 주말에 약속이 있을 때 들고 나가 길가의 풍경이나 그날 먹은 음식이나 커피, 옆에 앉은 친구를 찍긴 했었다. 물론 그런 날은 아주 드물었다. 쉬는 날까지 사용할 에너지가 없어 거의 나가지 않았기 때문이다. 한편 시골살이는 사진 찍기에 제격이었다. 대문만 열고 나가면 고양이가 있고, 나무와 산이 있고, 논과 밭이 있다. 날씨에 따라 시시각각 변하는 풍경을 보고 있으면 없던 영감도 절로 생겨났다. 비가 오면 우산을 쓰고 나가 사진을 찍었고, 맑은 날이면 맨발로 나가 사진을 찍었다. 카메라를 들고 다니는 게 익숙해지면서 에코백보다 백팩을 선호하게 되었고, 원하는 순간을 영원한 데이터로 남길 수 있었고, '남는 건 사진 뿐이야.'라는 말을 이해할 수 있게 됐다.
사진을 통해 기록의 중요성을 알게 된 이후, 일기를 써야겠다고 생각했다. 사진을 보면 선명한 기억이 남아있을 때도 있지만, 그날의 날씨나 내가 느꼈던 감정, 함께 있었던 사람들에 대해서는 자세하지 못할 때가 많았다. 그래서 때로는 핸드폰의 메모장에, 손에 딱 맞게 들어오는 작은 노트에, 노트북을 켜 블로그에 일기를 적었다. 사실만 나열할 때도 있었고, 여러 미사여구와 함께 잔뜩 꾸민 글을 적을 때도 있었고, 솔직한 이야기를 늘어놓을 때도 있었다. 그렇게 적어나갈 때마다 별일 아닌 것도 특별하게 느껴졌다. 마지막 문장의 마침표를 찍는 일은 하루의 완벽한 마침표와 같았다.
이런 습관이 익숙해졌을 때, 돌고 돌아 내가 원했던 것은 나를 위한 시간이었음을 알게 되었다. 아무리 바쁘게 지내도 항상 헛헛했던 허전함은 이제 더 이상 내 것이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