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전한 마음
남편이 한국에 왔다 갔다. 예정대로라면 나도 남편과 같은 비행기를 타고 집으로 돌아가야 했는데 그러지 못했다. 이렇게 한국에 오래 머물게 될 줄 몰랐기에 마음이 더 착잡하다.
조쉬가 오기 전에는 마냥 설레기만 하다가 이제 조쉬가 나간 자리를 보니 마음 한 구석이 허전하다. 결혼 전 국제 연애를 하면서 롱디에는 도가 텄다고 생각했는데 만남과 헤어짐에는 예습도 복습도 없다. 늘 아쉽고 후회가 된다. 조금 더 잘해줄걸, 사진을 한 장이라도 더 찍을 걸, 다음번에는 다르게 대할 거야- 아직 다가오지 않은 미래에 대한 다짐도 해본다. 누군가가 내 공간에 들어오는 기쁨만큼 나가는 슬픔도 크다는 걸 또다시 뼈저리게 느낀다.
조쉬를 배웅해 주러 간 공항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있었다. 활기찬 얼굴의 여행객들을 보며 코로나의 종식을 느껴보기도 하고, 나처럼 자리를 내어 주거나 아린 마음을 애써 붙잡고 자리에서 나오는 사람들을 보며 괜히 눈시울도 붉혔다. 조쉬가 출국 수속을 하러 들어가는데 엄마가 먼저 눈물을 흘렸다. 멀리 사는 사위에 대한 걱정과 지병으로 함께 가지 못하는 딸을 생각하는 엄마의 마음이 명치끝에 와 박혔다. 여기서 눈물샘이 터지면 목놓아 울게 될까 봐 애써 눈물을 참고 또 참았다가 집에 와서는 엉엉 울어버렸다. 부모님과 함께 조쉬를 배웅해 준 건 처음이어서 그런지 기분이 더 묘했다. 그동안은 늘 부모님과 굿바이를 하고 나도 출국장으로 들어가 버렸기에 쓸쓸히 집으로 돌아오는 부모님의 모습이 생소하기만 했다. 영국에 사는 동안 엄마 또한 내가 나가버린 빈자리를 보며 많이 우셨겠구나.
사람이 들어왔다 나가는 것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어렸을 때는 누군가를 맞이하는 기쁨만을 알다가 나이가 들수록 떠나보내는 슬픔을 배우게 된다. 나이를 한 살 더 먹을수록 떠나보낼 때의 쌉싸름함이 종이에 베인 상처만큼 아파지더니 지금은 책상 모서리에 박은 무릎만큼 아프게 느껴진다.
헤어짐이 무서워 누군가를 내 공간에 들이는 것을 주저하게 될 때도 있다. 머나먼 타국에서의 이민 생활은 특히 더 그랬다. 수많은 만남과 헤어짐을 피할 수 없는 타지에서의 생활. 나 같은 쫄보는 누군가가 나가버린 빈자리를 바라보는 게 두려워서 새로운 사람이 내게 들어올 때 기쁘기도 하지만 지레 겁도 먹는다.
든자리와 난자리에 대해 너그러워지는 건 내가 평생 가지고 가야 할 숙제일 것이다. 굳이 쿨내를 풀풀 풍길 만큼 관대해지지 않아도, 매번 헤어질 때마다 찌질하게 닭똥 같은 눈물을 뚝뚝 흘릴지라도, 그런 나를 있는 그대로 바라봐줄 수 있다면 절반쯤은 성공한 게 아닐까. 이번에도 나는 실패했으니 다음의 헤어짐을 기약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