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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Odd Jan 20. 2023

찐 어른이 됐다는 것 - 이사하기

 그저께 새로 이사 갈 전셋집 계약을 마쳤다. 이사일 까지는 1달 가까이 남았고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라 살짝 불안하다. 그래도 큰 고비들을 넘겼으므로 나름 고군분투 과정들을 기록해 본다. 

 

 현재 집은 초역세권 오피스텔로 평수에 비해 전세가가 비싼 신축이다. 장점은 지하철까지 1분 거리에 빌트인 다 되어있고 깔끔하고 경비가 있어서 치안은 좋은 편이었다. 그러나 주변이 번화가라 밤에도 너무 시끄럽고 평수가 작아 굳이 연장을 하고 싶지는 않아서 이러한 단점을 보완할 집을 3개월 전부터 틈틈이 찾아다녔다. 


1. 이사 갈 집 찾기

-조건은 밤에 조용할 것, 실평수 10평 이상일 것, 경비아저씨 있을 것, 치안 좋을 것. (포기해야 하는 것 : 초역세권, 신축 빌트인)

-전세 대출이 잘 나올 것, 전세 사기 위험 없는 매물일 것, 전입신고 가능할 것.

-그리고 기왕이면 좋아하고 익숙한 동네로

 그리하여 조건을 좁혀나가니 서초나 안국 쪽에서 찾게 되었다. 그러나 안국은 내가 제일 좋아하는 동네지만 현 직장과는 너무 멀기도 하고 개발 제한 지역이다 보니 깔끔한 오피스텔이 드물었다. 서초에서는 내가 생각한 전세가와 평수가 맞는 대형 오피스텔 두 군데로 추려졌는데, 반포와 동작 쪽에 위치한 L오피스텔은 전세 매물이 거의 없기도 하고 교통은 좀 제약이 있을 것 같았다. 그러다 임장 겸 남부터미널-서초-교대 쪽을 한 번 둘러봤는데 의외로 이 쪽에는 대형 오피스텔들이 꽤 있었다. 가격/매물/관리비까지 다 샅샅이 알아본 다음 한 군데로 마음을 정하고 네이버 부동산이나 호갱노노로 거주 후기 등을 찾아봤다.


2. 현재 집에 말하기

-전세는 만료 3개월 전에는 말하는 게 좋다고 한다. 실제 사는 집을 매물로 내놓는 건 2개월 전부터 이뤄졌다.


3. 부동산 아저씨에게 말해놓기

-조건에 맞는 오피스텔을 정하고, 원하는 평수와 전세가, 조건을 축약한 텍스트를 부동산 두 군데에 넣고 맞는 매물이 나오면 알려달라 했다.

-불친절한 중개인들을 많이 만나와서 좀 스트레스였는데, 문자 주고받은 아저씨는 매우 친절하셨음. 두세 번 오퍼를 주었지만 이사 날짜가 맞지 않아 드롭하고 마지막 알려주신 매물을 보러 갔다.


4. 집 둘러보기, 가계약

-그런데 막상 가보니 생각보다 연식이 되어서 실망했다. 현재 사는 집이 풀옵션에 깔끔한 화이트톤 신축인테리어인데, 이사 갈 오피스텔은 2000년대 초반에 지어진 거라 허름한 느낌에 냉장고와 세탁기가 옵션이 아니었음. 구글로 내부 사진도 많이 봐왔었는데 실물을 마주하니 좀 실망스러워서 2-3일 고민을 했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생각해서, 2000년대 초반 건물이기에 그 정도 넓은 평수가 나오는 거라 약간 연식이 느껴지는 건 어쩔 수 없다고 인정하고 주변 시세 대비 그래도 가성비가 좋은 편이라서 + 같은 구조 전세가보다 천만 원가량 싸고 현 세입자분들도 깔끔하게 쓰셔서 = 계약하기로 결심했다.

-가계약은 부동산 아저씨랑 진행하고 300만 원 정도 넣었다.


5. 현 오피스텔 계약 성사되게 집 오픈하기

-사실 이 부분도 진짜 찝찝하고 힘들었다. 전세사기가 창궐하는 시기에 금리까지 말도 안 되게 치솟아서 전세 매물이 안 나가는 상황이다. (물론 그래서 내가 2년 전까지도 귀하디 귀한 전세 매물을 나름 쉽게 계약했겠지만..) 관리 아저씨에게 비밀번호 알려주고 아침마다 집 깔끔하게 치우고 나가도 대부분 저녁에 보러 오는지라 집에서 편하게 쉴 수가 없었다. 계약 성사까지 2주 이상이 걸렸고 보러 온 사람은 셀 수도 없었다. 다행히 며칠 전 계약 했다고 하는데 계약 날까지 불시에 방문한다고 통보해서 개빡쳐서 치우고 나옴. 아무리 그래도 미리 말은 해야지 쒸익,,,

-다음 세입자가 정해져야 나도 이사 날짜를 정하고 구체화되기 때문에 빨리 구해지길 빌었다.


6. 확정일자 알고 계약 진행

-이사 날짜가 정해지고 이제 집주인과 진짜 계약을 진행하게 되었다.

-전세금이 높다 보니 5% 이상에 해당하는 계약금도 큰돈이라 엄마가 주셨는데 엄마가 휴대폰 바꾸면서 이체 한도 막혀있어서 예기치 못한 상황이 발생함.. 결국 쪼개서 여러 번에 걸쳐 송금했다. ㅠㅠ

-계약 전에 두근거리긴 했지만 별일 없을 거라 생각했는데 대혼돈의 계약이었다. 


 현 시국 전세 사기가 말도 안 되게 많아서 계약서 확인을 하고 약간 부실한 부분에 대해 특약 사항을 몇 개 넣으려고 했다. (요즘은 대부분 넣어주고, 내가 부동산 아저씨에게 이 부분에 대해 말했을 때 아저씨가 요즘은 다 그런 사항 들어간다고 하셨었음) 사실 별 내용도 아니었고, 특약에 대한 부분은 변호사인 오빠가 작성해서 문자로 보내줘서 넣어달라고 했는데 집주인이 되게 불쾌해하며 특약 사항이 애매하고, 만약 이 계약이 어긋나면 본인 돈은 상관없지만 현 세입자들이 이사를 못하면 어떡하냐.. 하는 진짜 말 안 통하는 고집을 부리며 못해주겠다는 것이다. (그럼 제 전세금은요?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그때는 멘털 좀 나가서 생각 안 났음)

 오빠한테 전화해서 안 해준다니까 오빠도 화나서 뭐 말도 안 되는 얘기를 하냐고 안 해준다 하면 계약 안 한다고 해라 뭐라 하고, 집주인은 이상한 포인트를 잡고 못해준다고 하고.. 그렇게 합의 안된 상태로 1시간 반이나 싸움. 난 정말 울 뻔했다. '제 말은 그게 아니라, 선생님을 못 믿는다는 것도 아니고 제가 계약 파기할 생각도 없지만 지금 전세사기도 많은데 저도 최소한의 법적 안전장치를 넣고 싶다는 거다'라고 말하면 '아니 그래서 본인 잘못으로 계약 엎어지면 제가 다 뒤집어쓰라는 건가요? 아까 약사라고 하셨나요? 전 의사예요.'를 시전.. 와나 진짜 약국에서 하는 의사 비위 맞추기를 여기서도 한 시간 반을 하고 나니 멘탈 탈탈 털리고 자괴감 들고 진짜 더러워서 돈 벌면 집사야지 생각 들고..

 결론은 절충안을 받아들여 조건을 세부적으로 적고 겨우 계약을 했다. 이 계약.. 안전한 걸까.. 계약 자체는 안전하지만 집주인이랑 연락할 일 별로 없길..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다.



7. 은행 대출 상담

-금리가 2년 전에 비해 거의 배가 올라버렸다. 아무리 낮은 금리를 찾아도 4.5%가 최소이다. 소득도 애매하게 걸려서 버팀목도 안됨. 아무런 청년 혜택 그딴 거 없음.. 그래서 지금 대출을 받은 우리은행 담당자에게 연락하니 그래도 들은 것 중엔 최소 금리로 맞춰준다고 하고, 현 대출받은 곳에서 또 하는 거라 번거로움도 훨씬 덜할 것 같아서 이분에게 다시 하기로 했다.

-최저 금리라는 케이뱅크도 알아봤는데, 케이뱅크는 신규 전세 고객들만 해당된다. 즉 나처럼 전세에서 전세로 옮기는 사람은 받을 수가 없다. 금리 조회하려고 했는데 대출 불가라고 떠서 괜히 쫄았는데, 고객센터 전화해 보니 현재 타 은행에 전세대출이 있으면 대출 조회도 불가하고, 대출이 없는 상태에서만 진행이 되는데 전세 확정일자 1달 전에 받아야 하니 사실상 불가능.

-한 달간 금리 팍 내리길 비는 수밖에 없다. 물론 금리가 높아져서 전세물건이 많이 나온 거라 불평을 할 수는 없지만 타이밍이 좋진 않은 듯.



현 진행 사항은 이러하고 이제 포장이사 알아보고, 이사하고, 이사 날 잔금 치르고, 보험도 알아보고 이것저것 신경 쓸 일은 계속해서 많겠지. 빨리 해치우고 싶다. 

  돌이켜 생각해 보면 나는 졸업 전까지 완전 마마걸이었다. 모든 굵직한 일들은 부모님, 가끔 오빠가 다 처리해 주었고 나는 주식은커녕 전세나 월세 계약부터 공과금 관리까지 모든 금융 및 생활 지식에는 전무했고 큰 이슈가 생기면 주변에서 다 케어해 줬었다. 그랬던 나이기에 졸업과 동시에 경제 활동을 하기 시작했을 때 모든 걸 스스로 할 수 있어야 함에 대한 부담감도 컸다. 일 자체는 성향에 맞았는지 처음부터 큰 어려움 없이 해냈지만 찐 어른됨의 과정을 오롯이 해내는 집합체는 이사였다. 지난 2년 전의 두 번의 이사는 부모님이 한 70프로는 담당해 주셨는데 이번엔 거의 나 혼자 atoz를 해낸 것 같다. 뿌듯함은 전혀 없고 험악하고 비싼 서울 땅에서 조력자 없이 홀로 어른이 되는 건 매우 힘들고 외로운 일이구나 느끼며 지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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